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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축적

인간의 눈을 다시 열게 하는 작가, 사라마구 01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한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용서해 줘, 두 사람 다, 우리는 기적이 이루어지던 곳에 들어와 있어, 그런데 지금 내 마술의 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다 빼앗겨버렸어.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생각할 거리를 잔뜩 주는 주옥같은 문장도 많았고, 스토리와 문장 역시 몰입도가 높은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

카몽이스나 페수아처럼 리스본의 상징까지는 아니지만, 포르투갈 문학을 세계 무대로 올려놓은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인간의 존엄·도덕·권력의 어두운 구석을 파고들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작가.


숨 고르기가 길고, 문장부호는 최소한만 사용된다. 줄 바꿈도 드물다. 일상과 환상이 무리 없이 섞인다. 그 호흡 속에 엄격한 질문을 던진다 — 바로 주제 사라마구José de Sousa Saramago (1922-2010)다.



José_Saramago_for_PIFAL_by_Arturo.jpg Arturo Espinos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0, Wikimedia Commons



빈농의 아들과 첫 출간

사라마구는 리스본 출신이 아니다. 리스본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아지냐가Azinhaga라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리스본으로 이주한다. 아버지는 경찰 하급직, 어머니는 글을 거의 읽지 못했다.

사라마구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경제적 이유로 정규 고등교육을 이어가지 못한다. 정비공·철공소 직원·행정 사무원 등의 직업을 떠돌며 생계를 유지했다. 후에 그는 "노동의 세계가 내 글의 언어를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던 1947년, 스물다섯 살에 첫 소설 『죄의 땅Terra do Pecado』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책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결정을 한다 - 무려 19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은 것이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Não tinha nada para dizer.”
그땐 할 말이 없었다.


1999-Saramago4.jpg Sampinz at Italian Wikipedi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Intl, Wikimedia


20년의 침묵, 아니 축적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기간 동안 가난과 노동, 도서관과 책, 일상의 고민 속에서 조용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시야를 키웠다. 그의 말처럼, “말할 것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 20년은 사라마구의 ‘축적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페수아가 내면의 트렁크를 채웠던 것처럼, 사라마구 역시 '세상을 보는 눈'과 평민의 언어, 현실감각을 만들고 있었다. 서평가, 기고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문학적인 끈을 놓지 않았다. 또한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후에 사라마구는 "편집자 시절에 비로소 내가 문학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웠다”라고 회고한다.


연구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말하길

“사라마구가 40~50대에 했던 편집, 번역, 서평 활동이 60대 이후 폭발하는 문학적 전성기를 준비하게 했다.”

- 즉, “침묵기”는 창작 침묵이 아니라 문학과 세계를 깊게 응시하는 내적 축적기였던 셈이다. 20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은 것이지, 그 시기에 기술자·사무원으로 일하며 ‘생활의 언어’를 배우고, 신문 비평가로 활동하며 문학적 시야를 넓히고, 번역·출판 편집으로 문학 기술을 연마했던 것이다.



독재 시대와 사라마구의 정치적 성향

1933년부터 1974년까지 포르투갈은 살라자르Salazar의 독재 체제 아래 있었다. 앞서 포스팅한 페수아, 안데르센 편에도 언급되었듯이 정치적 탄압은 물론 표현의 자유 제한과 언론·예술 검열을 통해 사회를 억압한 시기다.

사라마구는 이 시기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꼈고, 그의 정치적 성향은 자연스럽게 좌파적·사회주의적·인도주의적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는 1969년 공식적으로 포르투갈 공산당(PCP)에 가입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지 정치적 연대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독재 시기, 사라마구는 시인 소피아 안드레센처럼 조직적인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사 편집자·기자로 일하던 시절, 정치 기사와 사설에서 정권 비판적 성향을 드러냈고, 검열과 직간접적 압박을 피할 수 없었다. 1975년 Diário de Notícias 편집자로 있다가, 정치적 논쟁 속에서 편집장 교체의 한가운데 놓이며 사실상 해고된다. 이후, '정치권력과 언론·출판의 관계'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은 당연하다. 이 시기의 경험이 훗날 『눈뜬 자들의 도시』의 권력 풍자에 영향을 주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ose-Saramago

https://pt.wikipedia.org/wiki/Jos%C3%A9_Saramago

https://www.josesaramago.org/en/


Portuguese Literary and Cultural Style https://ojs.lib.umassd.edu › PLCS6_Ganho_page257

https://share.google/Y2s6kEs5YUVujjkk5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6/apr/30/fiction.features1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1998/saramago/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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