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의 모후, 필리파 드 랭카스트르 02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jj0772/139
리스본의 새로운 공기 - 기사도, 교육, 신앙
바탈랴 수도원Batalha Monastery의 석조 복도는 아직도 축축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전투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땅 위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이제 포르투갈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거대한 상징이 되고 있었다.
필리파는 창문 너머의 회랑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곳이 단순한 기도의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책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그 책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지요.”
수도사 한 명이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영국에서 가져온 상자 속에는 라틴어 성경 주석서, 성인들의 삶을 기록한 필사본, 그리고 영국 학자들의 설교집이 있었다. 묵직한 가죽 제본의 책들이 빛바랜 양피지 위에서 은은히 반짝였다.
“폐하, 이런 책들은 지금 포르투갈에선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학문을 사랑하시는 마음, 후세가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포르투갈 궁정에서 필리파는 단순한 왕비가 아니었다.
지적 탐구심이 왕과 맞먹었고, 국가 운영에 대한 식견도 탁월했다. 그녀가 들여온 영국식 교육과 궁정 예법은 포르투갈 왕실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었다. 필리파는 수도사적 경건함과 기사도의 규율을 결합해 궁정 문화를 도덕적·지적 공간으로 바꾸고자 했다. 서적과 필사본을 수집하고, 수도원과 학문 기관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학자들이 필리파를 “문화적 매개자cultural mediator”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궁정은 단순히 권력의 무대가 아니라, 사상과 교육의 장이 되었다.
필리파는 종종 궁정 회의에 의견을 제시했고, 때로는 조언자로서 왕의 결정을 움직였다. 주앙 1세와의 혼인 초기, 왕위 정통성이 불안정할 때 그녀는 잉글랜드의 후광과 궁정 내 질서 재편을 통해 왕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녀가 보여준 권력은 칼과 명령이 아니라, 교육·문화·상징을 통한 영향력이었던 것이다.
Ínclita Geração(영광스러운 세대)를 열다
필리파와 주아웅 사이에는 아홉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그중 일곱 명이 장성하여, 훗날 "아비스 왕가의 일곱 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기 학문·정치·탐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라틴어 inclitus에서 온 inclita는 “명성 높은, 영광스러운, 뛰어난”을 뜻하는데, 포르투갈의 시성 까몽이스가 "Os Lusíadas"에서 사용하면서 문학적으로 굳어진 표현이다.
자녀들은 포르투갈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두아르트(후일의 두아르트 1세)는 문학적 교양이 뛰어나 "철학자 왕"이라 불렸고,
코임브라 공작 페드루는 지식과 여행으로 이름을 떨친 왕자였으며,
"항해왕자(Henry the Navigator)"로 알려진 엔리크는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연 인물이다.
아베이루 공작 주아웅은 군사적, 행정적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페르난두는 전투에서 인질로 잡혀 고문과 고난 속에 사망한 왕자로, 종교적 헌신과 희생 덕분에 "성자 왕자(O Infante Santo)"로 불린다.
공주들인 블랑카와 이사벨 역시 성경과 시문학을 공부하며 교양 있는 공주로 성장했다.
학문, 정치, 항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자녀들 뒤에는 필리파의 가정교육과 학문적·종교적 지도가 있었다.
물론 '가문의 명예를 세우는 남성들의 활약 뒤에 있는 여성의 영향'이라는 전형적 서술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리파의 경우, 왕비가 직접 적극적으로 자녀의 지적·윤리적 형성에 개입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필리파는 자신만의 정치적 주체성과 문화적 리더십을 행사한 왕비였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왕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외교·문화·교육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그녀를 '왕비이자 권력 네트워크의 중심인물'로 읽어낼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나 예카테리나 2세처럼 직접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대항해시대라는 남성 중심 서사에 ‘보이지 않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과 유산
1415년, 세우타 원정 직전 필리파는 세상을 떠났다.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신앙과 정의, 학문과 명예를 잊지 말라 당부했다고 한다. 연대기 작가들은 이를 ‘성스러운 장면’으로 묘사했으나, 현대 연구자들은 이 장면을 가문의 이념을 세대에 전수하는 정치적 행위로 본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왕비의 서거가 아니라, 포르투갈 문화와 정치의 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자녀들이 펼친 행보는 그녀가 설계한 이상과 가치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그녀를 단순히 주앙 1세의 왕비로만 보지 않는다. 필리파는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을 잇는 다리였고, 새로운 세대 - 대항해 시대를 연 세대-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한 어머니였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권력이 아니라 교육과 비전이었다.
