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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 노벨상, 휴머니스트 무신론자

인간의 눈을 다시 열게 하는 작가, 사라마구 02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jj0772/152



첫 문학적 성공

사라마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그의 작품이 진정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였다.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 (1982) (포르투갈 바로크 시대 배경.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우화적·역사적 상상력’을 처음으로 크게 인정받게 만든 작품),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널리 읽힌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1995)로 그의 명성은 확고해졌다.


사라마구는 긴 문장 구조, 구두점 최소화, 대화 부분에도 따옴표 없이 이어쓰기를 보여주는데, 이런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Se calhar, precisamos de um estilo que nos faça desacelerar.”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를 늦추게 하는 스타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사라마구 인터뷰 중


서두르지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속 인물의 마음과 사유를 직접 느끼게 한다. 그래서 몰입도가 높다. 그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머릿속과 윤리적 판단”이라는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JSJoseSaramago.jpg Presidencia de la Nación Argentin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0 Generic, Wikimedia Commons


불온한? 작가의 반발

포르투갈 검열 아카이브Arquivo da Censura에는 사라마구의 기고문 상당수가 부분 삭제(cortes), 게재 연기(atraso de publicação), 전면 불가(recusa total) 판정을 받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는 “정권이 불편해하는 사회·종교 주제”를 자주 다뤘기 때문에 검열관들이 예의주시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리스본대 비교문학연구소 CEC)

후에 사라마구는 “그 시절에는 내가 쓰려는 것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라고 회고한다.


그리고 살라자르 사후에서 한참 지난 1991년, 『예수 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복음)』이 출간된다. 작품은 성경 이야기를 다시 쓰는 형식인데, 예수는 더욱 인간적이고, 하느님은 인간을 희생시키는 권력자로 묘사되며, 죄의 개념, 신의 정의, 선택의 잔혹함 등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르투갈 가톨릭 보수층과 정치권 일부에선 즉시 “신성모독적”이라고 반응했지만, 당시 사라마구는 이미 유럽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프랑스·스페인 등에서는 걸작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1992년, 유럽연합 차원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유럽문학상Premio Literário Europeu'의 후보리스트에서 포르투갈 정부는 '가톨릭에 불경하다offensive to Catholics'는 이유로 이 작품을 제외해 버린다. 정부가 문학상 후보를 막은 일은 포르투갈 민주화 이후 전례 없는 일이었고, '새로운 형태의 국가 검열'이라며 큰 논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사라마구는 깊은 모욕감을 느끼고, 아내와 함께 카나리아 제도 (스페인령 란사로테Lanzarote)로 이주한다.


이 논란으로 사라마구의 국제적 명성은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복음』은 이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포르투갈 현대문학 중 하나가 됐고, 1998년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뒤늦게 사라마구를 기리고 화해를 시도했지만, 사라마구는 끝까지 란사로테에 거주하며 생을 마친다.



노벨 문학상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삶

1998년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그보다 앞서 1995년에는 포르투갈어권 문학의 권위 있는 상인 까몽이스 상을 수상했다.

6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세계가 그를 알아본 셈 -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사라마구는 76세였다. 그야말로 '늦게 꽃피는 작가(late-blooming writer)'로, 그 ‘늦음’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수상 이유는 이렇게 요약되었다.


"who with parables sustained by imagination, compassion and irony continually enables us once again to apprehend an elusory reality".
우화적 상상력, 연민, 아이러니를 통해 모호한 현실을 끝없이 드러낸 작가
— Nobel Prize Motivation


그는 말년에 란사로테에서 글을 쓰고, 여행하며 정치·환경·윤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유럽연합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을 하고, 환경·기후 위기 관련 글을 다수 집필하며, 인권 관련 국제 포럼에 참석한다. 이 때문에 논란도 많았으나, 그는 “침묵은 더 큰 부정의의 동조”라며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2007년 설립한 사라마구 재단Fundação José Saramago 역시 사라마구 작품의 번역과 연구를 지원하는 일 외에, 인권, 표현의 자유, 기후 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의제로 삼는다. UNESCO와 협력해 ‘독서·문해력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무한한 책Livro Infinito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독립서점과 협력하기도 한다.


