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임신을 한 딸 둘의 엄마는 뱃속의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러 지방까지 가셨다. - 두 명의 아들들을 가진 동서들의 아들 찬양에 셋째를 가지셨다. - 의사 선생님께서는 부모님께 왜 걱정이냐며 말씀하셨단다.
"벌써 아들, 딸 하나씩 있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그렇다. 그 하나 있는 아들이 바로 나다. 엄마는 딸을 딸처럼 보이게 하려고, 머리를 풍성히 만들고자 얇은 헤어롤, 파마약, 노란 고무줄 등 집 안에 작은 미용실을 오픈했다. 그 미용실에서는 한동안 파마약 냄새가 가득 풍겼고 결과물은 확실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아이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나를 대신해 걱정을 시작한다.
"중학교에 가면 학주라는 선생님이 계시대. 그분한테 머리 기른다고 부탁해 봐."
본인 언니에게 조언을 얻었는지 중요한 정보라며 내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꼬아가며 말해준다.
"고마워, 엄마한테 말해볼게."
꼭 잡은 엄마의 손을 따라가니 미용실이다.
"얘가 중학교 가는데 그렇게 걱정을 하네요. 펴지겠죠?"
의사 선생님께 불치병 상담을 의뢰하듯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들까지 계속 첨가한다. 원장 선생님의 손길을 주시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신기술에 대한 조금의 불신이 섞여있다. - 파마라고는 초4 시절 엄마가 말아주던 헤어롤이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빠글 머리.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의 공기까지도 말이다. 머리를 묶어도 티가 나는 빠글거림에 눈에는 의지와 상관없는 눈물이 고였고, 학교에 가기 싫었다. 물론 남일에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어린 마음에 아줌마 머리가 부끄러웠나 보다. 늦게 등교하게 되었고, 1교시가 시작되기 전, 교실 뒷문을 열었을 때 햇살은 교실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모두의 시선은 나에게 꽂혔다. 타이밍을 망치고 망친 날이었다.-
고개를 앞뒤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옷에 스치는 소리가 조금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계속 반복한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찰랑거림에 비록 두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찰싹 붙어얼굴이 더 동그랗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생김새는 중요치 않았다. 엄마는 나를 쳐다볼때마다 "머리 금세 자랄 거야. 그럼 자연스럽게 예뻐진다." 웃참하시며 부탁하지 않은 따뜻한 안심의 말을 해주셨다. 게다가 신기하신지 배웅하며 비단결로 변신한 딸의 머리칼을 한 번 더 만져보시고는 했다. "와, 우리나라 과학 기술 대단하다." 예상치 못한 단발머리를 보고 아이들은 과학을 운운하며 친구의 고민이 해결된 것을본인의 일처럼 기뻐한다.
쭉 뻗은 머리를 만난 뒤, 지금까지 미용실에 세 네 달에 한 번 세 시간 이상 앉아있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등교 전, 뒷 머리는 똥머리로 묶고 앞머리는 핀다. 초등에서는 롤빗과 드라이어를 이용했다면 중 고등에서는 전문가를 흉내 내며 매직기를 손에 쥐고 손목을 꺾어 완성한다. 완벽하다며 거울 앞에서 일어나지만 문 밖을 나서면, 잘못됨을 이마가 먼저 알아차린다. 곱슬인에게 날씨 예보는 필요 없다. 머리칼은 일찌감치 습도를 체크해 고불거리는 몸짓으로 껑충 점프를 하기 때문이다. 나와는 전혀 다르게 머리가 젖은 채 물을 뚝뚝 흘리며 등교하는 친구가 있었다. 평생 열 손상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그녀의 긴 머리는 자연바람으로 건조되고 순식간에 물미역으로 변신했다.
주기적으로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펴지는 머리칼들은 대부분 묶여 생활했다. 묶을 것을 뭐 하러 피는지, 태어나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살지 않고 헤어 의사 선생님을 찾는지, 나도 의문이다. 헤그리드 스타일은 아니지만, 다 같이 붙어 다니는 웨이브진 머리가 부디 부스스함을 모르고 깔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컸다.
감사하게도 직모인 최애씨를 만나 아이들의 머리는 손대지 않아도 아름답다. 친정 엄마가 그대로 물려주신 미용 가위와 숱가위로 아이들의 스타일을 만져줄 때면 옛날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그때의 내 마음도 기억해 본다. -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오던 풍성한 사자머리를 선호하는 엄마는 딸의 머리를 그저 예뻐하고 부러워했다. 그런 엄마는 신경 쓰는 자식의 모습에 여러 미용실을 데리고 다니셨다.- 숙련된 척하는 나의 가위질이 끝나고, 엄마 디자이너에게 히메컷으로 변화를 당한 오팔이는 다행히도 만족한 웃음을 띤 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에 어렸을 때의 내가 비친다. 나도 저렇게 엄마에게 미소 지었을까.
겉치레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요즘, 이제는 부스스함의 매력을 인정하고 본연의 나의 모습을 사랑할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하며 나를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예약하려 움직이는 손가락이우습다.내면의 아름다움을 언제쯤 알아차릴까.
'나 곱슬이요.' 하며 오랜 시간 이마를 지키고 있던 신분증, 나의 앞머리는 언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