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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관찰 일지 속에서

개개 어린이들의 관심분야를 관찰하고, 그들이 관심 갖는 분야에서 흥미를 잃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교사는 늘 어린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관찰을 멈추지 않고 기록을 해 둔다. 

 

재미있어야 쉽게 배운다’라는 것이 우리의 기본 교육 철학이다. 어떤 때는 오랫동안 같은 관심 분야에 머물러 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심 분야를 바꾸기도 한다. 어느 누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고 어떻게 그들의 관심분야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으로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파고들 수 있게 도와줄까 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였다. 늘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을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매일 새로웠다.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늘 새로운 생각을 뱉어내는 데 있어서 어떤 장애도 없어 보였다. 나는 매 순간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기억한다. 그 놀라운 경험에는 박장대소할 만큼 즐거운 일도 있었고, 가슴이 서늘할 만큼 놀랄 일도 있었고, 또는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몰라 좌절하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을 면밀히 관찰한 일기에 있을 줄 알았더니 어디에 보관했는지 날아가고 없다. 어느 구석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찾아냈을 뿐이다. 그중 몇 가지를 옮겨본다.


만 4살 오스카가 '전기어 electric fish'에 대해 흥분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양손을 옆으로 길게 뻗어 물고기를 크게 묘사해 보였다. 전기를 만드는 물고기라고 했다. 나는 전기가 뭐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스카가 설명하기를 ‘만약 전기가 지나가면 우리의 뼈가 보인다’라고 말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 그 생각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만화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사람이 해골로 변하고 그 주변으로 뾰족뾰족한 날카로운 패턴을 그려 넣은 전기 충격받은 그런 장면 말이다.

 

가만 설명을 듣다 보니 물고기에 대해서라기 보다 전기에 흥미가 많아 보였다. 전기에 대해 책을 같이 찾아볼까? 했더니 좋아했다. 전기에 대한 책에는 그가 말하는 뼈가 보이는 내용이 없었고 오스카는 책을 계속 넘기면서 나를 자꾸 돌아보며 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도 했다. 결국 엑스레이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음 날 내가 언젠가 병원에서 찍었던 엑스레이 필름을 가지고 가서 보여주었다. 내 두상과 목부분이 나와있는 것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지만 오스카는 갈비뼈 부분이 없는 것을 너무 서운해했다. 

 

교사 휴게실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일하던 동료가 집안사람 중 엑스레이 기사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친척 분에게 이야기해서 주인 없는 엑스레이 몇 장을 얻어다 주겠다고 했다. 바로 다음 날 그 엑스레이 사진은 도착했고 오스카는 엑스레이 속 갈비뼈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다시 자신의 몸에 있는 갈비뼈를 만지며 좋아했다. 

 

오스카의 흥미가 계속되는 것 같아 학부모님들께도 혹시 집에 엑스레이 사진이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모은 엑스레이 사진을 자신의 몸에 대조하거나 그 엑스레이 주인의 몸에 대조하며 몇 날 며칠을 놀았다. 그렇게 시작된 엑스레이 놀이는 신체의 골격을 공부하는 일로 진행되어 신체 뼈나 근육에 대한 책이 한 때 유행이었다.
 

만 4살인 올리버는 늘 뭔가를 긁적거리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그 주위를 빼뚤빼뚤 자르고 있었다. 깃발을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깃대도 만들 거냐고 했더니 거절했다. 만들어진 깃발에 뭔가를 그려 넣었다. 나는 깃발에 그려 넣은 그림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 이름이야’하고 말했다. 쓰는 것과 그리는 것이 다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호주의 초등학교에는 5학년이나 6학년이 되면 갓 들어온 킨더가든 어린이들을 한 명씩 맡아 돌보아주게 하는 학교가 많다. ‘버디 buddy'라고 부르면서 학교의 모든 것이 서툰 신입생들에게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하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마치 갓 입학한 학교에 고학년인 형제자매가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끔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한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버디가 한 장의 그림을 선물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여럿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고 그 위에 복잡한 알파벳이 나열되어 있었다. 주로 알파벳 순서의 뒤쪽에 있는 x, y, z, 등등을 길게도 나열해 두었다. 딸이 그 글자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 글자를 모르냐는 듯이 당당하게 레스토랑이라고 했단다. 우리는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레스토랑의 알파벳이 그 아이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길다고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어렵다고 생각되는 알파벳으로 길게도 써 두었던 것이다. 그림을 보고 그 글자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 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다 다르다. 아이들이 특정 놀이를 좋아할 것이라든지, 바깥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겁 없는 편견이다. 

 

노아는 만 4세 남아다. 순한 인상에 씩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늘 조용하고 혼자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했고 뭘 먹을 때도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 먹고 밖으로 나가느라 정신없이 구는 시간에도 서두르는 법이 없이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듯 천천히 꼭꼭 음식을 음미하곤 했다. 바깥 놀이터에서도 감찰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천천히 들러 보곤 하였다. 

 

하루는 노아가 바깥 모래 놀이터 가장자리에 놓인 나무 계단에 똑바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어디가 아픈지, 피곤한지 등을 물어보았더니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면서 아주 조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귀찮으니 말 시키지 말라는 투였다. 그의 모습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세상 일에 초월해서 무념무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 옆에 같이 누웠다. 하늘의 구름과 살랑이는 나뭇잎들이 눈 위에서 떠 다녔다. 가만있다가 나뭇잎이 하나 떨어지길래 별로 주울 의지 없는 손짓을 하며 팔을 들어 올려보았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뭇잎이 스르르 나에게 떨어져 내리자 그 아이가 고개를 약간 돌려 씩 웃었다. 나도 웃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서로 강한 신뢰감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다른 날 더 많은 아이들과 하늘을 쳐다보는 놀이를 했다. 모두 잔디밭에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어떤 모양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뭇잎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어떤 소리를 내는지에 대해 우리들은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조잘댈 만큼 하늘에는 많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었다.  


우리의 간식 시간에 일어난 일 한 가지 더 한다. 

호주에는 서양배가 많으나 최근 일본에서 들여온 나시 배도 꽤 많다. 서양배와는 질감이 다르고 시원하고 단 맛이 많아서 서양배보다는 우리 배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우리 배보다 작고 맛이 덜하다. 어느 날 3세, 4세반 아이들에게 서양배와 나시 배를 보여주었다. 나시 배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 과일 이름이 나시라고 일러주었더니 그 이름이 재미있는지 ‘나쉬’, ‘내쉬’하면서 돌아다녔다. 


오후에 그 배를 나누어 먹고 두 배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정확히도 나시가 주스가 많다고 말했다. 대화는 주스가 많은 과일, 주스를 만들 수 있는 과일과 채소 등으로 번져나갔다. 오이도 주스가 되냐고 물어서 아이들이 한바탕 웃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소는 주스를 숨기고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왁자지껄해지더니 이번에는 우유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어떤 아이는 우유는 주스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 이유가 우유 색깔은 주스 색이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따로 밀크라고 한다고 매우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우유는 어디서 올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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