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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의 사업가 Dec 10. 2023

나는 6년 걸렸지만, 지금 바로 창업하는 방법 1탄

사업하는 이야기

 [철밥통도 철밥통 나름이지]

 남들은 취업하기도 힘든 시대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철밥통 회사를 때려치우고 창업하면서 겪어온 시행착오가 있다. 철밥통이라는 프레임이 가져다주는 안락함 그리고 무능함.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2000년대 중후반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취업난의 중심에 있던 때라고 표현하고 싶다. 4년제 대학교를 기준으로 기본 이력서 100개를 넣어도 서류에서 많아야 5개 합격되면 잘됐다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2~3개 이력서 넣고 최종합격했다는 주변인들까지 매우 다양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아무튼 취업난이 매우 심했던 시기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는 그랬다. 취업하면 다되는 줄 알았다. 공무원 되면 다 잘 사는 줄 알았다. 공기업 가면 1등 신랑감 되는 줄 알았다. 어쩌다 보니 비루한 스펙이었지만, 공기업 비슷한 철밥통 회사를 경력직으로 이직하면서 나의 경력은 매우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노파심에 이 글을 통해 밝히는 거지만, 절대로 철밥통 같은 회사 또는 그 회사에 몸담은 재직자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가졌던 직업관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을 뿐.


 남들은 철밥통이라는 이야기에 회사가 망할 일 없고, 월급 따박따박 나오니 부러워하는 눈치도 경험하곤 했다. 그런데 내 속은 썩어 들어갔다. '그런 상황'이라 회사가 '돈 벌 생각'이 딱히 없었다. 나는 뒤처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시선에는 그랬다. 철밥통 배지를 달았던 내 나이는 32살. 생각보다 빠른 이직으로 신입사원 딱지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을 했던 터라 아직은 세상물정을 몰랐다. 주변 동기들이나 친구들은 저마다의 전문분야게 생기기 시작할 나이였고, 빠른 동기들은 이미 대리직급을 달고 회사 또는 팀에서 나름의 능숙함을 발휘할 나이였다.


 나의 주 업무는 '수익화'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시장을 위해 정책을 반영하고 동시에 관련업 종사자들에게 혜택을 나눠주는 업무였다. 나의 기술, 나의 제품, 나의 브랜드, 나의 어떤 것은 없었다. 여기서 나의 명확한 직업관이 드러났다.


 나는 '돈'을 좋아했다. '돈 되는 일'을 좋아했다. '돈 되는 주제'를 좋아했다. 돈이 어떤 철학적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몰랐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성적표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작은 새여도 하루하루 먹이를 찾아 헤매고,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뒤처진다. 강자는 이로움을 통해 안락함과 나름의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결국 오늘은 어제를 살아낸 강자들의 성적표이자 현실이라는 생각이 뼛속깊이 파고들었다.


 사실 철밥통 안에서 생활할 때에는 하루하루가 '성과', '수익화'와는 조금은 멀어졌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을 나의 직업관을 현실화하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했다.




[생각은 많아도 실행하지 않았던 시절]

 철밥통으로 경력직 이직을 하고 곧장 퇴사를 언제 할지, 내 사업은 언제부터 시작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 오늘부터 사업준비 하는 거야!"

라는 식으로 사업준비를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점점 사업의 길로 스며들었다.


 나름 주말이면 노트북 들고 커피숍에 앉아 페이스북으로 회사 계정을 만들고, 로고를 만들고 정한 사업 아이템으로 고객들을 찾아 나서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내보려는 노력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우 소극적이었다. 생각만 많았다.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이건 어떨까?', '이거 괜찮을까?'


 먼저 사업에 뛰어든 친구한테 '동의'를 받기 위해 아이디어랍시고 찔러보기 일쑤였고, 시선과 생각은 사업하는 사람'같이' 행동했다. 흉내에 불과했다.

 어느 날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평생을 살아온 친구 녀석한테 장난식으로지만 충격적인 표현을 들었다.

 '너는 어른이 되어야 해. 사업한답시고,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말만 하고 뭐 이루어지는 게 없어.'


