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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o Oct 14. 2020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투어 매니저의 일반적이지 않은 삶

저 대신 가실래요? ;)


누군가 나의 직업이 부럽다고 말할 때면 대답하는 나의 고정 멘트다. 이런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순간적으로 정말 본인이 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내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그 뒤로는 별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듣던 초기에는 "아 이 일이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하여 ~ (생략) ~ 보기와는 많이 다릅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했었지만 어차피 겪어보지 않으면 백날 설명해봐야 알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대화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들에게 나의 하소연은 '공짜로 해외여행 다니는 게 직업인데도 배부른 소리 하는 사람.'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죄 없는 사람 앞에서 짜증 아닌 짜증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 생각해낸 대답이 "저 대신 가실래요?"이고, 봇처럼 반복하고 있다. 막 살갑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살이 심하네 세상이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


맞다. 무슨 일이든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다. (돈 벌면서 공짜로 해외여행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길래 저런 소리를 할까 싶을 거다.


정말 힘든 부분을 요약하면 몇 가지로 추려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힘든 점이라면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힐링하기 위해 해외로 떠난다. 하지만 이 포인트가 업무의 연장선이 되면 바로 얘기가 달라진다.


타지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현재의 프로젝트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작던 크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다. 특히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국경을 넘나들고 공연을 해야 하며 쉬는 날도 거의 없는 일상이 일주일 이상 연속이 되면, 해외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고 한국에서의 삶은 일상이 아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휴식으로 느껴진다. 한국에서라면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쉴 수 있으니까...


프라하에서. 공연이 끝난 직후의 무대 뒤에 널브러진 악기들. 강력한 포그머신 덕분에 실내 가득 자욱한 안개. 10분만 쉬고 정리하면 안 될까요.

일 자체가 남들 놀 때 바쁘게 일하는 경우가 많고 바쁨의 정도가 연중 기온의 고저와 비례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따듯하고 놀러 가기 좋은 계절에 공연과 투어도 성수기이다 보니 가족들과 일찌감치 날짜를 예정하고 여행을 간다는 건 포기 한지 오래다.


비슷한 일을 하는 국내외 친구들 대부분은 연초 비수기에 장기 휴가를 가고, 닥쳐올 봄-여름-가을을 준비하는 업무들은 휴가지에서 간간이 소화하며 가족, 친구들과의 일상을 만끽한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밴드 중에 투어가 힘들다고 밴드의 멤버가 탈퇴를 하거나 투어를 안 가기 위해(!) 열심히 음악 작업을 했다는 라디오헤드 (Radiohead) 나 소울왁스 (Soulwax)의 인터뷰를 보면서, '돈 벌더니 배가 불렀구먼.'이라고 생각했었다. 3개월, 6개월씩 해외에서 체류해 본 적은 없지만 가족이 그리워서 친구가 그리워서 동네 단골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상이 그리워서 투어를 가기 싫다는 그들의 말을 이제는 충분히 동감한다.


둘째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다.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당연히 육체적인 피로도도 보통이 아니지만 그런 부분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견딜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주로 사람으로부터 온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 말고 함께 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함께 몇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고 있으니 대충 표정만 봐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고 격이 없이 편한 사이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서로를 조심하게 된다.


타국에서의 시차와 함께 살벌한 스케줄로 인해 육체적인 피로가 정신력을 지배할 때쯤이면, 평소라면 웃어넘길 수 있는 아주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도 폭발하기 십상이다. 이걸 억누르고 자제력을 발휘하여 내면의 평화를 3주 정도 유지하고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소위 말하는 멘털이 나가는 상황이 온다.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으로 아무리 유명하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내 집, 내방이 주는 아늑함과 안정감에 비할바가 아니다. 함께 다니는 투어 파티의 경우, 3주간의 투어를 진행하고 귀국하고 나면 불가피한 업무상의 연락을 제외하고 한 3주 정도는 개인적인 연락은 안 하는 편이다. 이렇게 일부러 물리적인 거리를 좀 두고 나면 원래대로 회복이 된다.


장기 투어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의 일상이 나의 진짜 일상이 되고 집에 돌아오면 평화와 안정감이 아닌 우울과 고독이 온다. 나는 그 한계를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슬로바키아의 포호다 페스티벌 (Pohoda Festival) 대기실 한편에 마련된 내방. 소소한 행복.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는 게 함정


그런데 그 일을 왜 하는 거죠?


이제껏 이 일이 보기보다 힘든 일이라고 하소연했지만 물론 나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 모든 일이 고난의 연속은 아니다. 힘겨운 레이스에서 즐거운 일이 1초도 없었다면 이미 그만두었겠지... 투어를 다녀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와 보람은, 전 세계에서 투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우선 전 세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음악을 좋아하고 열심히 잘 놀고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또한 여러 나라의 관계자들과 협업하여 일을 한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관점이 넓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순히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른 부분이 인데, 여러 나라의 현지인들과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국가와 지역별로 시스템과 사고방식을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에서 예쁜 전원 풍경을 보고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것을 넘어서 전원풍경 속의 시골집에 들어가 2박 3일 정도를 살며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과 흡사한 것 같다. 2박 3일이라고 비유를 한 것은, 나의 경험들은 그 마을에 3년 넘게 깊숙이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이민자가 가지는 경험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과 손님으로 방문하는 정도의 차이는 확실히 있다.


바르셀로나의 La Mercé - BAM 페스티벌. 이디오테잎의 공연이 끝난 직후 람블라 델 라발 (Rambla del Raval) 광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대 뒤에서 일하는 보람이다. 가끔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이보다는 내가 좋아해서 함께 다니고 서로 자극이 되어주는 나의 아티스트가 멋지게 공연하는 모습을 무대 뒤에서 실시간으로 바라볼 때의 즐거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구 반대편의 이름도 모르는 도시 근교 허허벌판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에서 몇천 명, 몇만 명 앞에서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하는 장관이란 정말이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현재 2020년 9월 마지막 주이니 코로나가 세계를 점령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고, 역시 1년째 투어는커녕 공연도 못 하고 있다. 한 여름에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될 정도로 그렇게 신기하고 행복하더니 투어를 못 나가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니 이제는 몸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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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IV. andromeda,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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