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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밑하나 Feb 26. 2024

마음의 울기

<빙그르르 귀촌라이프>-5

올 겨울은 유난히 금세 지나갔다.

다른 지역보다 평균 5도는 낮은 덕산은 겨울이면 꽤 많은 눈이 쌓이고 길이 잘 얼어붙어 고립을 겪게 되기도 한다. 나는 눈과 고립, 둘 다를 좋아해서 집 안이 마치 바깥처럼 춥다는 것만 빼면 이곳의 겨울이 꽤 좋았다.


겨울을 혹독하게 보내고 나면 봄이 너무나 반가웠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햇빛과 약간씩 푸르러지는 나무들을 보면서 추운 겨울을 버텨낸 나와 내 고양이가 상당히 자랑스러웠다. 푸르러진 산골짜기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이 기대가 되곤 했다.


덜 추웠던 탓일까.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일까.

봄이 가까워오는 것에도, 따뜻해진 햇빛에도 좀처럼 마음이 녹질 않는다.


얼마 전 갑자기 기온이 올라서인지 별안간 바깥에서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낮에는 집 안으로 벌까지 날아들어왔다. 내가 아는 덕산의 봄은 아직 한 달도 훨씬 더 남았는데 너무 일찍 울어버리는 개구리들이 걱정됐다.

'그러다 날이 갑자기 또 추워져서 너네 다 죽으면 어쩌니..'

그 생각이 씨앗이 되었나 별안간 덕산에 10센티미터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 한겨울 내내 그렇게 기다렸던 눈이 오랄 때는 안 오더니 이른 봄을 맞을 준비를 하자 비웃듯이 월악산을 전부 뒤덮었다.

우울한 기분이 가시지 않고 지속되면 내 마음대로 '울기'라고 부른다. 우울하고 울적한 기간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나는 내심 안심했다. 조금 더 추워야 벌레들의 습격을 덜 받을 테니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약간의 안심이 돌연 불안감이 되었다. 이 추위가 지나가면 결국엔 봄이 올 텐데. 봄이 다가오면 나도 다시 활력을 찾아야 하는데. 반가운 만남들과 새로운 활동을 준비해야 할 텐데.


내 마음이 좀처럼 녹질 않는다. 계속 꽝꽝 얼어붙어 시리게 녹은 얼음물만 똑똑 흘러서 고인다.

지금껏 시골의 계절은 나에게 우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제 때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1년이 그대로 날아갈 수 있으니 꼭 적기에 맞춰 몸을 움직여줘야 했다. 농사일도, 농사일이 아닌 것들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 점이 참 다행이고 참 좋았다.


아직 마음이 녹지 않아 아침에 꾸역꾸역 일으켰던 몸을 저녁이 되어 다시 누일 때가 되면 자꾸 눈물이 나지만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날 때 즈음엔, 다시 날씨가 따듯해지고 살아남은 개구리들이 울어재끼기 시작할 즈음엔 나도 괜찮아지겠지.


아, 요즘 내 마음이 울기인가 보다, 하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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