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Jun 03. 2016

성공의 산물은 '부채(Debt)'

현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성공의 산물인 부채를 청산하는 것이다.

필자는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글의 요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요약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글의 제목으로 적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결론을 가장 먼저 지어놓고 역으로 글을 빌드업하는 방식이어서 글의 요지가 덜 흐트러지고 하나의 요점으로 모이는 장점이 있기에 애용하는 방식인데 오늘의 글 제목은 성공의 산물은 '부채'라는 꽤나 역설적인 표현을 선택하였다.


필자는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공학도인 동시에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 기업가이기도 하고 특히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대중화를 막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가상현실은 몇십 년간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온 주제이자 기술이었으나 매번 상용화를 가로막았던 문제가 산재했고, 근래에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글로벌 자본의 천문학적 투자로 인한 강제적 시장 개방으로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분야이다.


가령, 4K 이상의 디스플레이 기술, 정밀한 MEMS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성능 센서 등의 요소 기술의 성숙도가 증가함에 따라서 기술적인 완성도는 상용화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킬러 콘텐츠의 부재와 가상현실 콘텐츠의 내러티브 디자인(Narrative Design)이 전혀 다른 문법으로 적용되어야 하므로 본 시장과 기술에 대한 경험적 자산이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공동창업자들끼리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제작자의 의도를 반영하여 맥락과 재미를 선사하는 '편집'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360도 렌더링으로 인해 사용자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을 인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존의 문법과 경험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주 단편적으로 가상현실에 대해서 예시를 들었지만 좀 더 찾아보니 역사적으로 이렇게 전혀 다른 맥락의 등장함에 따라 대부분의 규칙과 경험이 쓸모가 없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더 나아가서는 기성공의 자산으로 칭할 수 있는 교훈과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채(Debt)'가 되는 사례가 많았다.


'오픈서베이'라는 서비스로 한국 모바일 리서치 분야의 마켓 쉐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디인큐(idincu)의 창업자인 김동호 전 대표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애플 워치의 핀치 투 줌이 없는 이유"라는 글이었는데 이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의 탄생이자 시작이었던 아이폰의 가장 큰 히트작은 두 손가락으로 확대/축소의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했던 핀치 투 줌(Pinch-to-zoom)이었다. 그러나 이 기능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애플 워치 스크린에서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과감히 본 UX를 넣지 않은 것은 성공적인 자산의 소각이었다.


전대미문의 아이폰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터치스크린'이라는 새로운 UX와 함께 했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이라는 전혀 다른 UX의 안착에 큰 역할을 한 핀치 투 줌이라는 성공은 애플에게 한동안 부유한 소득을 안겨주었지만, 애플 워치라는 제품에 있어서는 쓸모없었을 뿐 아니라 기 성공에 심취하였거나 그것을 경험한 기획자나 개발자 입장에서는 포기하고 청산할 수밖에 었는 '부채'였다는 것이다. 


오, 매우 그럴 듯한 소재이다. 그러면 이러한 성공의 경험이 그다음 혁신에서 부채가 되는 사례가 또 있긴 한 것일까? 아이폰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만 3일 만에 완독을 해버린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김정주 창업주를 시작으로 넥슨의 창업공신들부터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업의 역사를 몰입감 있게 풀어내었는데, 여기서도 성공의 산물이 곧 부채가 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넥슨하면 떠오르는 초기 플래그십 게임은 아무래도 <바람의 나라>였을 것이다. 지금의 넥슨을 있게 했던 게임이었고 필자가 어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많이 했던 게임이었다. 사실 <바람의 나라>, <리니지>류의 게임은 초기에는 정액 요금제로 유료로 진행이 되었었다. 단순한 유료 모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교훈과 경험을 얻은 넥슨은 작고 귀여운 게임이 이었던 <퀴즈퀴즈>를 론칭 이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2000년 1월 2일을 기점으로 기존 게임들과 같이 똑같이 유료화를 시도한다. 그 결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추억의 바람의 나라:)


"... <퀴즈퀴즈> 열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전락했다. 이용률은 하루아침에 반 토막이 났다. 아무도 PC방에서 <퀴즈퀴즈>를 안 했다. .... 무리한 유료화로 하루아침에 게이머의 70퍼센트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유료화의 성공의 경험을 캐주얼 게임이었던 <퀴즈퀴즈>에 그대로 이식했더니 결론적으로는 실패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 당시 세이클럽의 캐릭터 꾸미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전 세계 게임 역사상 처음으로 '부분 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시켰다. 넥슨 역시 성공의 경험을 '부채'로 청산하고 큰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내가 풀고 있는 문제 역시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는 경험의 부채들로 인해 새로운 시도를 막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떤 이들을 이를 선입견이라고 하기도 하고 고정관념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우리 인간이 이제까지 시도해서 성공해온 교훈들이 어쩌면 우리의 발전적 진화를 가장 저해하고 있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필자 그리고 우리 회사는 이러한 기 성공의 교훈을 '부채'로 인식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소각하거나 새로운 혁신으로 돌파해나가기를 기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