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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한잔 Oct 26. 2020

A life on our planet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뷰

소셜 딜레마에 이어 두 번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리뷰해보려고 한다.

제목이 설명하듯, 이 다큐멘터리는 지구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중,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지구온난화이다. 하지만,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리뷰하는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가 지구온난화를 다루기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접근하는 방식과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방식 때문이다.


우선,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제작자이자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인 David Attenborough는 1926년 5월 8일생으로 현재 90이 넘는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최대 100살 정도 그리고 평균수명이 약 75라고 보았을 때, 이 사람은 한 인간의 생을 거의 거쳤다. 그리고 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현재 90이 넘는 나이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고, 다양한 생물들을 접해왔으며, 우리 지구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사람이 은퇴할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과 지식을 널리 알리고 세상에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 아직까지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두 번째로, 이 다큐는 그저 과학적 사실들을 나열시키며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 우선 우리에게 큰 그림을 보여준다. 지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인류란 무엇인지. 그리고 9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 본인이 살아오며 어떻게 지구가 변화고 생태계가 변화 하였는가이다. 


1920년대에 전 세계 인구는 20억 명대였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인구는 한 인간의 수명 동안 4배 가까운 숫자인 80억 명을 향해가고 있다. 이렇게 인구수가 급증하면서, 전반적인 물질적인 수요도 증가하였다. 1세기가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정말 많은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지위에 들어섰으며, 선진국에 들어선 나라들에서는 빠른 도시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많이 변화를 거친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식품산업이다.


식물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1차 생산자를 제외한 나머지 생명체는 전부 다른 생명체를 섭취함으로써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먹이사슬 속에서 더 높은 먹이사슬에 위치할수록 더 많은 생산자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한 초원에서 사자 한 마리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들소의 개체수는 100마리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들소 한 마리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로 되는 초목의 개체수는 얼마나 될까? 추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상당히 많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우리에게 아주 유명한 인물인 장발장이 등장한다. 이들의 주식은 밀의 발효식품인 빵이었고, 그 빵 또한 주기적으로 먹을 수 없는 환경에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주식은 쌀이었으며, 쌀이 부족해 감자나 옥수수 등으로 같이 밥을 지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추가적으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김치 또한 과거 우리 조상들의 주식이 채소였을 때, 채소가 보관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점과, 말려서 보관하면 영양가를 잃고 먹기에 불편하다는 점, 그리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에 절이면 더욱 오래 먹을 수 있다는 원리를 사람들이 발견함으로써 채소를 더 오랫동안 보관하고 끼니로써 이용하기 위해 발명된 식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문명을 이룬 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주식은 채소였고, 고기를 접할 수 있는 계층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 둘이 발명되면서, 과거보다 인류가 나눌 수 있는 자원의 사이즈가 커졌다. 과거에 기술력이 좋지 않고 경제가 안 좋을 시기에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가 어려웠고, 그에 따른 결과물들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나눌 수 있는 ‘파이’ (초코파이에서 말하는 파이로 나눠먹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표현한다)가 작았다. 내연기관의 발전을 시작으로 하여, 인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많은 방법들을 찾아내었고, 그의 결과물은 급속도의 경제발전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식단의 변화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단 하나이다, 더욱 부유한 식단을 감당할 수 있는 인구수가 증가한 것, 그리고 수요의 증가는 공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먹이사슬의 상위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변환 식습관에 던지는 포인트는 하나이다.


우리가 고기를 찾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만큼의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인구가 고기를 찾게 되면, 그에 따른 공급의 증가로 이어지고, 더욱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잘라 동물들이 자랄 초지를 만들며, 동물들의 사료로 먹일 옥수수 등의 것들을 기르기 위해서 너무나도 많은 대지가 필요로 된다. (이 수많은 동물들이 발생시키는 메탄가스와 배설물들은 추가적인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지구는 많은 수의 육식동물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심지어 인간은 육식 동물도 아니다. 사자는 사냥을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사냥을 실패했을 시에는 끼니를 거르며 굶을 때도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 개체수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지만, 인간은 원하기만 하고 돈만 많다면 매일 하루에 몇 끼가 되든 간에 육식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육식동물 그 이상의 어떠한 것 인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것 중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 중 다른 하나는, 어류 포획에 관한 것이다. 위의 논점과 마찬가지로, 지구 수준의 인구수 증가 그리고 경제발전에 따른 더욱 많은 고급식품의 수요, 그것에 대한 반응 중 하나는, 더욱 많은 어류 포획이었다. 그리고 그에 포함되는 것은 대형 물고기인 참치, 참다랑어, 그리고 고래 같은 정말 많은 종류의 대형 어종들이 있고, 인류는 이러한 물고기들을 포획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을 발명시켰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어류 포획과 관련해 몇 가지 사실들을 알려준다, 처음 대량 어류 포획이 시작되던 시점에는 어양 어선이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거의 대부분 만선이었지만, 현재는 그러한 일이 거의 드물다는 점, 어류 생물다양성의 감소로 인해서 해양생태계의 파괴 속도가 급증하고 있는 점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다른 프로파간다식의 급 진보적인 매체들이 만드는 것들과는 달랐다. 그가 이 다큐멘터리 끝에 던진 말은, 우리는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몇 가지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절대로 무엇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서양권에서는 Virtue singnaling이라 하여, 항상 옳게 들리는 말을 해야 하고, 진보적인 행동을 보여줘 하며,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문화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와서 처음 본 것들이 전부 그러한 것들이다. 학교 식당에 가면 항상 지구온난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친구들 중 채식주의를 윤리적 이유 혹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아주 흔히 볼 수 있었으며, 그러한 채식주의에 관련해서 심지어 학교 식당에서 고기를 사용하는 날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인을 받으며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보았다.


그리고 내 입장은, 나는 항상 그러한 것을 볼 때마다 뭔가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뭔가 너무 극단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점점 더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많은 수의 흔히 말하는 meat eater를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내가 고기를 안 먹겠다고 단언해야 지구를 보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고기를 먹는 빈도수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이 채식주의자들 대부분의 논점은 공장화 된 고기 재조 방식이다. 동물들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먹여지기 위해서 길러지며, 그 과정에서 정말 안 좋은 환경 속에서 생을 보내고 마감한다. 이것은 당연히 고쳐져야 할 점이고, 고칠 방법을 찾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한 번도 동물을 죽이는 것은 유리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해야만 내가 옳은 것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 그게 맞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많이 보고 이러한 성향의 미디어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가 오히려 더 옳게 느껴졌다. 어느 특정적인 한 부분만을 보여주며 프로파간다식의 극단적인 한 아이디어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그저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하고, 그것들을 시사하기 위해 한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내었으며, 문제점에 대해 본인이 답을 알고 있고 이것을 해야만 하고 이것을 안 하면 잘못되었다는 식의 이야기 진행보다는, 이러한 잠정적인 답안들이 있을 수 있다는, 중립적이지만 아주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이 상당히 좋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였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문구와 끝 마침을 하도록 하겠다.


지구는 결국 인류가 스스로의 결과로 자멸해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러한 자연보호 또한 결국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종의 이기주의적 행동이지 절대로 자연을 위한 것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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