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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Sep 15. 2024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논어' 술이 편

 子曰; “自行束隋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비로) 육포를 열 묶음 이상을 가져오면, 나는 이제껏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  
- 술이述而 7.7


공자는 교육에 관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에 관대했습니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신분과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논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의 대표 제자 자로는 그야말로 ‘야인’(野人)이었습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장사였지만 공자를 만나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 후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수행하면서 열심히 학문을 닦았습니다. 비록 학문적 성취는 높지 않았지만, 공자는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의 벼슬길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공자의 수업을 듣기 위한 수업료는 육포 묶음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육포 묶음은 예물로써 격이 낮았지만, 누구나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속수지례’(束脩之禮)라고 합니다. 속수지례는 말 그대로 ‘육포 묶음의 예’로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드리는 선물’을 이릅니다. 물론 신분에 따라서 선물의 수준이 달랐겠지만 공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업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공자는 배움의 문턱을 낮췄고,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의 원칙에 대해서 위령공편(15.38)에서 “가르침에는 치우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공자의 삶의 자세, 가치관과 동일합니다. 그의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여 제자들도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것이 공자가 추구했던 도(道)이고, 학문의 자세이고, 인생의 자세였습니다.


 공자가 무조건 관대한 선생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자세가 안 된 학생들을 엄하게 야단쳤습니다.《논어》에는 단골 메뉴처럼 나와서 혼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로, 염유, 재여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자로는 혼이 나더라도 개의치 않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염유는 쉽게 포기하고, 핑계를 대기 일쑤였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그을 정도였고, 이를 나무라고 변화하기를 주문한 공자의 충고도 있었습니다. 수업 중에 딴전을 피던 재여는 거의 생매장당할 뻔했습니다. 낮잠을 자는 재여를 ‘썩은 나무’라고 빗댈 정도였습니다(공야장 5.9). 물론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낮잠이 아닌 다른 음탕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무인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서 ‘거구’였습니다. 같은 거구였던 자로가 ‘움찔’했던 것을 보면 공자도 힘깨나 쓰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갈을 했다면 오금이 저렸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고루 갖춘 선생님입니다.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공자가 강조한 ‘마음가짐’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은 우선 눈빛이 다릅니다. 절실함과 절박함,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이든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학문을 대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자들에게 받는 ‘학비’가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공자는 교육관에 대해서 이렇게도 이야기했습니다.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는다. 한 구석을 들어보였을 때, 세 구석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유추하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술이편 7.8)


 공자가 제일 총애했던 애제자 안연은 평민이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덕(德)을 실천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학문을 닦아서 출세 길을 찾고자 했으나, 안연은 늘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공자조차도 안연의 배움의 자세를 보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한탄했습니다.

 “안회(안연)만이 내 뜻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오.”


 청출어람(靑出於藍), 즉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이 말은 바로 안연을 두고 한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고사성어의 기원은 후대의 철학자 순자가 언급한 말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논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인 ‘후생가외(後生可畏)’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후에 태어난 자들이 두렵다는 것인데, 이는 후배들에 대한 기대를 포함한다. 안연은 그야말로 청출어람, 후생가외였습니다.


 그만큼 안연에 대한 공자의 애정과 기대는 컸습니다. 오죽하면 공자는 그의 부유한 제자, 자공에게 이런 질문을 할 정도였습니다(공야장 5.8).

 “안회와 너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자공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


 안연도 대단하지만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자공도 상당히 총명했습니다. 공자의 보디가드 자로나 성실함의 표본인 증자는 늘 배운 것을 소화하고 실천하기에도 벅찼으니깐 말입니다.


인의 정신을 실행하는 데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안연은 무엇이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요? 무엇보다 그가 배움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는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의 욕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진지하게 공부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仁)의 정신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위령공편 15.35).


 안연뿐만 아니라 공자는 3천여 명의 제자를 두면서 많은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시에는 변변한 서당이나 학교가 없었고, 제자들도 따로 과외를 받을 정도로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말은 제자들에게 ‘피와 살’이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인仁’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은 제후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지만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더군다나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춘추시대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회사나 사회,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지가 없고 수동적인 사람의 성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반면 한 가지를 알려주면 거기에서 두 가지, 세 가지를 유추하고 고민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자기주도의 학습을 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고, 다른 어려운 과제나 일에 봉착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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