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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연인

페드루와 이네스 - 포르투갈 국민 러브스토리 02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https://brunch.co.kr/@njj0772/141

1편에서 이어집니다.




복수의 왕

1357년, 아폰수 4세가 세상을 떠나자 페드루는 마침내 왕좌에 올랐다. 즉위식은 차가운 침묵 속에 열렸다. 2년 후, 복수를 위해 기다렸다는 듯한 그의 명령은 서늘했다


- 이네스를 죽인 자들을 데려오라.


살해에 가담한 자들은 체포되어 코임브라로 끌려왔다. 페드루는 공개 재판을 명령했고, 그 자리에서 직접 심문하며 말했다.


“Vocês mataram o coração do vosso rei.”
(너희는 왕의 심장을 죽였다.)


처형은 잔혹했다. 그의 분노는 냉철했고, 복수는 의식처럼 치밀했다.

그러나 전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 왕의 심장을 죽였으니 암살자들 역시 심장이 꺼내지는 형벌을 받았다고.

페드루는 이네스의 시신을 궁정으로 불러들여 왕비로 즉위시켰고,
그녀의 관을 열어, 귀족들에게 그 손에 입 맞추게 했다고.


Le_Couronnement_d'Inès_de_Castro_en_1361_-_Pierre-Charles_Comte_-_MBA_Lyon_2014_(cropped).jfif Le Couronnement d'Inès de Castro en 1361 by Pierre-Charles Comte, 1849, Public Domain, Wikimedia
1849년 작품으로 페드루가 이네스의 시신을 “왕비로서” 공개하는 전승적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 담담한 표정의 페드루, 뻣뻣한 시체가 된 이네스 (죽은 지 2년 넘은 것 치고는 무척 생생한 시체...), 충격과 경악, 혐오와 당황이 드러난 궁정 사람들... 역사적·문학적 상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낭만주의 시대에, 운명적인 사랑, 비극적 죽음, 처절한 복수 등 베스트셀링 러브스토리의 요소를 모두 갖춘 페드루-이네스 스토리는 예술가들의 창작욕구를 자극하기에 아주 딱이었을 겁니다.



“Agora é rainha.”
이제 그녀는 여왕이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상징적 장면, 혹은 후대의 설화로 본다. 하지만 그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페드루의 사랑은 이미 인간의 차원을 넘어, 정치와 신앙, 전설의 경계로 옮겨간 것이다.



사랑의 무덤

그는 이네스의 시신을 알코바사 수도원으로 옮기게 했다. 왕가의 영묘가 있는 성스러운 공간.
페드루는 명령했다.


“우리의 발을 마주 보게 하라.
심판의 날, 일어나면 가장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현재까지 그대로 두 사람은 잠들어 있다. 대리석 위에는 천사들이 그들의 영혼을 감싸 안고 있고, 관광객들은 조용히 그 곁을 맴돈다.

시간은 흘러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코임브라의 강가에서, 알코바사의 대리석 아래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숨 쉬고 있다.


“As filhas do Mondego a morte escura
Longo tempo chorando memoraram,
E por memória eterna em fresca água
As lágrimas choradas transformaram.”
— Camões, Os Lusíadas, Canto III, est. 135 까몽이스의 '루지아다스' 중
(“몽데구 강의 딸들은 오랫동안 그 어두운 죽음을 슬퍼했고,
그 눈물은 영원한 기억이 되어 샘물로 변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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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 방문했던 알코바사 수도원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수도원 자체도 워낙 크고 볼 것이 많은데, 역시 하이라이트는 페드루와 이네스의 무덤입니다. 꽤 큰 작품으로, 윗 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둘의 무덤에 비하면 페드루의 다른 왕실 가족들은 무척이나 존재감없이 옆 방에 놓여있답니다. 페드루의 정식 부인이었다가, 아기를 낳다 죽은 콘스탄사가 애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Agora é tarde, Inês é morta.”

(이제 늦었어, 이네스는 죽었어.)


이 말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다. 파두fado처럼 숙명과 후회, 그리고 ‘늦게 오는 감정’을 중요한 미학으로 여기는 포르투갈 문화에서 “Inês é morta”는 바로 그 정서를 응축한 문장으로 들린다. 한 문장 속에 사랑의 비극, 권력의 잔혹함, 정의의 지연, 시간의 돌이킬 수 없음이 모두 들어있는 말.


