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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Nov 18. 2021

언론이 팔고 있는 신뢰의 값어치

[마치며]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하여

1. 허위정보 속에서 언론은 무엇을 했나     


2020년 7월 9일 오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연합뉴스 속보가 떴다. 퇴근길에 택시를 돌려서 서울 성북동으로 달려갔다. 경찰이 자정쯤 박 시장의 시신을 찾기까지 한나절 정도가 걸렸다. 비교적 짧은 시간인데 엄청나게 많은 소문이 돌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 1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소문이 계속 들어왔다. 그런데 그 소문들은 믿기 좋게 익명의 취재원이 붙어있었다. 한 변호사는 "내 친구가 오늘 중앙지검 당직 검사인데 이미 성북경찰서에서 시신을 찾았고 그 검사는 부검에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또 다른 회사 동료는 "내 아내의 친구가 서울대병원 간호사인데 이미 장례식장에 시신이 도착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말 짧은 시간에 그럴싸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고 30분도 안 돼서 카카오톡 등을 통해 대부분 시민에게 퍼졌다.     


이런 패닉 상황에선 언론사 데스크들도 지인의 한 마디에 휘청거렸다. 경찰 취재를 오래한 한 기자가 "아는 경찰이 말해줬는데 박 시장 시신 이미 발견했대요"라고 하자 보도국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나중에 사건이 수습되고 나서 확인해보니 이때 돌았던 소문 중에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패닉 상황에서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퍼뜨리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과거에도 있던 현상이다. 그런데 그 양과 흐름이 과거와 비교도 안 되게 커지고 빨라졌다. 지금 언론과 기자가 처한 정보의 환경을 바로 보여주는 날이었다.     


그런데 언론은 이날 어떤 역할을 해야만 했고 실제론 어떻게 했을까. 오히려 패닉과 긴장감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방송 뉴스는 수색 장면에 영화적인 효과와 음악을 입혀서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특보를 편성해서 앵커와 기자가 대화를 나누는데 전달할 사실이 부족하자 추측성 해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날 저녁 방송사별 유튜브 시청자 수는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상황에선 아직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는 게 빠르고 정확할 거라고 시민들이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실시간 댓글을 보면 뉴스를 봐도 정보가 없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실망하는 내용이 많았다.     


수색 상황에서 언론이 확인된 사실과 아직 모르는 점을 좀 더 선명하게 나눠서 알렸으면 어땠을까. '어느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몇 명이 어디 일대를 수색 중이다', '우리가 시민 여러분을 대신해서 수색 현장에서 상황을 시시각각 묻고 있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이 발견했다고 하면 즉시 알려 주겠다', '여기까지가 확인된 사실이고 이와 다른 소문은 거짓이니 믿지 말고 퍼뜨리지도 말라'.      


이렇게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시민들에게 아는 건 쉽고 분명하게, 모르는 건 아직 모른다고 밝혀서 신뢰를 줄 필요가 있었다. 이날 시청자들이 바란 것은 신뢰가 주는 안정감이기 때문이다.     


이날만이 아니다. 이런 일은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다. 언론은 신뢰를 받고 또 신뢰를 줘야 하는데 새로운 정보 환경에선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2. 취재 과정부터 믿을 수가 없다     


요즘엔 고기를 사 먹을 때 이력을 따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맛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라 어디서 길렀고, 어떻게 도축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믿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도 비슷하다. 요즘엔 어떻게 취재해서 나온 기사인지 밝히지 못하면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시민들이 언론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취재 과정에 있다. 취재 윤리를 지키지 않고 만든 뉴스는 애초에 믿을 수가 없단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사들은 취재 윤리가 뉴스 신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새 취재 윤리 강령을 만들고 각 언론사에서도 재난이나 큰 사건·사고를 보도할 때 절차에 신경을 많이 쓴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취재 윤리를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취재 윤리란 말이 참 거창해 보이는데 현장에서 겪어보니 숭고하고 대단한 원칙보다는 구체적이고 사소한 행동 규칙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난 취재 상황, 자살 사건을 전할 때, 취재원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할 때마다 어떻게 취재해야 바람직한지 짧은 순간에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평소에 고민을 안 해놓아서 그렇다. 취재 윤리는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지난번엔 맞았던 행동이 이번엔 틀릴 수도 있다.     


