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의 낮과 밤
10월 말 암스테르담의 새벽은 꽤나 쌀쌀했지만 열기는 밤새도록 식지 않았다. 동이 틀무렵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하루의 고단함과 피곤함 보다도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아쉬움이 더 컸다. 일하러 해외에 나와서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이렇게나 아쉬웠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암스테르담에서의 길고 긴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갔다.
'밤의 시장 (Night Mayor)' 이 이끄는 나이트 라이프 (Nightlife)로 유명한 도시. 클럽 (Club) 문화, 슈퍼스타 디제이 (DJ)와 세계적인 전자음악 (Electronic Music) 프로듀서를 배출하며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이 도시의 진면목은 해가 지고 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네덜란드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클럽에서 매일 같이 놀고 아르바이트도 하던 시절부터 꽤나 친숙한 나라였다. 어린 시절 영국의 레이브 (Rave), 베를린의 러브 퍼레이드 (Love Parade), 프랑스의 프렌치 디스코가 명성을 날리던 시절에도 유로 댄스와 트랜스의 명성이 높았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적 배경을 가진 나라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댄스 뮤직, 전자음악 박람회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 (Amsterdam Dance Event/이하 ADE)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의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투어에서 기착지가 아닌 최종 목적지로 가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곳에 가기까지의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관문 스키폴 (schiphol)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렇게 가슴 뛸 일인가 싶었다. 초대형 페스티벌도 몇 번 가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느 국제공항을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길게 늘어선 출입국 심사대의 대기줄이 먼저 우리를 반겼는데, 누가 봐도 ADE에 왔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와 함께 대기줄에 함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선 검은색과 노란색으로만 되어 있는 이전 연도 ADE의 머천다이즈를 입고 있거나 백팩을 메고 있는 사람, 디제이들이나 사용할 법한 전문가용 '유선' 헤드폰 모델을 끼고 있는 사람, 만에 하나 도착 지연이나 파손을 대비해서 직접 기내 수하물로 장비용 하드케이스 전문 브랜드의 들것을 손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99%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대기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공항에서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를 흥분시킨 또 한 곳의 포인트가 있었으니, 그것은 면세구역 내에 위치한 ADE 관계자 등록 데스크. 이럴 수가... 네덜란드의 플래그 캐리어 KLM과 파트너 쉽으로 되어 있는 게 무슨 차이가 있었는지 싶었는데 ADE의 관계자 등록과 비표 전달을 위해 KLM의 고객 응대용 데스크에서 관계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니.
보통 이런 데스크는 공항 도착 게이트를 나가서 있기 마련인데, 항공편을 이용해서 암스테르담에 방문하는 엄청난 수의 관계자들의 편의를 위해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땅을 밟기도 전에 Wolcome to ADE!로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관계자 등록은 시내 몇몇 포인트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공항에서 미리 관계자 등록을 마치고 나간다면 굳이 시내의 등록 데스크까지 방문하지 않고 목적지로 갈 수 있으니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아티스트와 스텝분들에게 오늘과 내일의 간단한 일정 브리핑을 한 후, 피로를 풀고 정신을 좀 가다듬기 위해 샤워를 하고 급하게 ADE 공식 오프닝 파티 장소로 향했다.
보통 참석했었던 전야제 형식의 오프닝 파티라 하면 그래도 규모가 좀 있는 공간에서 뭔가 뻑적지근하게 행사 시! 작! 우와아-! 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큰 축제에서 내가 초대받았을 정도이니 당연히 엄청 큰 곳에서 하겠거니 싶었다. 파티 장소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암스테르담 구시가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건물에서 진행됐다. (커버 이미지의 오른편에 있는 높은 빌딩 / 출처 https://www.adamlookout.com/)
사전에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나름 스카이라운지와 같은 레스토랑도 있고 도시에서 랜드마크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위로는 타워가 있고 지하엔 거대한 규모의 벙커가 있는 건가 싶었다.