단순히 “늦었다”가 아니라 “그때 조금만 달랐다면…”이라는 가슴속 한숨의 표현 - 우리 모두가 경험한 바 있는, 혹은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기에 페드루와 이네스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랑의 종말이 아닌, 사랑의 기억이 시작된 순간으로.





역사 속에서

- 페드루 1세는 즉위 후 불과 10년(1357–1367) 동안 통치했지만, 'Rei Justiceiro', 즉 ‘정의의 왕’으로 불렸습니다. 이 별명은 단순히 이네스 사건의 복수 때문이 아니라, 귀족과 평민을 동일하게 법 아래 두려는 철저한 정의관 때문이었지요. Fernão Lopes의 연대기 《Crónica de D. Pedro I》에는 그가 귀족 범죄자에게 사형을 내리며 이렇게 말한 구절이 전해집니다.

“A justiça não conhece senhores.”

정의는 주인을 모른다.
이는 중세 포르투갈 군주 가운데 드물게 법의 일관성을 중시한 태도로 보입니다.


또한 국왕 재정의 투명화를 위해 왕실 기록 보관 제도Chancelaria Real를 강화했고, 외국 상인과의 교역(특히 제노바, 플랑드르) 확대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화폐의 안정과 농지 조세 개혁도 시도했죠. 감정적으로는 불안정한 인물로 묘사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행정적 통찰력이 있는 실용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중세 말 포르투갈에서는 “사랑의 왕Pedro o Amante” 으로,

근세에는 “정의의 왕Rei Justiceiro” 으로,

현대 학자들(예: José Mattoso, Hermano Saraiva)은 “감정과 법을 모두 통치의 언어로 삼은 군주”라고 평가됩니다.




- 아폰수 4세의 명을 받은 암살자 세 명(Pêro Coelho, Álvaro Gonçalves, Diogo Lopes Pacheco )은 1355년 이네스를 살해한 뒤 카스티야(혹은 인근 지역)로 달아났습니다. 페드루가 왕위에 오른 뒤 이들을 추적해 두 명(Pêro Coelho, Álvaro Gonçalves)을 붙잡아 포로 송환(1360–1361년 무렵의 인도교섭·인도교환을 통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공개 재판·처형을 받았고, 연대기(특히 페르낭 로페스의 기록)는 이들이 생전 심장이 꺼내졌고(heart-ripping) 이후 처형·화형 되었다고 전합니다.

다만 ‘심장을 손으로 꺼냈다’는 상세한 잔혹 처형 묘사는 주로 15세기 연대기자의 서술에 바탕한 것으로, 현대 학자들은 이 상세 묘사가 어느 정도 문학적·상징적으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사건의 핵심—두 명이 체포되어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 한 명은 도주했다—는 확실하나, 묘사의 세부는 연대기적 장치일 수 있다는 거죠.



- 관광 아이덴티티의 일부가 된 전설. 알코바사 수도원은 단순한 중세 수도원이 아니라, “페드루와 이네스” 이야기로도 유명한 유산지입니다. 유네스코 설명에도 tombs of Inês de Castro and Dom Pedro라는 언급이 있을 만큼, 이 무덤-전설 요소가 유적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지요 - 방문자에게 감성적 호기심(전설 + 죽음 + 애도 요소 등)을 유발하는 자극 요인!

즉 단순한 건축미나 종교적 중요성 이외에도 “전설 이야기”가 관광객 유입을 촉진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 거죠. 페드루와 이네스의 비극적인 사랑 서사는 지자체의 공식 홍보문구, 여행 코스 브로슈어, 관광청 사이트 등에 반복 등장한답니다.


https://noticias.uc.pt/artigos/exposicao-pedro-e-ines/

https://visitecoimbra.pt/viver-coimbra/lendas-e-figuras-historicas/pedro-e-ines/

https://pt.wikipedia.org/wiki/Pedro_I_de_Portugal

https://whc.unesco.org/en/list/505?

https://revistes.ub.edu/index.php/tourismheritage/article/view/40924?

https://boydellandbrewer.com/book/the-chronicles-of-fernao-lopes-9781855663961/

https://pt.wikipedia.org/wiki/Diogo_Lopes_Pach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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