해법은 언론사나 한국기자협회가 기자들과 주기적으로 바람직한 취재 방법과 윤리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합의된 내용을 정리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언론사에서도 취재 윤리 교육을 주기적으로 한다거나, 큰 사건을 취재한 뒤 피드백을 주고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군소 언론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요즘에도 방송 뉴스에서 강력범죄 현장을 촬영한 블랙박스나 CCTV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1990년대 방송 뉴스와 달라진 건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변조를 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신원을 완벽하게 숨겨주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란 없다. 방송사 내부에선 여전히 단독 영상을 입수하고 보도한 기자를 칭찬만 하고 있다. 그 순간에 시청률이 올랐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과 윤리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이렇게 취재 결과를 두고 상벌만을 주니 반성과 기록이 쌓이지 않는다. 한 팀에서 운 좋게 취재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팀장이 있어서 한동안 잘 지킨다 한들 인사이동으로 기자가 뒤섞이면 다시 원상 복귀이다. 취재 윤리가 언론사 내에서 전혀 제도로 자리 잡지 않은 탓이다. 이처럼 기사 제작 환경에서 취재 윤리의 수준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갈수록 시민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어서 언론은 신뢰를 잃고 있다.     


3. 투명하지 않은 기사를 읽으면 속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생태계를 뒤집어 놓았던 뒷광고 논란의 핵심은 신뢰였다. 유튜버가 광고를 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속았다는 데 분개한 것이다.      


시민들이 언론에 대해 신뢰를 거둔 이유도 비슷하다. 요즘 시민들은 뉴스라고 해도 100% 믿지 않는다. 뉴스를 보여주면서도 “이 기사가 맞다면”이라는 단서를 단다. 다들 뉴스에 몇 번 속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언론 개혁'이나 '검언 유착' 같은 말은 이렇게 믿기 힘들고 불투명한 기사를 까발려 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뉴스를 볼 때 정파성이란 필터를 걷어내고 볼 수 있는 건 기자들과 일부 시민들뿐이다. 대부분은 기사에 적힌 의견을 사실이라고 믿었다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이렇게 기사를 보면서 헷갈리는 이유는 기사에 시민들이 풀 수 없는 암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누구인지, '알려졌다' '전해졌다'는 어떨 때 쓰는 서술어인지 알고 보는 시민은 거의 없다.      


취재가 시작된 배경, 이 기사가 왜 채택 됐는지, 취재 과정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출처와 취재원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 등이 숨겨져 있으니 기사는 시민들에게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고 결과물만 던져내는 언론을 보고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즉 기사를 독해하는 법을 교육하는 게 원론적인 해결책이겠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언론사 스스로 기사를 더 투명하고 친절하게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취재 진행 과정과 남은 과제를 소상히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전처럼 지면이나 방송 시간의 제약이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기사를 쓸 때는 출입처에서 나온 보도자료인지, 제보를 받은 건지, 정보원은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인용문에 등장한 익명의 인물은 앞선 인물과 겹치는 건 아닌지 등에 대해 더 친절히 설명해야만 한다. 마치 식품 포장 뒷면에 원재료와 제조공장, 제조자, 영양정보 등을 적어두는 것처럼 말이다.     


한 방송사에서 작성한 <낙태죄 폐지되면 낙태율 올라간다?> 기사의 본문 아래에 참고자료가 정리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용한 보고서, 논문, 형법 조문 등의 원문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링크를 적어 놨다. 인용된 문장의 앞뒤를 살펴볼 수 있어서 기사에 더 믿음이 가고 맥락 파악에도 도움이 됐다.      