의외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근처에 아이 필름 뮤지엄 (Eye Film Museum)이나 NDSM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낮에는 활기찬 곳으로 알고 있는데 해가 지고 나면 인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곳인가 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간단하게 이름과 신분증 확인을 한 후 안내 직원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대충 20층쯤 되어 보이는 빌딩이 높이에 비해서 엘리베이터가 되게 많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서야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냥 오프닝 파티, 전야제가 아니고 VIP 파티였구나. 내가 탔던 엘리베이터에는 1층과 내가 가는 층의 버튼 이렇게 딱 2개의 버튼만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루프탑 프라이빗 파티구나. 그것도 암스테르담에서 루프탑이라니.
파티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내부와 사람들을 스캐닝하고 분위기를 즐겼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노심초사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없고 끼리끼리 몰려서 가벼운 수다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나 빼고 이미 서로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런 파티의 특징이라면, 분위기 깨는 이상한 소리만 안 하면 적당히 흐름을 보고 끼어 들어가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대충 분위기 보면서 몇몇 그룹에 스며들어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본격적인 ADE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행사가 시작했다.
해당 연도에는 특히나 (네덜란드인 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Dutch Dance라는 책의 출간 기념식도 겸했다. 지난 30년의 네덜란드 댄스 뮤직, 일렉트로닉 뮤직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었는데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댄스 뮤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가 되었는가 자축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 책은 오프닝 파티뿐만 아니라 내가 갔던 2018년의 ADE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관계자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이 책으로 하여 '네덜란드=댄스 뮤직'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정판은 아니고 암스테르담의 멋진 책방 메리고 와일드 (Mary Go Wild)라는 서점에서도 여전히 팔고 있으며 영어 독해가 수월하다면 충분히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 DUTCH DANCE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멜크웨그 (Melkweg)에서의 공연이 있었다. 이전 글에서도 멜크웨그의 간략한 소개가 있었는데, 이 공연장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 건물로 설탕 정제공장, 우유 공장을 거쳐 1970년부터 비영리 단체가 공연장으로 운영이 하고 있는 곳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파라디소 (Paradiso)와 더불어 가장 역사적인 공연장임은 물론 1997년에 처음 시작된 ADE의 행사를 진행했던 4곳 중 한 곳으로 ADE의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위치 또한 핵심 지역으로 대략 100m 반경 내의 모든 건물에 클럽이 들어서 있을 만큼 클럽 밀집 지역이다.
비록 멜크웨그의 4개 홀 중 가장 작은 홀에서 공연을 하기는 했지만 ADE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또한 멜크웨그의 프로그램에 올라가는 등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중요한 공연장에서 하니 잘 될 것이라 호언장담 했지만 이디오테잎의 공연이 있었던 수요일은 대형 아티스트들이 주로 공연하는 수목금 중 첫째 날이었고, 역시나 다른 대형 베뉴들 웨어하우스 (Warehouse) 나 대형 클럽에서도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쉬지 않고 공연이 있었기에 모객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멜크웨그가 클럽 수십 개가 모여있는 중심가에 위치하기에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었지만 ADE의 공연들이 암스테르담 시내 전역의 베뉴에서 펼쳐지는 만큼 대형 베뉴들은 시외각에 위치해 있어서 관객이나 관계자들은 일찍부터 미리 이동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다행히 ADE를 1997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멜크웨그라서 그런지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공연시간도 잘 세팅해주었다.
멜크웨그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디오테잎이 공연했던 저녁 8시는 ADE 데이 프로그램인 컨퍼런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이트 프로그램인 페스티벌로 각 베뉴들로 흩어지는 시점에서 시작시간이라 다른 큰 베뉴들을 가기 전에 이디오테잎의 공연을 보러 오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시간 계산이 적절했는지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나의 할 일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인데 단순히 관객들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는 관계자들을 많이 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 전부터 ADE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참여 관계자 리스트에서 연락처를 수집하고 이디오테잎의 음악, 소개자료, 공연 영상을 보내고 사전에 각자의 일정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통 공연을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부킹 에이전시의 역할이 크다. 공연을 사고파는 사람들 간에 서로 신뢰가 있고 아무래도 한국의 회사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의 동양인이 초대하는 것보다는 현지의 마켓을 더 잘 아는 사람을 통해 뿌려지는 홍보는 파급력 자체가 다르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이디오테잎의 부킹 에이전시의 역할이 정말 컸다.
