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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침 Dec 27. 2023

새해엔 힘을 빼 볼까나

힘든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사람 때문에, 욕심 때문에, 삶 때문에.


영국의 국회에서 생긴 일이다.

국회의원 두 명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말문이 막히자 토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신공격에 나섰다. “당신 수의사 출신이죠?” 수의사 출신이 무슨 정치를 알겠느냐 하는 비아냥 거림이었다. 이럴 때 보통 사람 같았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수의사 출신과 이 토론의 주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화부터 냈을 것이다. 그러나 공격을 받은 의원은 달랐다. 잠시 한 호흡을 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수의사 출신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디가 아프시지요?” 힘을 뺄 줄 알았고 마음을 비울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졸지에 동물이 되어버린 상대의원은 개구멍이라도 찾아 도망가기에  바빴다.       


예전 선비들이 즐겨마시는 술잔에는 계영배라는 것이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술을 따르면 한꺼번에 술이 밑으로 빠져버리는 잔이다. 술을 절제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절주배라고도 한다. 불길같이 타오르는 욕망을 적절히 다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행복은 현실을 욕망으로 나눈 값이라 한다. 분자인 현실의 삶은 유한한데 분모인 욕망은 무한히 커지고 싶어 한다. 행복지수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최근에 경연 프로그램이 많다. 트롯을 비롯하여 댄스, 가요, 밴드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여기 공통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상대를 이기려고 많은 것을 집어넣고 힘이 잔뜩 들어가는 가수는 대부분 점수가 낮게 나오곤 한다. 오히려 힘을 빼고 평소의 자기 스타일대로 즐겁게 부르는 참여자가 이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비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골프를 비롯한 모든 운동종목도 마찬가지이다. 힘 빼는데 3년 걸린다는 말처럼 이기려 하면  힘이 들어가서 결국 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이나 서예도 마찬가지이다. 더 잘 그리려고 욕심이 들어가면 덧칠을 하거나 개칠을 하여 난삽하게 되고 그림이나 글씨가 굳어진다. 소위 살아 움직이는 작품은 거의가 힘을 빼고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일필휘지 한 것이 많다.

영화에서 그렇다. 주인공이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상대가 주인공에게 총을 겨눴을 때 ‘쏠 테면 쏘아보라’고 자신을 내려놓는다. 대부분의 경우 총을 쏘지 못한다. 비움의 힘이다.      


우리의 삶은 늘 무언가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 욕심으로, 계획으로, 돈으로, 성적으로, 계급으로, 술로.... 그래서 많은 성인군자들이 그리 채움보다 비움을 강조했나 보다. 무위자연을 역설한 노자도, 많은 것을 보려면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니체도 그렇다.

거리에 낙엽을 치우는 청소부, 다음을 위해서는 가진 것을 놓아버릴 줄 아는 나무의 지혜를 한 소쿠리씩 쓸고 있다. 바쁜 거리도 한가로이 비워지고 있다. 굳이 산티아고까지 걷지 않아도 조용히 차 한잔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계절.


염려가 지나치면 한 번에 확 쏟아져 버리는 계영배라도 있었으면 싶은 세모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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