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먹다가

by 걸침

감자는 아버지


남미의 조그만 은광 깊은 갱도에서

천근 같은 곡괭이를 쳐들게 한 것은 감자

유럽 땅을 은으로 덮은 스페인 왕국의 힘

화려했던 은광 대신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 되고


몸을 으스러 집안을 일군 아빠

이제는 으깨진 감자


감자는 엄마


보잘것없어 세금반열에도 못 오르고

집안의 귀한 곡식처럼 도둑맞을 일도 없는

수많은 전쟁 속 민초들의 목숨을 지킨 것

유럽의 모자란 감자가 민족대이동을 낳았고

미국 캐나다로 흘러가고 감자가 케네디를 낳고


울엄마는 그저 빈들만 지킨 돼지감자


감자는 자식

바람만 불어도 바이러스에 걸리고

생으로 놔두면 함부로 싹이 트고 맘 상하는 아이

어렵게 키웠더니 3포 7포 시대

결혼도 출산도 취업도 주택도 희망도

방구석에서 혼자 싹 트고 있는 아들을 본다

그래도 그래도

오늘은 손주의 씨감자 두 알을 만지며

내일의 왕국을 꿈꾸는

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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