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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Feb 10. 2018


9년간, 김연아의 길

'더반(Durban)부터 평창까지'

'PYEONG CHANG!'

2010년, 2014년의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평창이 3수 끝에 2011년 남아공의 더반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2018년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포커 페이스로 유명하던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이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황한 표정 끝에 'PYEONG CHANG'이라고 쓰인 카드를 뒤집어 보일 때는 뿌듯함과 더불어 유치를 위해 고생한 사람들의 울컥한 모습이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2011년의 유치부터 2018 평창올림픽의 개최까지 김연아 선수의 길을 짚어보고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의 의미를 담고자 한다.


2010년 밴쿠버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한국 동계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그녀에게 다음 행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만을 향해서 여념없이 달려왔다던 말을 반복하던 인터뷰들을 통해 그녀에게 2010년은 선수로서 절정에서의 순간이자 또다른 시작에 대한 혼돈이었으리라.


여느 스포츠 스타처럼 유명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관심이 어느 순간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3수 도전이 기정사실화되고부터 '동계스포츠 불모지'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국제적인 인지도를 더욱 높여 이번에는 어떻게든 성공시켜야한다는 국가 수반의 결정이 이루어졌고 2018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 공식적으로 김연아 선수가 조인하고,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의 IOC 총회까지 1년여 간 수많은 프레젠테이션과 각고의 노력 끝에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국가의 부름과 소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외부의 시선으로의 그림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으나 '선수로서의 김연아'는 급박한 행보였던 탓에 다음 발자국을 생각할 여력이 조금은 부족했을 시기였다. 잠깐 숨을 돌리니 2012년이었던 그 당시, 벌써 2년 앞으로 다가와버린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대한 김연아 선수의 출전 여부에 대해 그리고 이미 지난 시즌을 쉬었던던 '경쟁 대회로의 선수 복귀' 여부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급기야, 2012년 7월, 기자회견을 연다. 


< 2012.07월 거취 관련 기자회견 전문 >

안녕하세요.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입니다. ...저의 인터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외부에 비춰지는 모습 하나하나가 여러분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때마다 저는 그 관심에서 조금이라도 한발짝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또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몸상태와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고된 훈련을 계속해야할까, 또 대회에 나가 행여 실수라도 해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게되면 어떻게하나 하는 압박감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훈련과정과 대회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위해서 제가 현역선수로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를 계속 짓눌러왔던 선수생활의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었던 것이 스스로의 또는 국민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이 아닐까…스스로가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피겨 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를 삼으면 되지 않을까,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인생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새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저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피겨 선수들과 똑같은 국가대표 김연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소치올림픽에서 현역 은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선수생활 종착역을 밴쿠버올림픽으로 정했지만 이제 그 종착역을 소치올림픽으로 연장시키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


경쟁대회로의 복귀를 결정하고 소치 올림픽 출전을 선언했으며 쓰여진 문장마다 오랜 고민이 여실히 묻어났던 기자회견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와 동시에 용단과 과감한 비전에 감동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경쟁 대회에 출전하는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전환은 절대 쉽지 않았다. 세계 각국 개최되는 대회를 위한 준비가 연이어질 뿐만 아니라 2014 소치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제 대회 출전 요건을 채워야 했고,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국제 행사 등 시대가 준 무거운 책임감과 본인의 결정으로 인한 의무가 그의 생활을 가득 채웠으리라.


특히, 오랜만에 출전한 2013년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다시금 여왕의 복귀를 선언하며 우승을 했고 후배 선수들을 위한 올림픽 출전권 티켓을 2장을 추가로 더 취득하며 후배와 빙상 인프라 개선을 위한 활동도 놓치지 않았다.


다시금 스케이트끈을 묶은 후,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에 그쳤지만 여기까지 와준 김연아 선수의 연장된 도전에 국민적 고마움이 훨씬 더 컸고, 키스앤크라이 존 이후 인터뷰에서 그의 여정을 지켜본 이들의 존경과 미안함을 담은 격려에 터져버린 그녀의 눈물이 생중계되었다. 4년에 달하는 선수생활 연장과 드라마틱한 대내외적 상황이 모두 끝나고 난 뒤 2014년 은퇴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당시 공식적인 직함으로는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만 활동하던 김연아 선수는 평창올림픽에 국민적 관심이 소홀해질 때에도 그 자리에서 꾸준히 본인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었다. 유치 당시에 김연아 선수와 함께 했던 대부분의 분들이 불미스러운 사정으로 올림픽 관련 중대한 위치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잇따라 있음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국제 정치 속 각국의 스탠스가 북한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변화하는 형국에서도 그 자리를 지켰다.


드디어 평창 올림픽의 개회식이 있던 어젯밤. 남북한 단일팀의 성화를 전달 받으며 그녀를 상징하는 은반 위의 스케이트를 신고 그렇게 지켜왔던 올림픽의 성화의 마지막 주자로서 모습을 볼 때는 많은 이들이 울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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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닥쳐온 국가를 위한 일에도 굳은 책임감으로 그 자리를 지켰던 


김연아 선수의 9년은
주니어 선수로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달성할 때까지의 기간보다도 더 길었으며, 지구 반대편의 더반에서 평창 까지 수천km를 이어온 위대한 여정이었으리라.

이러한 김연아 선수의 다음 행보가 어떤 것이 되더라도 묵묵히 뒷모습을 응원해줄 것이며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함을 가지고 본인만의 새로운 비전을 가꾸는 삶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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