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케이스 공연을 온라인으로 본다는 것
2020년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총합 100개가 넘는 공연과 컨퍼런스가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예년과 같은 인파와 북적임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이동을 자제하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국이니 이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각자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음악 관계자들에게 아주 바쁜 한주였다. 아시아의 여러 쇼케이스 페스티벌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잔다리 페스타 (이하 잔다리)가 서울에서, 월드 뮤직의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워멕스 (Worldwide Music Expo/WOMEX)가 부다페스트에서, 그리고 일렉트로닉 음악 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 (Amsterdam Dance Event/이하 ADE)가 암스테르담에서 모두 같은 일정으로 개최되었다.
위의 설명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세 개의 이벤트는 중점적으로 다루는 음악 장르와 프로그램의 비율은 다르지만 컨퍼런스, 쇼케이스, 네트워킹 등이 결합되어 비즈니스의 발판이 되는 박람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 보통 이런 연중 이벤트는 한 군데만 참석을 해도 모든 비즈니스 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큰 이벤트인데 어쩌다 보니 이들이 한 번에 같은 주에 몰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보통 이런 종류의 대형 이벤트 들은 참가자들의 비즈니스 범위를 알고 있기에 각각 날짜를 다르게 배치하여 참가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한다.
만약에 날짜가 겹치는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각각 이벤트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음악 장르가 다르고 참여하는 관계자 리스트도 다르기 때문에 그저 본인의 비즈니스에 조금 더 적합한 이벤트를 선택하여 가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올해의 경우는 개최 자체가 불투명하다가 비교적 안전한 일정으로 날짜가 연기된다거나, 마지막까지 오프라인 개최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다가 최종적으로 온라인으로 선회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이 혼재되었다.
온라인 개최라는 고육지책이 불러온 참사는 결국 본인과 연관이 있는 이벤트 여러 개를 각자의 공간에서 한 번에 뽀개는 (?) 전례 없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잔다리와 ADE를 한 번에 보았고 어떤 관계자는 잔다리와 워멕스를 종횡무진하였으며... 어떤 슬픈 이는 세 군데를 모두 참여하였다.
어쩌다 보니 암스테르담에서는 서울의 잔다리를, 서울에서는 암스테르담의 ADE를 동시간에 보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산업 박람회는 어디에나 있고 기본적인 구성은 비슷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조명해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각자의 상품을 홍보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네트워킹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비즈니스가 형성되는 것, 음악 산업도 똑같다. 다만 음악 산업만이 가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필연적으로 공연이 산업의 한 축이 된다는 것이다.
ADE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워멕스나 잔다리의 경우는 전체 프로그램의 비율에서 쇼케이스 공연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라인으로 공연을 본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일반적인 관객이 공연을 보는 목적과 산업 관계자가 직업적으로 공연을 보는 목적은 많이 다르기에 이 부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궁금했다.
먼저 쇼케이스 공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간단하게 '아티스트=상품'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먼저 아티스트는 프로모터, 부커, 프로그래머와 같은 실질적인 구매자들 앞에서 실연을 하여 다른 나라의 공연 시장으로의 진입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반대로 관계자들은 쉽게 정보를 얻기 힘든 신인이나 다른 대륙에서 온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며 그들이 자국에서 가능성이 있을지 가치를 평가한다.
아티스트는 셀러가 되고 관계자들은 바이어가 되는 마켓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쪽은 효과적으로 잘 팔리기 위해, 한쪽은 좋은 상품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 공연장이 아닌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연' 이 주 목적인 쇼케이스 공연이 마치 TV 홈쇼핑과 같은 판매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공연 영상은 이미 유튜브에 무수히 많이 있기에 이런 방식이 아주 없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유튜브는 어디까지나 관객과 팬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었고,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쇼케이스 공연에서는 사실상 없었다.
일반적으로 관계자들은 만들어진 공연 영상을 보고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판단하지 않았다. 물론 아티스트가 발매한 음악이 훌륭하고 남다른 끼를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참고만 할 뿐 최종적인 판단은 직접 공연을 보고 결정을 했다.
기술이 발전하여 편집과 후작업에서 보정이 너무나도 간편해진 시대에 최종 결과물은 모두 좋게 보일 수밖에 없고 실제로 아티스트가 가지는 실력, 아우라와 에너지를 영상만으로는 쉽사리 판별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친한 관계자는 올해에 이미 이와 같이 불가피하게 온라인에서 진행된 쇼케이스 공연을 많이 경험했던 터라 이렇게 온라인으로 쇼케이스 공연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했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들다는 뜻인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종류의 쇼케이스 공연들은 짧은 제한된 기간 동안 진행되는 공연의 개수가 아주 많다. 올해 잔다리에서의 쇼케이스는 총 58개.. 워멕스에서는 29개였다. 공연 1회당 15분씩 잡아도 10팀이면 150분이 되니 얼마나 많은 공연을 의자에 앉아서 봐야 하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1. 귀로 듣고 2. 눈으로 보고 3. 몸으로 느끼고 4. 머리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 과감하게 생략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고역이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전례 없는 상황으로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마냥 넋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2021년에는 세상이 다시 예전과 같이 돌아갈 수 있으리란 작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원활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창궐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쇼케이스 공연 영상 제작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최대한 공연의 분별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은 아직까지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 같지만 조만간 적절한 방향으로 발전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영상 매체 발전이 만들어낸 VR과 같은 기술이 이 부분을 뒷받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공연을 바라보며, 감성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좀 더 우선시되는 음악 관계자들에게 그것이 아무리 양질이라고 하더라도 '가상 (Virtual)'으로 만든 영상 콘텐츠 만으로는 '현실 (Reality)' 이 주는 에너지와 기운 (Atmosphere)을 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VR에 Atmosphere까지 접목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티스트 매니저로 이런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바이어가 될 수도 있고 또한 셀러도 될 수 있다. 관계자 이전에 음악과 공연을 즐기는 개인으로서 말하자면, 쇼케이스 공연은 일반적인 음악 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암흑기 마냥 2020년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다.
관객으로 즐기는 쇼케이스 공연, 페스티벌은 어떤 재미가 있는지는 다음 기회에 한 회 차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이 글에 다루어진 이벤트의 홈페이지 주소
WOMEX
Amsterdam Dance Event
https://www.amsterdam-dance-event.nl/
잔다리 페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