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떠난 이후로 세상은 내내 흐리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호송되던 날에도 눈이 수북이 쌓였었고 돌아가신 날엔 앞이 안보일 정도로 종일 눈이 내렸다. 엊그제도 눈이 내리고 날은 흐리고 세상은 온통 하얀 상태로 있다. 남은 살 날 동안 눈이 오는 날이면 병원과 장례식장과 아버지가 떠오르겠지. 절망과 슬픔과 무력한 마음이 되살아 날 것이다.
존재라는 건 참으로 가볍다. 표정을 짓고 웃음을 나누고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던 한 생명이 한 순간 사라져 버렸는데 세상은 너무나 멀쩡하게 돌아간다. 의미 있다고 여겼던 한 생명은 이 세상에게는 이렇게 아무런 존재도 아닐 수 있다는 게, 매정하고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뭐하러 이렇게 바둥거리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를 쓰는 걸까. 어차피 죽으면 다 끝날 것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내내 흐리기만 한 날씨를 두고 애써 웃기는 의미부여를 해 본다. 세상이 애도라는 걸 함께 해주는 건가.
아버지 임종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더불어, 삶이라는 한없이 가볍고 덧없는 의미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하고, 죽어서도 갖고 가야 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