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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침 Apr 04. 2024

여행과 예술 사이

여행을 하다 보니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언제 가도 잠깐 지나면 일상이 되고 마는 것을. 그 권태, 지루함이 행복이다. 지금, 여기가.


트레킹을 하다 보면 인내를 배운다. 4000미터를 넘으면서 고산증을 받으면 침착하게 응대해야 한다. 건방을 떨다가는 저 산너머에 앉아있는 저승사자의 눈에 띌 수 있다. 참고 기다리고 후퇴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걷다 보면 온갖 들꽃과 친하게 된다. 갖은 모양의 구름과 얘기도 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내음과 실크보다 부드러운 바람에게 내 살을 맡겨야 한다. 닫혔던 오감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캠핑을 하다 보면 불편함의 극치를 느낄 때가 많다. 세계일주 중엔 150일 중에 120번을 텐트를 친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새로운 곳으로 옮겨 다녔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야영장이 아닐 수도 있다. 한밤에 비가 들이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감수하면 너무나 대조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옥색의 호수, 천년의 빙하자락, 무궁한 밤하늘, 멀리서 들리는 늑대 울음.. 그런 자연의 병풍이 주는 오감의 만족, 영화 같은 분위기가 인간에게 주는 오묘한 힘을 느낀다. 한적한 곳에서 불멍이라도 해보라. 등이 차가울수록 앞이 따뜻한 것을. 검은 그림자가 있어 밝은 빛의 순간이 아름다운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디 20 여불 주고 이런 득도를 할 수 있으랴.


자유여행을 하다 보면 매일 실수 투성이다. 길을 잘못 들어 수십 킬로를 돌아가고, 배터리가 나가서 에어비엔비와 연락이 안 되고, 1등 칸에 잘못 타서 쫓겨나고, 터미널을 잘못 알아 비행기를 놓치고... 그런 순간 나의 심장은 이상하게 두배로 커지고 뇌의 부피가 늘어난다. 하루가 쫄깃해진다. 생선요리다. 위험한 가시들을 헤치고 마침내 맛있는 부위를 빼먹는 맛이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여행의 계획과 방향이 틀어지면서 인생의 운칠기삼을 배우며, 아찔한 도난사건을 통해 내려놓음과 비움을 습득할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은 학교인가. 특히 카메라를 분실하면 만나는 매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동자가 세배로 커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디 여행뿐이랴. 예술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물을 파는 것이다. 끝없이 나의 내면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예술은 우등생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회나 다른 이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데 그쪽은 어떻게 느끼냐고. 질문이 없는 그림은 그저 이발소 그림일 뿐이다. 따라서 예술은 자신을 찾아가는 지난한 구도의 여정이며 철학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현대서예는 밀밀소소를 강조한다. 화선지 내에서 몰려있는 곳은 더 빽빽하게, 한가한 곳은 더 비어있게 하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힘겨운 터널을 빠져나올 땐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비울 땐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펜을 들고 금쪽같은 단어를 채굴하는 것이다. 예리한 눈으로 멋진 수석을 골라 줍는 행위이다. 주제에 맞는 퍼즐을 찾아 끼워 맞추는 것이자 모든 단어를 대입하고 녹여 새로운 단어를 뽑아내는 연금술이다. 광맥이 하나 터지면 온갖 사람들이 모여 들 듯이, 그런 들뜬 마음의 광산을 찾는 일이다.  

      

결국 여행은 끝이 없고 예술은 답이 없는 행위다. 그 있지 않은 세계를 찾아 오늘도 나는 짐을 싸고 붓을 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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