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o Oct 14. 2020

투어 매니저라는 직업

알고보면 타고난 성향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 카운터에 섰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3주간의 일정이 지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피곤이 어깨를 짓누른다. 정신없이 여러 나라를 동분서주하다 보니 어느새 3주가 흘러갔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너무 행복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뭔가 이상하다. 남들의 해외여행과는 시작과 끝이 바뀐 상황이다.


매년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해외에서 체류를 한다. 행선지는 유럽 대륙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구글에서 검색을 해야만 지구 상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나라 또는 이름 자체가 생소해서 발음하는 법을 찾아보아야 하는 나라들도 종종 간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단 대륙을 넘어가면 귀국할 때까지는 주로 육로를 이용하여 다닌다. 보통 1일 기준 최대 800km 정도를 이동하고 운전은 대부분 직접 하는 편이다. 1회 투어 진행 시 3,000km ~ 4,000km 이상을 이동하고 나면 여권엔 고속도로로 국경을 넘었다는 도장이 서너 개쯤은 더 늘어나 있다.

기차는 거의 타지 않는다. 악기가 워낙 무겁고 많아서 플랫폼에서 시간 맞춰 싣고 내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의 직업은 기본적으로는 전자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의 매니저이다. 다만 산업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은 나의 아티스트의 투어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지불하는 인건비와 진행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해외의 인맥을 쌓고 영업을 하기 위해 투어 매니저도 겸하고 있다.


투어 매니저? 여행 가이드 같은 건가요?


투어 매니저는 한국말로 '순회공연'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투어 (Tour)라고 하는, 한번 출발하여 다시 되돌아올 때까지 여러 번의 공연을 연속으로 진행하고 오는 공연들을 매니징 하는 역할을 한다. "당신의 업무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입니다."라고 정리하기가 참 애매한데, 모든 공연과 투어의 일정이 문제없이 흘러가도록 많은 일을 맡아서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투어에서는 1명의 인원이 늘어날 때마다 진행비 (항공, 숙박, 식사 등)가 추가되는 것이 수익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1명이 몇 가지의 업무를 겸직할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해야하는 일의 종류가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투어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것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


나의 경우는 어린 시절엔 드럼과 DJ를 배우며 미약하지만 활동한 경험도 있고, 이후에는 음향을 전공하고 공연장이나 무대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기에 돈 관리, 일정 관리와 더불어 무대 보조 등 나름 2~3가지의 겸직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다가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되었나


음악을 좋아해서 줄곧 음악과 관련이 있는 직업만 가지며 살고 있으나 사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였다. 어느 소설 속에서 보았던 트럭 운전사는 25톤쯤 되는 통나무를 싣고 시베리아에서부터 유럽을 횡단하여 프랑스의 항구까지 운송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일상이라는 게 끝없는 도로 위에서 홀로 운전을 하며 끝없는 나 혼자만의 시간속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이고 실제 트럭 운전사들의 삶과 비교한다면 거의 해리포터급 판타지 소설일 텐데 어린 마음에는 그게 꿈의 직업처럼 보였나 보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게임을 전혀 즐기지 않는 편인데, 가끔 유로트럭 시뮬레이터를 하며 3D로 구형된 유럽의 대륙의 도로 위에서 배달을 다닌다. (설정에 따라 실시간(!) 으로 셋팅하여 즐길 수도 있다.)


리투아니아의 어디쯤. 매일매일 이어지는 유럽 대륙의 지평선과 도로. 장거리 이동은 머리를 맑게하고 정신수양에 좋다.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내 어린 시절 판타지와 같은 장래희망을 떠올리게 되었고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며 미래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을 하면 행복할까 이리저리 계산을 하다가 결정한 목표는 '지금의 커리어를 연결할 수 있으면서,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겠다.'


목표를 위해 커리어를 쌓아가다가 가지게 된 지금의 이 직업은, 어쩌면 그때의 목표를 반 정도는 달성하였으니 나름대로 기준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아래의 글과 연결됩니다.


커버 이미지 ©BalkansCat, Shutterstoc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