포르투갈 역사의 심장부에서,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빛난다 - 대서양의 모후, 필리파 랭카스트르.
역사 속에서
필리파의 주체적인 면모에 대한 현대 연구
- 영국에서 온 필리파가 영국의 궁정 예법, 기사도, 교육 전통, 성경적‧신앙적 가치 등을 포르투갈 궁정에 들여오고, 이를 포르투갈 상황에 맞게 변형했다는 측면에서, 그녀가 단순히 수용자receiver가 아니라 창조적 변형자adaptor라고 하는 연구
- 필리파가 직접 통치하거나 법령을 제정하거나 왕으로서 군림한 것은 아니지만, 왕실 내부 의사결정과 자녀들의 역할 배치, 외교 및 궁정 patronage (예: 문화, 예술, 문학 지원) 등을 통해 권력 네트워크power networks의 중심에 있었고, 이는 “보이지 않는 정치invisible politics” 혹은 “궁정 정치court politics” 차원의 영향이다 라는 연구
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파 자신이 직접 기록을 남긴 저작 (예: 서신, 정책 명령 등)은 적습니다. 대부분 연대기(crónica), 후대 사가(hagiography), 혹은 다른 인물들이 필리파에 대해 언급한 자료가 대부분이죠. 이 때문에 “필리파가 정말 이런 말을/행동을 했다”는 것과 “후대에 그렇게 전해진 이미지” 사이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당시 사회는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patriarchal monarchy이었습니다. 공식적 권한institutional office이 여성에게 많이 열려 있지 않았죠. 왕비로서 공식 직무(regency, 후견, 치리 등의 역할)이나 재산 소유권은 있지만, 그 권한이 언제나 왕 혹은 다른 남성 귀족들과의 힘 관계, 의례적 규범court protocol에 의해 제약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필리파가 세상을 떠난 뒤 포르투갈은 왕비의 위상과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지적에서 보듯이, 그녀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특이하고 중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https://link.springer.com/book/10.1007/978-3-031-65560-9
주아웅과 필리파의 관계와 역사적 기록
중세 왕실에서 흔히 있던 첩 관계나 불화 기록이 주앙과 필리파 사이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대 사가들은 이 부부를 '성실하고 덕망 있는 왕실 부부'로 이상화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주앙이 과거에 사생아(아폰수, 브라간사 공작)를 두긴 했지만, 필리파와의 혼인 이후에는 충실한 남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죠.
필리파에 대한 기록으로는
- 페르낭 두 로페스 (Fernão Lopes, c. 1380 – c. 1460 / 포르투갈의 '국가 연대기 작가(chronista-mor)가 집필한 『주앙 1세 연대기(Crónica de D. João I)』가 있습니다. 주앙과 필리파의 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전하는 핵심 자료로, 당시 궁정 문서와 증언을 바탕으로 쓴 사료로 평가됩니다.
- 장 프로와사르 (Jean Froissart, c. 1337 – c. 1405 /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 궁정과 연관된 시인·연대기 작가)가 쓴 『연대기(Chroniques)』가 있습니다. 14세기 유럽(백년전쟁, 기사도, 궁정 문화)을 다룬 대표적 작품으로, 포르투갈 부분에서는 특히 주앙 1세와 필리파의 혼인(1387)을 “영국–포르투갈 동맹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