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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과 자유의 목소리

소피아 드 멜로 브라이너 안드레센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리스본의 그라사 전망대Miradouro da Graça - 도시의 붉은 지붕과 테주 강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 사이에 작은 흉상 하나가 있다. 많은 여행자는 누군지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흉상의 주인공은 포르투갈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소피아 드 멜로 브라이너 안드레센Sophia de Mello Breyner Andresen (1919 – 2004) 이다.

한국에서는 페수아나 노벨상을 수상한 사라마구처럼 알려진 문인은 아니지만, 포르투갈에서 소피아는 국민 시인 중 한 명으로, '윤리적 목소리', '정치를 넘은 정의의 상징'으로 불린다.

페수아가 ‘내면의 심연’과 자아의 분열을 탐구했다면, 소피아는 그 반대편에서 세계의 질서, 아름다움, 정의, 윤리, 바다를 탐구했다. 사라마구가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 조건을 해부했다면, 소피아는 더 근본적이고 맑은 언어로 '세계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Lisbon_Portugal_303_Miradouro_da_Graça_(5107871907).jpg DAVID HOLT, Creative Commons 2.0, Wikimedia Commons
그라사 전망대의 소피아 시인 흉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다의 딸’

소피아는 1919년 포르투의 명문 부유층 가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덴마크계 혈통으로, 포르투 상류층에서 경제·문화적 영향력을 떨쳤고, 아버지는 저명한 법학자·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생활보다 더 깊게 그녀에게 각인된 것은 어린 시절의 바다였다. 포르투 인근 마투지뉴스Matosinhos에서 보낸 여름 풍경은 향후 시적 세계의 원형이 된다.


De novo o som, o ressoar, o mar.
De novo o limpo e nu clamor primordial.
“다시 소리, 울림, 바다.
다시 맑고 벌거벗은 원초적 외침.”
- 1947, 시집 Dia do Mar


O mar, metade da minha alma.
"바다, 내 영혼의 절반.”
- 1944, 시집 Poesia


Tudo era mar.
“모든 것은 바다였다.”
— Obras de Sophia, Fundação Calouste Gulbenkian


Quando eu morrer, voltarei para buscar os instantes que não vivi junto do mar.
“내가 죽으면, 내가 바다 옆에서 살지 못한 그 순간들을 다시 찾아오리라.”
- O Mar 중


바다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질서와 자유, 깊이와 침묵, 진실의 상징이었다. 훗날 그녀의 시에서 바다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심 이미지가 된다.



리스본의 젊은 시인 — 문학적 각성과 단순함의 깊이

소피아는 리스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며, 그리스 신화·윤리철학·고전 서사 구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시적 언어가 단순하고 맑으면서도 정교한 구조와 윤리적 긴장감을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시집 『Poesia(시)』가 1944년에 출간되었을 때, 문단은 그녀를 “포르투갈 시문학의 새로운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모더니즘적 실험에 기대지 않고, 감정 과잉에도 기대지 않고, 언어의 맑음과 질서를 추구했다.

페수아가 무수한 얼굴(hetereonym)을 만들었다면, 소피아는 정반대로 한 얼굴로 세계를 바라본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는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독자를 붙들어 세운다.



Estado Novo 독재 시기 — 침묵을 거부한 시인

포르투갈의 Estado Novo 독재 정권(살라자르 체제)은 예술가들을 통제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억눌렀다. 소피아는 평생 정치적 구호를 외친 시인은 아니었지만, 살라자르 독재 정권에 대해 분명한 비판자였다.

직접적인 정치 시를 쓰지 않았지만,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명료성은 체제에 대한 지적 형태의 저항이었다. 그녀 역시, 검열로 인해 발표 시기를 늦추기도 했고, 실제로 여러 시가 삭제되었거나 변형되기도 했다.


A Poesia é a minha forma de justiça.
“시는 나의 정의의 방식이다.” — Entrevistas, Público


“Porque os outros se calam / Eu não posso calar.”
“다른 이들이 침묵할 때, 나는 침묵할 수 없다.”


그녀의 유명한 시 「Porque(왜냐하면)」의 한 구절은 1970~80년대 포르투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정치적 수감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국립정치범지원위원회Comissão Nacional de Socorro aos Presos Políticos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Parque_dos_Poetas_(Florbela_Espanca),_Oeiras_(14666283946).jpg Pedro Ribeiro Simões, Creative Commons 2.0, Wikimedia Commons
소피아 시인의 조각 by Francisco Simões, Parque dos Poetas em Oeiras, Portugal



‘바다의 시인’에서 ‘자유의 목소리’로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카네이션 혁명 이후, 소피아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다. 1975년, 그녀는 사회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사회당(Socialist Party)의 의원으로 제헌의회(1975–1976)에 참여, 새로운 포르투갈 헌법 제정에 기여했다. 또한 검열 폐지, 문화 접근성 확대, 노동자의 권리, 공공 도서관 설립 등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표는 하나였다.


