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의학 정신의 개척자, 가르시아 드 오르타 01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불을 지펴라.”
1580년 인도 고아Goa의 한 광장.
밤은 이미 내려앉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종교재판관의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곧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치솟았지만, 불타는 것은 한 인간의 육체가 아니었다. 이미 죽은 지 12년이 지난 의사, 가르시아 드 오르타Garcia de Orta (1501 ~ 1568) 의 뼈였다.
“죽은 자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군중 속 누군가가 웅얼거렸다.
그러나 재판관은 태연했다.
“그는 생전에 이단자였으니, 사후에도 불로 정화되어야 한다!”
불길이 뼛조각을 집어삼키며 흩날렸다.
리스본의 소년
가르시아 드 오르타는 1501년, 리스본의 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숨겨야 할 것’을 지녔다. 그의 집안은 강제로 개종한 '신(新)기독교인, 크리스타웅 노부(cristão novo)'였다. 공식적으로야 점잖게 '신기독교인'이라고 불렸지만, 멸시가 담긴 '마라노'marrano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마라노 - 돼지, 더러운 놈...
어린 오르타는 속으로 울음과 화를 숨겼다.
오르타의 가족은 겉으로는 성당에 나가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집안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 유대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우리는 정말로 크리스타웅입니까? 아니면 유데우(유대인)입니까?”
소년 오르타의 질문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진실은 하느님만 아신다.”
그 어린 대화는 오르타의 마음에 새겨졌다. 그는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지식에 대한 갈망은 곧 “진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살라망카의 학문과 회의
청년이 된 오르타는 스페인의 살라망카 대학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 신학과 법학의 요람이었지만, 그가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의학과 자연학이었다.
“스승님, 이 약초가 진짜로 효과가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고대 아비센나의 책에 쓰여 있지 않느냐.”
“그러나 책이라고 해서 늘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직접 보고 싶습니다.”
라틴어로 기록된 아랍 의학서와 고대 그리스의 의학 지식은 여전히 강의실을 지배했다. 그러나 오르타는 이미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지식이 종교나 권위가 아니라, 경험과 관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리스본으로 돌아와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이미 바다 너머로 향해 있었다.
향신료와 약재의 땅, 인도.
유럽이 그토록 탐내는 신비한 자원과 지식이 모여 있는 곳.
인도로 가는 배
1534년, 오르타는 군의관으로 임명되어 인도 고아Goa로 떠났다.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건너는 긴 항해였다. 배 위로 뜨는 해를 보며 오르타는 가슴이 뛰었다.
'나는 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지식은 나의 신앙이다. 인도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거야.'
항해가 끝나고 고아 항구에 내린 순간, 향신료 냄새와 현지 언어의 소리,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사람들에 오르타는 압도당했다. 유럽의 좁은 도서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살아 있는 지식의 장이 그 앞에 펼쳐져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역사 속에서
신기독교인 Cristãos novos, Marranos
1492년 스페인에서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지면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포르투갈로 피신합니다. 1496년 포르투갈의 국왕 마누엘 1세는 스페인 공주 이사벨과의 결혼 조건으로 “유대인의 개종 또는 추방”을 명령합니다.
실제로는 대규모 강제 세례가 시행되어, 많은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라도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지요. 이렇게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과 그 후손들을 포르투갈 사회에서는 “신기독교인”이라 불렀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가톨릭을 믿어온 토착 기독교인들은 “구(舊)기독교인 (cristãos velhos)"으로 불렸습니다.
법적으로는 신·구 기독교인 모두 같은 가톨릭 신자로 간주되었지만, 사회적 차별은 매우 컸다고 합니다. 공직 진출, 대학 입학, 해외 파견 등에서 “혈통 청정성(limpeza de sangue,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는 규정이 생겨 불이익을 받았죠. 또한 “겉으로는 세례 받았지만, 실제로는 몰래 유대교 신앙을 이어간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비밀리에 유대교를 유지하던 개종 유대인들을 멸칭으로 marranos라 불렀습니다. 스페인어/포르투갈어 marrano (돼지)에서 나왔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지는데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의 전통을 조롱하는 말이었죠. 신기독교인은 법적·사회적 범주이고, 마라노는 이들을 멸시하거나 “겉으로만 개종하고 몰래 유대교를 믿는다”는 뉘앙스를 담은 속칭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조.
“Garcia de Orta.” Encyclopaedia Britannica (2023)
https://www.spmi.pt/revista/vol05/eng_vol05_n4_1998_233_240.pdf
https://en.wikipedia.org/wiki/Marrano
https://en.wikipedia.org/wiki/Colloquies_on_the_Simples_and_Drugs_of_India
https://www.academia.edu/6366977/Garcia_de_Orta
https://pt.wikipedia.org/wiki/Garcia_de_Or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