이미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관계자들 중에서도 ADE와 연관이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아무래도 이미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 이디오테잎을 아는 사람들은 본인이 일정이 안되어 못 오더라도 주변의 관계자들에게 이디오테잎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본인이 잠깐이라도 일정이 된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단 10분이라도 들려서 공연을 보고 간다.
이렇게 공연을 보러 다니는 아니 순회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전 세계에서 친한 사람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혼자 다니지 않는다. 한두 명 또는 여러 명이 함께 다니기에 이디오테잎을 모르는 주변인들도 단 5분이라도 보고 간다. 이런 연결은 시간이 지나서 "한국의 일렉트로닉 그룹 봤었는데 대단하더라."로 연결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중요한 사항은,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공연들이 매진이기에 관계자들은 각 공연마다 초대 리스트의 남은 자리가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초대를 받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렇기에 우선 초대를 받으면 공연을 보러 올 시간이 될지 안 될지 진지하게 스케쥴링을 하고 알려준다. 만에 하나 일정이 생각지 않게 변동되어 오기 힘든 상황이라면 정말이지 와서 인사라도 하고 간다.
이런 인원수 하나하나가 모이게 되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결과로 연결된다.
한국을 포커싱 하겠다는 이런 큰 이벤트에 오면서 달랑 공연 하나만 하고 갈 수는 없었다. 몇 달 전 이벤트 관계자와 연락을 하면서 '나'와 '우리'가 할 수 있을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담당자를 달달 볶았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한국이 당시에는 아무래도 비교적 신흥 시장에 속했었고 지리적인 이유로, 언어의 문제로 인해 한국의 시장에 대해 한국인만큼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가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ADE 관계자가 연결해주는 참여 가능한 일들은 기대했던 것 보다도 오히려 과분한 자리를 만들어 주어 오히려 내가 고사한 것도 있지만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컨퍼런스 중 하나의 세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디오테잎의 멤버인 디구루 형 또한 컨퍼런스에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ADE에 오기 한참 전부터 서로 의지할 만한 동지들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올해 ADE에 갑니다!"를 전파하고 다녔던 것이 연결 연결되어 만들어진 자리이다.
내가 했던 컨퍼런스의 주제는 [Electronic Dance and the Next Phase of Streaming]이었다. 사실 내가 음악의 스트리밍 산업에 대해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다소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컨퍼런스 페널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동양인이기에 유럽인보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의 시장으로 한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컨퍼런스 세션에 참여했을 때 받는 베네핏이 너무나도 필요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여했어야만 했다.
컨퍼런스 세션에 참여하고 내가 받는 베네핏은 상당한 크다. 나의 이름과 프로필이 내가 참여하는 컨퍼런스 세션 프로그램에 노출이 되어 컨퍼런스를 검색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나의 프로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어 몇 년이 지나도 검색이 가능하다. 한화로 약 60만 원 정도 되는 ADE의 데이 & 나이트 프로그램에 모두 입장이 가능한 팔찌 또한 무료로 제공받는다.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이 되면 해당 연도에 나와 같이 ADE에 참석하는 모든 관계자의 국가, 회사 종류, 이름, 연락처에 접근이 가능한데 이게 여러모로 아주 유용하다. 검색창은 몇 가지 검색 분류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단지 국가와 회사 종류의 분류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사람과 연락을 취하고 많은 사람과 네트워킹이 가능해진다.
이 데이터 베이스를 확보하는 데에 첫 번째 목적은, 위에서 짧게 소개한 것과 같이 이디오테잎과 장르적으로 맞닿아 있어서 비즈니스 성과를 기대해 볼만한 관계자를 찾고 공연장으로 초대하고 낮 시간에 미팅을 잡는 데에 있었다. 메일을 수차례 보내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수의 답장을 받았지만 당장에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서로 신상파악 (?)은 했으니 좋은 기회가 있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내가 관계자를 찾기도 헸지만 반대로 다른 관계자들이 나를 찾기도 헸다. 그렇게 연락이 오고 간 관계자 중 성향이 맞을 것 같은 사람과는 낮 시간에 암스테르담의 주요 지점에서 미팅을 하였는데 그중 한 명은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레이블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 밤 시간에 본인이 속한 레이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겠냐며 초대를 했다. 이렇게 현지인 내지는 이벤트에 여러 번 참여했던 관계자들과 함께 다니면 좋은 점이 많기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굳이 하나의 장점이라면 로컬들끼리 vip등록을 해주니 줄 안 서고 입장하는 건 기본이었다. 아침부터 돌아다니느라 다리 아파 죽겠는데 이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행위인가.
