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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너무 빨리 달리고 있지는 않나요?”

붉은 여왕 이론으로 살펴보는 일과 삶의 속도

by Estrella


바쁜 아침 출근길, 버스에 내려 지하철역까지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기 싫은 회사에 가기 위해, 우리는 왜 허둥지둥하는 걸까?”


누군가는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를 휘날리며 뛰고,

누군가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진급을 위한 영어 강의를 듣는 풍경.


그 세상 속 나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애매하다는

생각이 만연하는 위치인 사회 초년생의 대리,

나의 ‘일을 조금은’ 알 것도 같지만, 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아쉬움을 요즘 따라 자주 느끼며

“조금만 멈추면 금방 뒤처질 것 같은” 알 수 없는 긴장과 압박.


혹시 여러분도 비슷한 기분, 느끼고 계신가요?




“가만히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해”


어린 시절 뇌리에 깊게 박혔던『거울 나라의 앨리스』속 붉은 여왕의 말은

나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때야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말해주는 것만 같죠.


“여기서는 가만히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해.

더 멀리 가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항상 햇살처럼 따뜻하고 눈 부시는 날을 살고 싶은 우리들은 세상이 정해준 알 수 없는

더 먼 어딘가에 더 빨리 가고자 해도 뜨지 않은 아침, 지하철역까지 달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생물학자 "리 반 베일런(Leigh Van Valen)"은 1973년,

이 대사에서 영감을 받아 '붉은 여왕 이론(Red Queen Hypothesis)' 제안했다고 하죠.

해당 이론은 생물학 이론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에선 우리들의 평범한 하루와도 너무나 닮아 있지 않나요?




오늘 소개하려는 이론인 붉은 여왕 이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론 이름 붉은 여왕 이론 (Red Queen Hypothesis)

*제안자 Leigh Van Valen (미국 진화생물학자)

*발표 연도 1973년, 학술지 『Evolutionary Theory』

*핵심 개념 살아남기 위해선 계속 진화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비유적 의미 “그 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해”라는 말과 같이 환경이 변하니 가만히 있어도 뒤처진다는 생존 압박




이 이론의 핵심은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요.

쉽게 말하면, 두 존재가 서로의 진화를 자극하며 동시에 변화해 가는 관계를 의미하죠.


가령 기생충이 숙주를 더 잘 파고들 수 있도록 진화하면,

숙주는 더 강력한 면역 체계를 만들며 이에 대응하고,

기생충은 또 그 방어를 뚫기 위해 진화합니다.

치열한 공격과 방어의 반복 속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멈추면 자신뿐만 아니라

결국 상대도 도태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진화는 멈추게 되겠죠.


이 관계는 생물학에서만 한정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으로 넓혀 보자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회사, 조직, 사회 속에서도 늘 이런 ‘공진화의 압력’이 존재합니다.


경쟁사보다 빠르게 혁신해야 하고, 고객의 니즈에 더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곳에서

우리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사실 세상 전체가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속도에서 버티고 있는 내가 오히려 대단한 거죠.




붉은 여왕 이론은 '서로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경쟁적 진화'를 거듭하는 경쟁적 공진화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이뤄야 할 것이 과연 무조건적인 빠른 진화 만이 성공일까요?


멀리 그리고 오랜 시간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를 위하는 방향 "공생적 공진화"로 조금 달리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죠.


예를 들어, 꽃이 너무 빨리 진화해서 꿀벌이 더 이상 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꽃 역시도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번식에 실패하게 됩니다.

즉, 한쪽에서만 급진적 변화를 거듭한다면 상대는 이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공존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이 속도를 버티려고만 할 뿐, 우리는 잠시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아요.


내가 뒤처질 거라는 생각보다는 상대와 나의 속도의 적절한 리듬을 찾으며,

'균형의 조화'를 갖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 하루에 30분, 짧게는 15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주말 침대에서 가만히 햇살을 받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거나,

의미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거나,

주말 가까운 동네 카페에 앉아 자연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하는 것처럼요.


그 짧은 시간마다 잠시 잊게 되는 내가 원하던 속도는 무엇이었는지,

너무 빨라 놓치게 되는 건 없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남들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마무리하며.


붉은 여왕이 말했듯,

“여기서는 가만히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잃은 채 그저 계속 빠르게 달리기만 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이유일까.

나의 존재는 회사를 위해 달리는 경주마가 아닌,

하늘을 날아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만끽하는 자유로운 새였는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도 너무 열심히 달려왔다면,

한 번쯤은 나에게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세요.


그리고 짧게, 그리고 자주 다짐해 보면 좋겠어요.

“회사 밖에서도 나는 나로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도 느리지 않다”라고요.


그 다짐 하나가,

회사에서의 ‘속도’가 아닌 ‘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지켜주는 단단한 중심이 되어줄 테니까요.


작은 세상이 아닌 더 큰 나의 삶 속에서 방향과 가치를 고민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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