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이 공간의 느낌에 끼치는 영향
어디론가 여행을 갈 때면 종종 아내가 가고자 하는 카페에 따라간다. 일의 연장선으로 공간이나 배경이 멋진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가는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에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고 즐겁게 룰루랄라 따라가는 편이다. 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나는 사진 촬영에 관심이 없고 다행히 아내도 잘 알고 있다 ;)) 커피는 맛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음악이 귀에 들린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의심이 시작된다.
'이렇게 공들여서 꾸며놓은 카페에서 이 시간에 이런 음악을 틀어 놓고 있다고?'
그리고 자동 반사적으로
'이 카페의 커피는 맛이 없겠군...'으로 연결된다
여행지 근방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는 꽤나 돌아다녔지만 슬프게도 이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시작부터 배경음악이 뭔가 좀 아니다 싶으면 커피는 맛이 없었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세세한 디테일마저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 이런 음악을?' 하고 귀가 쫑긋 선다면, 커피 맛도 훌륭한 경우가 많았다.
전자의 경우는, 인테리어에 공들여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 공간의 공기를 울리는 음악까지는 미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일 테다. 이런 디테일을 놓치는 곳은 다른 디테일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 배경 음악의 성공과 실패를 기준으로 하는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합한 결론에 이르렀던 것 같다.
'비교적' 예민한 편에 속하는 나의 청각은, 음향을 전공했기에 트레이닝받았던 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생각된다. '비교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주변에 음악과 음향 관련 업종에 계신 분들이 많은 탓에 직업적으로 미세한 차이도 더 극명하게 분별해내는 정말 민감한 귀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청각 정보보다 시각 정보가 더 빨리 전달되니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종을, 누군가는 가구의 배치나 내부의 색감을 먼저 보겠지만 나는 음악부터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직업병의 일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반면에 청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은 대체로 무딘 편이다. 최악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정도다. 심지어 예민하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청각도 내가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소리만 잘 들을 뿐 딱히 귀가 밝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아주 작은 볼륨이지만 반복되는 소음이라던가 마치 픽셀이 깨진 이미지처럼 해상도가 떨어지는 음악 소리 같이 특정하게 싫어하는 소리만 더 크게 잘 듣는다.
이런 능력 아닌 능력이 일상에서 불필요하게 발현될 때 신경이 예민해지고 피곤해 지고는 한다. 예를 들면 소음이나 소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릴 때다. 카페와 같은 곳에 갔는데 분위기와 맞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면 음악이 아닌 다른 부분이 만족스러울지라도 그 공간에 있는 것은 매 순간이 굉장히 불편하다. 그것은 후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나서 못 견딜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들려줄 바에는 차라리 아무 음악도 없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한 컨셉이 아닌 이상 음악이 없는 상업적인 공간이라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숙제인 것이 사실이기에 그냥 이럴 때는 이런 종류의 음악이 분위기에 더 묻을 텐데 라고 혼자 생각만 하고 만다.
마트에서 여유 있는 느린 배경음악을 사용하여 고객들이 매장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린다거나 반대로 빠른 음악을 사용하여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는 식당의 예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그저 음악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연구 사례도 있다. 와인 판매대에서 독일의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독일산 와인을 더 많이 구매하고 프랑스 음악이 나오면 프랑스 와인을 더 많이 구매한다. 또한 팝 음악이 나올 때 보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나올 때 사람들은 더 비싼 와인을 더 많이 구매한다고 하는데, 이는 구매자가 스스로를 더 세련되고 부유하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음악이 사람의 주의를 산만하게 흩트리지 않고 듣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도록 세심하게 계획된 음악은 일종의 '청각적 벽지'와 같은 효과를 낸다. 몇몇은 음악이 은연중에 사람을 이끌고 있다는 속내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일 뿐 대부분은 귀에 들리는 음악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음악을 선곡한 사람의 의도에 맞게 따라간다.