이처럼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각주를 달아서 부연 설명을 하는 등 기사를 더 투명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기사의 형식은 오랫동안 그대로다. 신뢰 회복을 위해 새로운 기사 작성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


4. 시민은 갈수록 똑똑해 지는데 기사 품질은 그대로     


얼마 전 한 경제지에서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를 다룬 기사를 봤다. 독점적 플랫폼이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걷고 있다는 선명한 요지의 기사였다. 다른 플랫폼과의 비교, 익명 소상공인의 설명, 네이버의 해명 등도 자세히 담겨 있었다. 이 분야의 속사정을 잘 알려준 완성도 있는 기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반응이 정반대였다. '기자가 장사도 안 해보고 썼다' '취재를 제대로 안 한 티가 난다'는 꾸지람이 많았다. 소상공인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적거나, 수수료, 편의성 등을 비교해서 반박하는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기사를 다시 봐도 자료 검색, 사례 섭외, 전문가 인터뷰, 업체 반론 등 과거의 기사작성법으로는 들어갈 건 다 들어간 기사였다. 그런데 똑똑해진 시민들이 보기에 이건 겉핥기 수준의 기사였다. 유튜브에는 이보다 더 깊이 파고들거나 직접 생생한 경험을 풀어내는 콘텐츠가 널려있다. 시민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기사의 형식은 그대로이고 기사를 더 빨리 많이 쓰는 환경이 되면서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5. 언론사 메뉴판 정리가 필요하다     


식당에 갔는데 메뉴판에 음식이 너무 많으면 믿음이 안 간다. 제대로 잘 하는 음식이 있긴 한 건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백종원 대표는 <골목식당>에서 주력 메뉴 몇 개만 남기고 정리를 하라고 한다. 쓸 데 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잘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요즘 언론사의 메뉴판도 너무 번잡하다. 사실, 재미, 감동, 속보, 영상 등을 다 주겠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신문사는 방송 뉴스 리포트를 만들기도 한다. 한식집에서 파스타도 팔겠다는 격이다. 노력은 몇 배가 더 들어가는데 품질은 훨씬 떨어진다.     


언론사가 메뉴를 마구잡이로 늘린 건 디지털 혁신 바람이 분 2015년쯤부터다. 변화를 시도하는 건 좋은데 한정된 자원으로 이것저것 다 하려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시민들은 몇 년 사이에 언론사가 뉴스를 가지고 잡다한 시사 콘텐츠나 만드는 곳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사이 시사와 정보를 소재로 다루는 콘텐츠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유튜버들이 과거에는 이미 나온 뉴스를 가지고 해설만 했다면 이젠 직접 현장에서 라이브 중계를 하고 정부 부처의 브리핑에도 들어오겠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유튜버들에게 여러분이 언론사가 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박원순 시장 실종 사건 때 경찰이 시신을 발견한 뒤 새벽에 현장에서 수색 결과를 브리핑했다.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여기서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시신의 훼손 정도나 자살 방법 등을 묻는 자살보도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질문이 나오면서 시민들로부터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기자들이라고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이 부적절한 질문들은 대부분 현장에 있던 유튜버들이 던진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기획, 중계, 질문 등을 하는 콘텐츠 생산자다. 언론사와 메뉴가 겹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다.      


정치인, 연예인, 공공기관 등은 과거엔 보도자료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만 말을 했다. 이제는 할 말이 있으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린다. 예전에는 언론사만 구할 수 있던 이런 뉴스의 재료를 이젠 누구나 찾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재료가 같고 도구가 비슷해진다면 언론사는 메뉴판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시민이 알아야 하는 뉴스를 알고 싶도록 쓰는, 새로운 뉴스 포맷을 개발하는 노력을 그만 두자는 게 아니다. 그동안 여러 시도는 많이 해봤으니 어중간한 것은 정리하고, 이제 다시 잘해야 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유튜버 같은 다른 시사 콘텐츠 공급자와는 다르게 언론사는 뉴스를 이정도 수준으로 만드는 곳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시민들이 적어도 언론에 나오는 뉴스는 정확하고 투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그동안 언론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요령을 피우면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까먹었는데 결과적으로 살림살이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언론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곳으로 머릿속에 남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6. 공포와 혼돈의 시기에 필요한 언론의 경쟁력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의 가치가 높아진 2020~2021년 같은 시기는 언론이 다시 빛날 수 있는 기회였다. 


