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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재석 Dec 04. 2022

조직문화와 추상화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이유

지난주 한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분이 문화와 관련하여 생소한 질문을 주셨다. 회사 블로그를 보면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계기나 철학이 있냐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다.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를 공리처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 대답으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이유를 추상화(abstraction) 관점에서 설명해보려 한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 때는 문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원하는걸 직접 할 수 있었고,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집착하고 싶으면 길에서 고객이 킥보드 타는 모습을 관찰하고, cs 전화를 직접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하고 싶으면 직접 쿼리를 날려 데이터를 뜯어보고 의사결정에 반영했다. 수시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5~10명의 구성원이 중요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이전처럼 모든 걸 직접 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의사결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다른 구성원에게 맡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맡겨야 할 사람을 믿지 못해 모든 일과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짧게 표현하면 마이크로 매니징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일을 맡겨놓고 아무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위임을 빙자한 방치이다.


잠깐 추상화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자. 이해하기 쉬운 네이버 오픈사전의 설명을 가져왔다.

주어진 문제나 시스템을 중요하고 관계있는 부분만 분리해 내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작업

위임은 업무를 추상화하는 것이다. 회사가 커지면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다. 따라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복잡도를 낮춰야 한다. 즉, 추상화를 해야 한다. 대표가 업무를 추상화하지 않으면(=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면) 대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복잡도 이상으로 회사를 키우기 어렵다. 반대로 방치하면 간결하게 이해하려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조직이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나는 많은 책에서 훌륭한 경영자들이 실천한 극단적인 위임을 본받으려 했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극단적인 위임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의 예를 소개한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정책에 따르면 회장은 자회사 대표들의 연락을 잘 받아야 하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다. (찰리 멍거의 생각 참고. <워런 버핏 바이블>이나 <현금의 재발견>을 읽으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잘못 실천해서 주로 두 번째 문제(방치)를 만들었다. 


방치당한 팀원은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을 겪는다. 반대로 마이크로 매니징을 받는 팀원에게는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만, 지시가 잘못됐거나 이해할 수 없으면 불만이 생긴다. 조직 문화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구성원들은 수시로 각자 판단하고 행동한다. 대표나 리드가 일일이 개입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대신 행동의 기준이 되길 바라는 것을 추상화하여 조직문화로 만든다. 위임할 때 세세한 것까지 정해주면 팀원 입장에서 마이크로 매니징이라고 느끼기 쉽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방치되어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기 쉽다. "중요하고 관계있는 부분만 분리해 내어"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걸 매번 말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조직문화는 중요한 것을 매번 말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도록 한다.


추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조직문화를 한 번 더 추상화하여 문장으로 표현한다. 많은 조직에서 이를 원칙이라고 부른다. 원칙을 활용해 다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낸다. 아마존은 원칙이 강력하게 흐르는 조직으로 유명하다. <순서 파괴>를 보면 아마존에서 동작하는 모든 메커니즘의 근간에 "아마존 리더십 원칙(Amazon Leadership Principle, ALP)"이 있다고 한다. 동료들과 ALP 항목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평가와 승진에 반영된다. 마치 자연이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면 조직문화는 무질서해질 것이다. 조직의 가치관을 극도로 추상화한 원칙을 활용하여 조직문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덧붙이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이 글은 추상화의 관점에서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을 뿐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구성원이 성취감 덕분이든 인간관계 덕분이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회사가 목표를 달성하길 바라는 마음만큼 크다.



피터 센게는 <학습하는 조직>에서 "인간이 직면한 대다수의 문제가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가 추상화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니, 추상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덧. 공학에서 추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개발자의 일이관지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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