FJSCasadosBicos.jpg Fundação José Saramago,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3.0 Unported, Wikimedia Commons


재단 본부는 2012년부터, 리스본의 '까사 두쉬 비쿠쉬Casa dos Bicos' 라는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데, 16세기 건물로, 외벽의 뾰족한 다이아몬드형 돌 장식이 유명하다. 사망 후 화장된 사라마구의 재가, 건물 앞 올리브나무 아래 묻혀 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 숭고한 열망과 꿈을 품었으되,

뿌리를 둔 인간적인 삶에 충실하고 목소리를 냈던 사라마구에게 어울리는 말.


“Mas não subiu para as estrelas, se à terra pertencia.”
그는 별로 가지 않았다, 땅에 속해 있었기에.
- "Memorial do Convento"중





금서는 가장 좋은 광고다?!

사라마구의 『예수의 두 번째 복음』(1991) 논란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가 『그리스인 조르바』 이전에 썼던 작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1955) 사건과 자주 비교되죠.

종교 권력이 예술에 개입해 논란을 만든 대표적 사례입니다.


사라마구의 작품은 종교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희생'을 둘러싼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데 몇몇 장면이 특히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켰죠. 카잔차키스는 아주 인간적인 예수를 그립니다. 두 작품 다 '예수의 인간성’을 전통 교리가 불편해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고나 할까요? 연구자들에 의하면, 카잔차키스는 예수를 너무 인간적으로 그려서 문제가 되었고, 사라마구는 하느님을 너무 ‘정치적 존재’로 그려서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정교회는 이 책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카잔차키스는 사실상 파문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정식 문서 파문은 아니지만 교회는 그의 장례를 금지했을 정도) 바티칸도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정식 등재시킵니다.


"읽지 말지어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하고 고분고분 안 읽겠...

지 않겠지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금지하자마자 국제적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포르투갈 정부가 사라마구의 EU 문학상 후보를 막자, 전 세계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며 오히려 그의 명성을 확 높였습니다.

중세~근대 교회에서는 금서 목록을 운영했지요. 바티칸은 금서 목록을 1966년에 공식 폐지합니다. 금지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고, 교육적 효과도 없고, 오히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죠. 가톨릭 교리서에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고, 신학적으로도 진리를 강요로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는 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문학 작품에 대해 “읽지 말라”는 방식보다는 신학적 안내, 해석의 제시를 선택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전 『예수의 두 번째 복음』은 아직 읽지 못했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읽었습니다. 무척 예전에 나온 책이었는데, 책 표지에 아주 아주 크게 '바티칸이 금지한 화제의 책'이라고 쓰여 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역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

신성모독이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어떤 것이 보수적인 종교인들을 자극했을지는 짐작이 가더군요. 전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고 유아세례를 받은 종교인이지만, 스스로 엄격한 종교인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이 인간에게 허용한 자유의지를 믿는 편이거든요 - 신성모독의 여지가 있더라도, 그 역시 자유의지로 읽고 생각하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금지는 오히려 사고를 닫히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새로이 생각하는 사람도, 다양할 건데 말이죠. 무조건 읽지 마! 내가 읽어봤는데 이건 안 좋아! -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 사라마구는 공개적인 무신론자였습니다 -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도덕은 너무 자의적이고,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전쟁·식민주의·독재·종교재판 등)이 너무 많고, 신앙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지요. 특히 권력과 종교의 결탁을 가장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저는 신을 믿는 사람이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네요) 파시스트 독재 체제의 '국가 가톨릭주의'를 직접 경험했으니, 신앙을 정치와 권력의 도구로 쓰는 행위에 누구보다 반감을 가졌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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