이렇게 배경음악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면 분명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손해 일 것이다. 음악이 잘 들리기 위한 곡을 고르고 볼륨을 높이지 말고 무의식 중에 원하는 방향으로 유인(?) 하기 위해,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잘 고른 음악은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좋은 음악이란 유행하고 있는 히트곡이나 누구나 다 아는 명곡이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듣는 음악의 양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는 음악이 나왔을 때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곡의 좋고 나쁨의 기준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평생 동안 다 들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곡 (*스포티파이 기준 약 6,000만 곡) 이 있는데 그만큼의 새로운 곡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니 오히려 모르는 곡이 공간과 잘 어우러져 나오면 더 즐겁더라.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청각적 벽지'와 같은 상태를 상당히 선호한다.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공간과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 자체로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공간이 가진 무드와 조화롭게 엮여 있는 배경음악이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만족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음악의 효과적인 사용은 장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스코어 (Score)와 같은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장면과 스토리에 몰입한 관객은 영화를 보는 중에는 인지하기 힘들지만 장면을 극대화시키는 음악과 소리의 조합이 영상에 덧입혀져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 어떤 음악이 나왔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개인적인 공간에서도 상황에 따라 이런 효과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나의 경우 크게 집중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을 할 때는 주로 빠른 비트에 가사가 없는 테크노나 트랜스 류의 음악을 듣는다. 가사가 없는 트랙이 많으니 음악으로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고 빠른 BPM은 업무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올려준다. 훌륭한 DJ 셋이라면 90분 - 120분 정도는 쉬지 않고 달려주니 내가 얼마 동안 일을 하고 있는지 시간의 개념도 사라진다.
반대로 머리를 비우거나 집중해야 할 경우에는 엔델 (Endel)이라는 어플을 사용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큐레이션 된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무 음악이 없는 것보다는 분명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다시 카페 얘기로 돌아와서, 모든 사람이 음악에 대한 선별 기준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럴 때는 이미 만들어진 플레이리스트를 잘 골라서 사용하는 것도 비교적 간단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업계에 매년 소문만 돌다가 드디어! 2021년 1분기에 한국에 론칭한다고 알려진 스포티파이 (Spotify)의 경우 음악 장르를 5,000여 개로 분류하고 곡별 무드는 그보다 더 많은 몇만 개 단위로 세분화하여 각 유저에 맞게 알고리즘이 짜여 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하다.
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유저의 취향을 고려한 새로운 음악을 추천하는 기능과 약 40억 개의 플레이리스트가 있기에 조금만 신경을 써서 찾는 수고를 들인다면 날씨, 분위기, 시간에 따라 골라 들을 수 있는 몇백 시간 분량의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세계적인 레이블, 호텔, 매거진이나 특정한 스타일에 특화되어 있는 전문가가 큐레이팅 한 믿고 들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도 수도 없이 많으니 여러 가지 상황에 맞을만한 음악을 플레이리스트 단위로 선별해도 작지 않은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카페 체인 스타벅스의 플레이리스트도 있다. 스타벅스는 여러 가지 무드의 곡을 큐레이팅 하여 플레이리스트 별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20시간 이상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스타벅스 플레이리스트만의 선곡 기준 덕분인지, 가끔 들을 때면 집의 거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마치 스타벅스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힙'한 공간에서는 이루어지는 방식인데,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비용을 투자할 여유가 있다면 음악 큐레이션 관련 전문가인 단체나 디렉터와 협업을 하는 방법도 있다. 브랜드 지향점, 계절, 고객 성향 등 다양한 요소를 심사숙고하여 만들어지는 선곡 작업은 보다 효과적이고 긴밀한 접근이 가능하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커피 맛집 OR Coffee의 경우 브뤼셀의 역사적인 공연장 Ancienne Belgique(AB)와 역시 브뤼셀의 대표적인 중고 음반샵 Caroline Music과 협업하여 정기적으로 카페와 어울리는 좋은 음악을 선정하고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아름답고 특색 있는 인테리어, 감미로운 커피의 향기, 테이블과 컵의 촉감, 커피의 진한 맛 그리고 공간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좋은 음악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다.
여행의 추억, 일상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음악은 누구에게나 있다. 공간을 대표할 수 있는 음악을 구성하여 방문자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되어 기억 어딘가에 깊숙이 남아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커버 이미지: 인생 커피 맛집♡ © Origin Coffee (Shoreditch/London, UK)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