해 떠있는 시간 내내 미팅 릴레이에 시달렸을 레이블 동료들이 밤의 '업무'는 친한 다른 레이블의 파티에 다니는 것이었다. 파트너 사 위주로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큰 회사들의 전용 라운지에 가는 것도 물론이겠지만, 파티를 다닌 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비즈니스 연장선의 성격을 가진다.
우선 각 레이블에서 선보이는 신진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체크한다거나 vip 초대를 해준 친한 레이블 담당자와 인사를 하고 눈도장을 찍는다거나 하는 식의 직업적인 부분을 다소 포함하고 있기에 일반 관객들과는 다르게 술은 그다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밤을 새우고 나면 다들 9시부터 미팅 릴레이가 다시 기다리고 있으니 무리하게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부분이 몸에 배어 있는 모습이 똑같다니 역시 어느 나라를 가도 업계 성향은 다 비슷 하구나. 업계에서는 밤에 다니는 사람과 낮에 다니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데 이쪽 부류의 경우 밤에 다니는 사람들로서 밤의 에너지와 매너를 몸에 지니고 있다.
하룻밤에도 수백 개의 공연과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있으니 걸어서 다니는 건 불가능하고 대중교통도 없는 시간이니 우버를 쉴 새 없이 부르며, 파티 일정에 따라 팀원이 찢어졌다가 만났다가 하는 식으로 조직적으로 도장깨기 (?)를 했고 Syndicate, Barong Family, Musical Freedom 등의 파티를 쉴 새 없이 다녔다.
그렇게 암스테르담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큰 베뉴에서만 볼 수 있는 슈퍼스타 DJ들을 작은 베뉴에서 보는 행운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정 권한 없이 따라만 다니는 입장이었다. 나도 오늘이 끝나기 전에 내가 보고 싶은 아티스트 하나 정도는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어차피 붙잡는 사람은 없으니 적당한 타이밍에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내가 점찍어 두었던 클럽으로 갔다. 사실 ADE 어플에서 미리 찍어두었던 Gashouder, NDSM, 중앙역 (네 그 기차역 맞습니다) 등 가고 싶은 베뉴가 몇 곳 있었지만 이미 새벽 4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우버를 타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유명한 베뉴에 가면 실내엔 입장도 못하고 줄만 서 있다가 아침을 맞이 할 수도 있었다. 오밤중에 모험을 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이날 처음 알았는데 이렇게 밤새도록 암스테르담에 이동 인구가 많다 보니 우버 가격도 할증이 붙었다. 원래 비싼 가격에 할증이라니 그냥 지도에서 가깝고 걸어갈 수 있을 만한 클럽의 레이블 파티로 갔다. 그 클럽은 약 400명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클럽이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 눈으로 Modeselektor를 보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클럽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때 느끼는 좋은 점이란 역시 관객 성향이 나와 비슷하다. 나같이 패션에 신경도 안 쓰고 주변 사람과 서로 안 닿게 신경 쓰는 모습은 물론 동양인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하다.
하루하루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도 많았다. 막상 밖에서 보면, K-POP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한국이 음악 시장의 규모로도 전 세계에서 10위권 이내에 드는 국가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러 국가에서 공연을 하였지만 시장이 형성되는 곳의 중심에서 보는 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떠나서 철저히 백인의 장르인 전자음악을 동양인이 한다는 것은, 백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마치 한국의 판소리를 하는 영국인을 보는 것 같을 것이다.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ADE를 계기로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이 이후로 내부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많은 부분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때의 경험이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쩌면 2018년의 ADE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경험치를 쌓은 것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아침에 호텔에서 했던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그 느낌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ps. ADE 기간 중엔 슈퍼마켓도 춤추게 한다. 네덜란드 대형 슈퍼마켓 체인 Albert Heijn 중앙역 지점의 밤 11시경. 자세히 보면 DJ도 있다. 역시 음악은 즐겨야 하는 법.
커버 이미지: © A'DAM Lookout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