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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한잔 Dec 29. 2020

개인이란

사회에 대한 사고

개인(Individual)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는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질문은,

개인은 혼자 존재할 수 있는가?

이며, 답은 많은 생각도 필요 없이, 당연히 "아니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개인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많은 책임감을 갖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해 계획을 미리 세워둘 수 없다.

더더욱이, 우리는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예를 더욱 상세히 들면,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모든 범죄, 혹은 에너지난을 대비해서 항상 싸움에 대비할 수 없으며, 집에 벽난로를 설치해둘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손해나 피해를 개인이 책임을 지고 극복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들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이유이다.

이 민주주의를 통해 여러 가지 특수화된 기관들을 세우고, 절차들을 만들며, 그 과정에서 그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모든 개개인들이 참여하고, 이러한 기관과 절차들에 의하여금 다시 이 모든 개개인들이 보호를 받는 과정을 이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생각해볼 부분: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기관을 세우고 절차를 만드는 과정인 투표에는 "모든" 개개인이 참여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선, 나라별로 기준은 다르지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이 있다.

이유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개인으로서 독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임을 가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개인으로서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독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전제다.

이 부분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문제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은 많은 경제, 사회, 정치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U를 탈퇴하는 결정을 내렸고

미국은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트럼프라는 논란이 될만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이번에 코로나 사건을 예시로 들면 미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예방대책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수많은 전문가들의 말에도 그것은 가짜라며, 거절했다.

현재 한국 정치판을 보면, 충분한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본인의 이익 혹은 팬덤 정치를 할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모든 말은 그럼, "모든" 개개인이 아니라 "특정" 개개인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답변은 바로 교육의 질 상승이다.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보편교육이 필요시 되어진다.

한국의 보편(Public) 교육 문제들 중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비판적인 사고의 장려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대로 수동식 교육의 극단을 달렸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있는 질문은 장려받지 못했으며

교과서와 EBS 문제집에 있는 문제들을 외워야 점수가 잘 나왔고

이러한 과정의 교육체계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사회라는 톱니바퀴 속에서 톱니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공교육의 질 향상만이 대부분 모든 문제

이 경우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절차가 자리 잡히면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개인의 권력을 투표하여 선택된 특정 그룹에 위임하고

이 세분화된 일을 맡은 특정 그룹 (검찰, 경찰, 국회, 등)은 그 일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정치학이나 경제,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 모든 과정은 아주 간략화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 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된다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간단하게 알고 있는, 사전적인 개인에 대한 정의는 아닐 것이다.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해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예시를 들어보자.


이번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각 나라의 정부들은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에 제제를 가하였다. 이러한 경우에, 개인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가상의 계급에서 가장 밑에 존재하게 된다. 위에서 살짝 표현되었지만, 지금 이러한 표현법에 의하면 정부란 개개인들의 의지가 실체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개인이 모든 국민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로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인원, 참여할 수 없는 인원, 그리고 투표에 참여했으나 이 정부를 뽑지 않은 사람들이 포함됨으로).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고 과정을 따라올 때 자연스러운 결론은:


개인이 특정 사회, 이경우에 특정 나라, 에 속하고 싶으면 그 나라, 그 그룹, 의 규칙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질문은 끊임없이 던질 수 있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세가 앞으로 진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자.

한 개인이 특정 집단에 들어오면, 일단 그 집단에는 이미 규칙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속하기 위해 그 규칙들을 따라야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이것이다.

이것은 나도 크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종종 좌성향을, 혹은 극단적인 좌성향, 가진 친구들이 하는 주장들이다.

그 주장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원함에 따라 나라를 옮길 수 있어야 하고, 그 나라에 가서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좌파적 성향을 띄는 주장들이 항상 그러하듯, 너무 이상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방금 말했던 일련의 논리 주장과 괴리가 발생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이념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논리적 순차를 거치면, 개인은 민주주의적 사회에 속하기 위해서 그 사회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누군가는 여기에서 개인이 그 나라에 가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경우를 위해, 첨예한 예시를 들어보자.


프랑스는 매우 세속적인(Secular)한 국가이다.

여기서 세속적이란 정치를 함에 있어서 종교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배재시키고 논리와 이성을 갖고 정치체계 그리고 법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것에 대한 이유는 프랑스는 종교가 국가의 원리원칙을 결정할 때 어떻게 해서 국가가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지를 많은 국민들이 목도하였고 그에 의해 일어난 것이 프랑스혁명이며 이 이후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립을 프랑스 정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프랑스는 여느 유럽의 국가들과 다르지 않게, 19세기 그리고 20세기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식민지를 만들었으며 (식민지의 기본 사상은 다른 나라를 가서 점령한 다음에 그 나라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주로 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후진국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결과로 중동 내분 같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포함하며, 당연히 인륜적인 이유를 기반으로, 많은 유럽 국가는 이민자 난민자를 대거 수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다시 한번 위의 논점들로 돌아가, 개인이 민주주의 사회에 속하고 싶으면 그 사회의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이에 관련해서는 누구나 알법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말 도 있다.

하지만, 이민 그리고 난민자들 중 대부분은 종교인들이고, 이 종교인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특정 규칙들을 지키고 산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히잡을 두르거나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아까 말했듯이 완전히 세속적인 나라이며, 프랑스의 사상중에 대표적으로 이러한 것이 있다

네가 무슨 종교를 믿던 상관하지 않는데 너 종교일은 너네 집 안에서 해라

아마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챘겠지만, 처음 생각할 때 되게 간단한 것 같은 문제조차, 생각을 조금 더 해보고 이 복잡한 세상의 사례들을 포함시키다 보면 정말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은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계속해서 해 나아가는 것 이기 때문에, 질문을 조금 더 해보자.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는 개개인 국민의 선택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모든 개개인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이게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보자, 만약 특정 이익단체가 정보를 관리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정부가 그들을 위해 선별해낸 정보들만 보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생각보다 흔히 일어난다.

한국의 많은 공영방송사는 가까운 과거까지도 정부에 의해서 무엇을 뉴스에 내보내고 무엇을 내보내면 안 되는지 검열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심지어, 특정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나와 정부의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비단,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정부만은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뉴스 방송사에 압력을 가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널리즘을 하는 뉴스 방송사는 돈을 벌 수단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영방송사는 단어가 내포하듯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사설 방송사는 운영되기 위해서 주로 광고로 돈을 벌며 이 광고비를 제공하는 것은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금줄이 되어주는 기업들은 이러한 사설 방송사들에게 본인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가한다.

이에 더하여 요즘에는 알고리즘의 발달로 인해

전혀 다른 뉴스, 정보들이 개개인들에게 다르게 추천된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사상만 계속 보다 보면 그쪽을 더욱 잘 알게 되고 그쪽만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기 쉬우며 이러한 현상은 그쪽 정보를 다른 정보보다 더 집중 있게 보게 되고, 결국 정보의 편식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이 요즘 시대에 사람들이 좌우로 더욱 편향되고 극단화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내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개개인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게 만든다.



'개인'이라는 단어 하나는 전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개인주의 혹은 개인의 자유라는 말을 방패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조금은 게으른 개인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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