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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밑하나 Sep 03. 2021

감상문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Jean Marc Vallee, 2013

얼마 남지도 않은 삶을 붙잡고 있지만
뭔가 의미를 두고 싶어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날뛰는 황소 아래로 떨어져 짓밟히는 사람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여자와 섹스를 하는 주인공을 보며, 그 눈빛에서부터 결핍이 느껴졌다. 주인공 남자의 결핍은 그의 곁에 머물러주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왔고 그 부재로부터 온 오래된 외로움을 아무 여자와의 성관계를 통해 해소한다.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만 그 미움으로 뚫린 자리를 채울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과거에 어머니가 그린 그림에 집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남자다움"에는 대부분은 조심성이 따라오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구덩이에 뛰어들거나, 아예 무지하거나. 전형적인 호모포비아였던 주인공 우드루프는 문란한 생활 끝에 에이즈 진단을 받는다. 영화에서는 에이즈가 얼마나 무서운 병이고, 남자가 이 병에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우드루프는 분노하고 부정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병을 파악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내용은 비주류 인생들이다. 투병 초반에 아직 인정되지 않은 약을 복용하다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만난 의사와 그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팔기 위해 마주하게 된 많은 동성애 남성들. 우드루프는 전기기술자로 일하며 매일 지저분한 옷으로 마약과 섹스에 중독된 비주류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과 결이 다른 비주류들을 혐오했다.


비주류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으로 살아난 우드루프는 돈을 벌기 위해 약을 밀수해 비주류의 연애를 하는 남성들에게 판다. 자신이 먹다 죽을 뻔한 약이 공식 절차를 빠르게 거쳐 비싸게 팔리기 시작한 것에 분노하고,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대기업의 돈놀음 앞에 죽어가는 것에 맞선다.


론이 재판에서 지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장면이 있다. 나는 내내 불편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 눈물이 났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기피하고 차별해왔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나 또한 차별받아왔던 순간들이 지나쳐갔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혐오하는 주인공과 차별받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 같아서 힘들었다. 또한 모두에게 동등해야 할 죽음 앞에서 누군가는 더 괴로워야 하는 것에 화가 났다.


영화가 주로 시사하는 내용과 내가 주목한 내용은 아주 많이 다르겠지만 개인의 서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이 영화 속에는 대기업의 행패 앞에 다양한 종류의 비주류들을 보여준다. 비주류는 정해진 기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찍은 낙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속 사람들을 당연하게 비주류로 정의하는 나 또한 그 기준에 그대로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병과 치료방법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할 권리가 있음에, 무력하게 죽지 않아야 할 사람임에 우리는 서로를 비주류와 주류로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곳에 숨어서 마구잡이로 섹스를 하던 남자는 이제 경기장으로 나가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길들여지지 않은  위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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