2020년 개천절에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를 막겠다며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설치했다. 이게 과잉대응이었는지 아닌지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한 방송사는 과거 헌법재판소가 차벽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할 때와 합헌 결정일 때의 사례를 비교하고 헌법 전문가의 의견을 담아서 보도했다. 그런데 또 다른 방송사는 같은 날 같은 쟁점의 발제가 올라왔는데 편집 회의에서 '킬' 시켰다. 그동안 보도해온 정파성과 맞지 않다는 게 반려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최근 언론사들이 정파성 경쟁으로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누가 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위치를 잡는 지에 따라 시청률, 구독 수, 클릭 수가 확확 쏠렸다. 다양한 언론사가 각자의 정파성을 바탕으로 보도 경쟁을 하고, 이를 본 시민들이 더 납득할 만한 보도를 한 언론사를 선택한다면 이상적인 언론 환경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겨선 안 되는 원칙이 있다. 정파성이 사실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언론사가 있는 사실을 못 본 척 하거나 축소 혹은 과장하고 있다. 자신의 정파성에 맞는 사실은 과장하고 정파성에 맞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시민의 역할이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누가 더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는지, 누가 더 합리적 주장을 하는지 시민들이 평가하고 경쟁을 붙여줘야만 한다.     



7. 새로운 교육과 평가 지표가 필요하다     


현재 언론사와 기자의 취재 과정과 기사 작성 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기자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입사해서 눈칫밥으로 일을 배운 뒤 재교육 없이 오랫동안 일하니 발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면 곤란하다. 2016년 수습기자일 때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언론사 기자 선배가 강사로 와서 교육을 했는데 '후배를 전화로 혼내서 울리고' '후배에게 밤에는 술을 먹이고 새벽엔 경찰서를 돌게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몰래 들어갔던' 얘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았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좋은 기사에 대한 새 평가 척도를 만들고 시민에게 제시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기사를 얼마나 투명하고 친절하게 썼는지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만들고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취재 과정과 기사 작성 방식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각 언론사별로 스스로 평가 지표를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보여준다면 시민은 이 언론사가 지향하는 좋은 기사는 어떤 것인지, 어떤 가치에 더 중점을 뒀는지, 그것을 얼마나 지켰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특종 기사는 영향력 점수는 아주 높지만 투명성은 최하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그걸 보고 이 기사가 좋은 기사인지, 믿을 만한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시민들은 궁극적으로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이고 어느 언론사가 더 믿을 만한지가 학습될 것이다.


8. 정리하며


취재 과정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취재 윤리를 상시 평가하는 기구가 언론사 안팎에 모두 있어야 한다. 취재 윤리를 기자 개인의 인성, 경험, 능력에 의존해서 지키려 해선 안 된다. 신뢰 받는 언론이 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합의하고 고쳐지는 취재 윤리를 기자들이 제도로써 내면화 해야만 한다.     


언론과 기사는 더 투명해져야 한다. 이 정도면 믿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시민들에게 더 친절하게 보여줘야 한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기사 작성법을 도입해야 한다.     


언론이 잘 해야 하고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뉴스가 더 쉽게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그만두자는 건 아니다. 기자가 정보, 재미, 속도, 신뢰 등 모든 걸 다 잘 챙기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자. 언론이 잘 하는 일은 다른 플랫폼에서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잘 하고, 잘 못하는 일은 더 잘하는 플랫폼이 하면 된다.     


새 미디어 환경에서 좋은 뉴스가 무엇인지 평가할 지표를 만들고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시민이 기사가 얼마나 투명하고 믿을 만한지 직접 따져보고 그 지표와 경험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언론이 도와야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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