 한 방 맞는 느낌이었다.

 그랬다. 나는 말만 하고 뭘 하지 않았다.

 똑똑한 '척', 아는 '척', 그럴싸한 '척'만 했지, 리스크는 절대 감수할 생각이 없었고, 안정감은 놓지 않으려고 했고, 양다리를 걸치는 그야말로 사업하는 바람둥이었다(밥벌이의 의미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의 아이덴티티는 희미해져 갔고, 회사에서는 이미 마음 떠난 이방인으로, 회사 밖에서는 야생으로 잠시 여행온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실행했던 시절]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갔다. 그동안 쌓인 사업아이템은 수십 가지가 넘었고, 결과는 그렇다 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름의 공부는 탄탄히 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독서'가 유일했다.

 아마 이쯤 되면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구나 하고 창을 내릴 독자가 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꼭 '독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왜냐하면, 독서를 시작하고 집을 샀고, 독서를 시작하고 집이 3채까지 늘었었고, 독서를 시작하고 통장은 넉넉해져 갔고, 독서를 시작하고 '내 회사'가 생겼다.

 생각이 많지 않았다. 사람은 보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돈 되는 일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돈 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알면, 더 보일 것이라 확신했다.


 많은 유부남들이 그러겠지만, 나도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내 아내는 용돈을 더 쓴다고 눈치를 주거나 막지 않는다. 감사하가.

 그래도 나 스스로가 통제하려고 애썼다. 용돈 받으면, 거의 대부분을 책을 사보는데 썼다.

 그게 나만의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동기 중에 '미친 실행력'이라는 책을 쓴 작가가 있다.

 그래도 동기가 책을 출판했다는데, 2권을 구입해서 한 권은 선물하고 한 권은 내가 봤다.

 그렇게 '실행'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간접적으로 느꼈다.

 생각하지 않으니 대담해졌다. 그리고 작지만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실행하는 것이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사실 글 쓰는 재주가 없다. 어떤 글이 노출이 잘되고, 조회수가 올라가는지 사실 알지 못한다. 나름 공부는 해봤지만, 정말 현실감 있게 와닿거나 하지 않았다. 일단 실행하고 바로잡는다.


 나에게는 사업이 다 그렇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실행부터 한다. 뭐가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실행을 하다 보면 걸러지고, 식별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진다. 생각을 많이 하면, 단점이 부각된다. 소극적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다 보니, 한계점, 단점과 같은 부분까지 부각돼서 보이게 된다.


 세상에 단점과 한계가 없는 사업분야, 아니 인간세상의 업이 뭐가 있을까?

 세상에는 모두가 장단점이 있고, 한계가 있다. 그것이 사업을 할 수 있고 없고의 판단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일단 실행했다. 그리고 결과를 냈다. 그렇게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철밥통을 때려치우고, 아니 남자로서는 치명적인 커리어가 될 수 있었던 분위기 속에서 육아휴직을 썼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썼다.

 당시 철밥통 회사에 새로 부임한 대표이사(철밥통이라 3년마다 대표이사가 교체된다)가 협박을 주기도 했다.

 "다시 복직하면 그 자리 없어질 수 있다는 것 감안하고 육아휴직 써야 할 것 같네요."

 두렵지 않았다. 이 실행을 하기 위해, 이 결정을 하기 위해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 그 깟 대표이사 협박에 무너질 쏘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의 시선과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남의 시선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 위주로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실행하면 결국 그 결과는 내가 누릴 뿐이다.

 행복하게도, 운이 좋게도, 감사하게도 나는 내 생각대로 실행했을 때 일을 그르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신중해서 인 것 같지는 않고, 영리해서 인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해도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으로 육아휴직 기간에 반쪽짜리 소속감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무조건 배우자', '다시 신입사원이다', '모든 것이 내 자산이 된다'

라는 신념으로 하루하루 출근했고, 업무에 임했다.





Next Brunch

 스타트업에서 어떤 확신을 갖고 철밥통 퇴사를 결정했을까? 스타트업에서 받았던 대우 및 혜택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고 서명했던 주주 간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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