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화폐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단순한 종이 쪼가리인데 많은 것을 의미한다. 무한정 많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 같고 화폐가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돈이 돈을 번다는 말처럼, 최소한 은행에 맡겨두면 저절로 이자가 쌓이듯이, 자생하여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화폐의 전지전능함을 몸으로 느끼면 이를 두고 화폐의 물신화라 한다. 화폐의 신격화인 것이다. 단언컨대 허상이다. 믿고 싶은 바를 믿는 허상이다.
지금의 화폐는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 가능하기에 화폐로서 가치를 지닌다. 시장에서 교환가치를 지니기에 화폐로서 의미를 가진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일차적으로 세금납부의 기능이 있기에 화폐로서의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소금으로 세금납부를 할 때는 소금이 교환가치를 지닌 화폐였으며 쌀, 은, 금 등 지배체제의 요구에 따라 화폐의 형태는 달라졌다. 즉 듣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단어들이지만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에서 잉여분의 공납의 용이화가 화폐의 본질인 것이다. 세금납부가 가능하기에 교환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역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시대의 가장 상위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체제는 국가이기에 지금의 화폐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시초는 영토의 배타성을 위해 말뚝 박아 놓고 보호비를 받는 집단, 폭력이 허가된 집단이다. 물론 국가의 선 기능도 있다. 국가라는 권위가 없으면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으로 전락하고 힘의 논리만이 지배할 것이다. 더 센 놈의 정당성은 더 약한 놈들 사이의 질서에 있는 법이다. 이렇듯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도 착취와 피착취의 개념은 성립하며, 만일 착취의 주체가 모습을 달리한다면 화폐의 형태도 변할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생각은 어느 순간 변해있고, 관념이 이뤄놓은 상부구조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형태는 변하지만 착취와 피착취의 내용은 그대로이다. 즉 착취의 주체만이 변해가고 있다. 먼 과거에 교황, 영주, 농노가 있었고 다음 시대에는 지배국, 피지배국, 국민이 있다. 앞으로는 거대기업, 대기업, 구독자가 있을 듯하다. 몇 해전 가상화폐 '리브라'가 미국 당국의 제재에 발행이 불발되었다. 교황과 영주의 세력다툼이 오버랩된다. 시대도 변하고 화폐도 변해가는데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증시는 연준의장의 말이 변수지만 주기성을 넘어설 정도의 이례적 언사가 아니면 상방은 제약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