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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U Nov 22. 2024

착각과 믿음 사이(1): 관계의 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쁨은 배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날은 혼자만의 즐거움이 더 컸다. 분명 최애씨는 관심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친구와 놀고 오면 '재미있었나? 뭐 했어?' 이런 간단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한 번은 궁금해 물어봤다. "오빠는 왜 안 물어봐? 잘 놀다 왔는지 누구랑 만나는지 관심이 없어?" 멋진 캐피털 레러 T 최애씨가 말한다. "재미있었겠지. 잘 놀았겠지." 익숙한 얼음장 같은 멘트가 날아오지만 타격감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최애씨의 귀가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 있었는지, 그 오빠는 잘 살고 있는지 매번 물어봤던 나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술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화를 하던 남자는 타인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작년 겨울 늦은 저녁, 친정 근처 맥주집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고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를 주문한다. 마침, 발행한 글이 다음 메인에 올랐고, 기분 좋게 한 모금을 넘기며 셀프 축하와 행복을 만끽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실실 웃는 이유가 궁금한 얼굴의 최애씨는 역시나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알아서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나, 요새 글 쓰거든. 물론 눈에 보이는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작가님이라고 불러줄래?"

많이 생각했다.  잠시 태어난 글들을 떠올려보니 그에 대해 좋은 말을 굉장히 많이 써놓은 것 같아 찔리기도 했지만, 자세한 정보는 말하지 않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쿨하고 도도한 말투와 긍정의 거만한 눈빛으로 최애씨에게 당당히 고백했다. 내가 알고 있고 예상했던 반응과 달리, 자식이 상이라도 받아온냥 최애씨의 자주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들이 운동을 시작한다. 특히 위로 향한 입꼬리가 떨리는데 힘들어 보였다.

"오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제게 출판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든지 오케이입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몇 번의 이상한 건배사를 들려줬다.

 

 그가 달라졌다. 다음날 최애씨는 몇십 년을 해오던 손가락 축구를 그만두었다. 단박에. 늦은 저녁 컴컴한 거실에 여러 빛깔 뽐내는 키보드 소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박스에 고이 담아 시댁으로 보내졌다. 그의 작은 공간을 내주었다. 카페에 챙겨가라며 미니 키보드를 배달시키고, 심지어 회사에서 애용 중인 키보드를 가져와 노트북에 연결시켜 주었다. 둘 다 익숙지 않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감동이었다. 신문을 많이 봐야 한다고 매일경제 앱을 설치해 주고 아이디를 공유해 줬다. 점점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최애씨는 육아에서 잠시나마 탈출해 자신의 시간을 갖는 모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응원하며 표현하고 있었다. 


 필사와 독서만 하는 모습에도 그는 전혀 작가의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쓴다고 바쁜 척하고 각 잡을 때면 "작가님 요새 글, 쓰세요?" 하며 내가 사랑하는 떨리는 입꼬리를 보여준다.


 저녁 9시.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_ 취침시간이 30분 당겨졌다. 

최애씨의 새로운 고정멘트도 같이 울린다.

"얘들아, 어서 들어가. 작가님 글 쓰셔야 된다."


행복한 큰일이다. 

그의 믿음이 착각이 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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