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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ul 17. 2023

가치외교와 사대주의, 외교에서도 내로남불인가

<책 읽기 정책 읽기>(8)

신채호, 박기봉 옮김, 1948/2006,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한 때 존경했던 인물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한 때 꽤나 부정적으로 비치던 인물을 정반대로 재평가하게 되기도 한다. 나로서는 연개소문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연개소문을 빼놓고는 고구려 역사에서도 가장 파란만장했던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사를 얘기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존재감이 크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고 평가도 제각각이다.

언제나 그렇듯, 첫인상이 절반이다. 나로선 중학교 때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집어든 ‘조선상고사’가 꽤나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상고사’는 성균관에서 공부했던 청년 유학자에서 근대계몽운동가로, 마지막엔 아니키스트라는 드라마같은 삶을 살았던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가 저술했다. (당시 읽었던 조선상고사는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에서 낸 문고판이었는데 나중에 잃어버렸다. 지금 갖고 있는 건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물론 단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조선일보>가 제대로 저자의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연재한데다, 저자 역시 감옥에서 옥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바람에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골 중학생은 이 책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 이 책에서 영웅으로 묘사하는 연개소문 이야기는 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규정해 버렸다.


조선상고사를 관통하는 건 줄곧 외세라는 ‘타자’에 맞서 독립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우리’가 아니었나 싶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식민지 노예 상태로 떨어진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이역만리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로선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 비친 연개소문은 당나라[唐]에 맥없이 항복하려는 사대주의 지배층을 단칼에 쓸어버리고 고구려의 기상을 결집한 끝에 당 태종이 이끄는 침략군을 통쾌하게 몰아내는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심지어 조선상고사에선 양만춘이 안시성에서 침략군을 저지하는 동안에 배후로 우회해 북경을 타격함으로써 당태종을 포위하는 전략가로서 면모도 보여준다. 단재가 보기에 당 태종이 고구려 침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군대를 보냈다는 기록은 패배로 인한 정치적 타격을 모면하기 위한 ‘가짜뉴스’일 뿐이다. 심지어 고구려가 당나라 침략군을 무찌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북경 지역까지 정복했다는 설명이 진지하게 등장한다.


조선상고사에서 묘사한 연개소문 이야기에 강한 영향을 받은 건 나 뿐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신문에 연재됐던 소설 연개소문은 조선상고사를 모티브 삼아 적당하게 연개소문에게 박정희 이미지를 덧댔다. 심지어 연개소문이 북경 일대를 점령했고 이 곳에서 당나라와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는 것도 중요한 줄거리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소설 단(丹)’ 역시 조선상고사를 차용할 뿐 아니라 당 태종이 북경 근처에서 연개소문에게 포로로 붙잡힐 뻔 했다는 무협소설 ‘영웅문’ 같은 이야기를 추가해놨다.


급기야 1990년대 나온 ‘대쥬신제국사’라는 만화에선 연개소문이 직접 당 태종을 포로로 붙잡아 항복을 받아냈고 산둥과 허베이 등 영토를 연개소문에게 바쳤다는 대목까지 등장한다. 2006년 SBS에서 방송한 드라마 연개소문은 아예 드라마 중간에 버젓이 "환단고기에 따르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더 얘기해봐야 입만 아프니 예전에 쓴 글로 대신하자.


세월이 흐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트이고 지식도 조금 더 쌓이고 나서 생각해봤다. 연개소문 이야기는 정반대로 읽어야 할 이야기였다.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구한 영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구려를 위기에 빠트린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만약 당나라와 전쟁이 그토록 불가피했다면 굳이 신라를 잠재적 적으로 돌려야 했을까. 수성전을 위주로 한 강력한 방어체계를 무시하고 굳이 대규모 회전이라는 도박을 벌여야 했을까. 동맹관계였던 백제가 무너지면 남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한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연개소문이 665년 죽고 나서 3년도 안돼 아들 세 형제(연남생, 연남건, 연남산)가 내전으로 사실상 자멸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까지 수십년간 전쟁을 하면서 겪어야 했을 고구려 민초들의 고통은 둘째치고라도, 당나라에 시종일관 강경책으로만 맞섰던 게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신라나 발해처럼 적당한 군사적 승리를 밑천 삼아 명분을 살려주며 평화를 도모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사대주의를 깬 민족자주 영웅’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선인 것일까. 애초에 그 사대주의라는 것 자체가 민족국가와 자주국가의 열망을 고대사에 투사한 우리만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500년 뒤 역사가들은 ‘조선은 속방(屬邦)이기 때문에 조선의 국내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던 전근대 한중관계와 ‘전시작전권도 없이 우리 세금으로 주한미군 모시고 사는’ 현대 한미관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사대주의’라고 평가할까.


느닷없이 사대주의 논란이 공론장을 뒤덮고 있다. 굳이 밥먹는 자리에서 흰소리를 하는 오지랖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그리 세련돼 보이진 않는다. 가장 황당한 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운운하는 대목인데, 미국과 일본한테 지난 1년간 어떤 식으로 굽히고 들어갔는지 세상이 다 봤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본한테 하면 가치외교, 중국한테 하면 사대주의라는 발상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니 2021년 대선 국면에서 멸치와 콩을 쇼핑하는 유치한 멸공팔이를 할 때 ‘중국대사관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도 떠오른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선은 넘지 말길 바랄 뿐이다.


내 마음과 딱 맞는 장도리 만평. <잊지 말자 선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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