“정의가 언어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


그녀는 시민적 책임감과 윤리적 이상을 문학과 삶에서 일치시키려고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어린이 문학 — 시적 세계의 확장

소피아 시인은 1999년, 가장 권위 있는 포르투갈어권 문학상인 까몽이스 상Prémio Camões을 포르투갈 여성으로서는 첫 수상했다. 소피아는 『A Menina do Mar(바다의 소녀, 1958)』, 『O Rapaz de Bronze(청동 소년, 1964)』, 『O Cavaleiro da Dinamarca(덴마크의 기사, 1961)』 등, 동화 작가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은유·이미지·시적 문장이 풍부해, 사실상 ‘동화의 형식을 빌린 시’에 가깝다.


Os sonhos são barcos / Que nos levam sem vento.
“꿈은 배다. 바람 없이도 우리를 데려가는 배.”
『Rapaz de Bronze』(청동 소년, 1964)


Ser valente não é gritar / Mas saber o que é certo.
“용감하다는 것은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이다.”
『O Cavaleiro da Dinamarca』(덴마크의 기사, 1961)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세계의 윤리적 구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방식으로 문학을 썼다.

당연히 비판도 있다. 그녀의 동화가 “아름다움과 윤리를 지나치게 이상화한다”나,

언어가 맑고 단순하기 때문에 “문학적 실험성이 부족하다”거나,

교훈적이다, 설교적이다, 지나치게 명료한 윤리성을 전제로 하며, 모호함이나 불확정성의 미학을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 등등...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취향 차이!가 아닐까. 단순하고,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다. 단순한 문장 안에 윤리적 교훈, 인간적 통찰, 내적 여정을 담아내는 것이 마음에 든다.


Sophia_de_Mello_Breyner_Andresen.jpg 1975년의 소피아 시인
By Unknown / Original publication: UnknownImmediate
source: https://app.parlamento.pt/comunicar/v1/201912/61/artigos/art4.html,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79519664



소피아는 2004년 리스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해는 까몽이스·페수아와 나란히,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다.

포르투갈이 문학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다.


“Vemos, ouvimos e lemos. Não podemos ignorar.”
“우리는 보고, 듣고, 읽는다. 무시할 수 없다.” - Cantata da Paz




역사 속에서

Estado Novo 독재 정권(살라자르 체제)의 검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살라자르 정권(Estado Novo, 1933–1974)은 흔히 “온건한 파시즘”으로 불리지만, 그 ‘온건함’은 어디까지나 무장테러나 학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의미일 뿐, 문화계와 지식인 사회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검열·감시·배제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직접적 ‘숙청(purga)’보다는 검열·구속·망명 강요의 형태로요.

1933년 검열법Legislação da Censura제정으로 시작된 사전 검열은, 1936년 이후 국가선전비서국Secretariado de Propaganda Nacional (SPN) 이 주도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선전부 모델을 참고한 기관으로, 문학·연극·영화·신문·라디오 등 모든 문화 생산물을 국가가 사전 승인하는 거죠. SPN의 수장은 안토니우 페루António Ferro로, 그는 살라자르의 ‘국가 미학’을 설계한 인물이었고, “지식인은 국가의 봉사자여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비판적 작가, 좌파 성향 언론인,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출판 금지, 체포, 망명을 겪게 되죠.

1945년, 국가방위비밀경찰Polícia Internacional e de Defesa do Estado (PIDE)이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정보통제 체계가 구축됩니다. PIDE는 작가와 출판사를 감시하고, 검열 불허 도서 목록을 작성하며, 출판사·서점·도서관을 수시로 단속했습니다. 출간 후 투옥된 이후, 농촌 의사로 생계를 유지한 작가도 있고 (미겔 토르가Miguel Torga), 비판적 글로 인해 감시당하다가, 결국 브라질로 망명한 사람도 있고 (조르즈 드 세나Jorge de Sena),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벨 문학상의 작가 사라마구 역시 초기에 출판금지와 실직을 겪습니다.

이 시기, 검열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Tudo o que possa suscitar dúvidas sobre Deus, Pátria e Família será cortado.”
— “신, 조국, 가정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삭제된다.”
(Arquivo Nacional da Torre do Tombo, Fundo da Censura, Decreto-Lei n.º 22469/1933 및 내부 문서)


살라자르 정권은 나치식의 대량 학살이나 소련식의 강제수용소 대신, '불온한 사상을 일상에서 지워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문화인은 목숨을 잃기보다 침묵하거나, 사라지거나, 망명했습니다.



https://run.unl.pt/bitstream/10362/132157/1/Sophia_de_Mello_Breyner_Andresen_de_Sousa_Tavares.pdf

https://es.wikipedia.org/wiki/Sophia_de_Mello_Breyner_Andresen

https://www.uc.pt/bguc/noticias/sophia-centenario-do-nascimento-de-sofia-de-melo-breyner-andresen-1919-2004/

https://www.instituto-camoes.pt/activity/centro-virtual/bases-tematicas/figuras-da-cultura-portuguesa/sofia-de-mello-breyner-andresen

https://www.cnc.pt/ii-congresso-internacional-sophia-de-mello-breyner-andresen

https://pt.wikipedia.org/wiki/Estado_Novo_(Portu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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