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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웅 Jul 31. 2015

초 연결시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금요일 저녁, 퇴근길 마지막 버스를 타면서 교통카드를 찍고 나자 핸드폰에 알람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냉장고에  보충해야  하는  식재료  리스트가  나오고  집  앞  정류장  인근에  있는 마트들에서  그  재료들을  얼마에  팔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화면을  옆으로  넘기니 관심품목으로  지정해두었던  상품들  중에서  할인  중인  상품과  가격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피곤했던 하루, 장 바구니를 들고 갈 기운과 기분이 아니므로 필요한 상품들을 선택해 주문하고 내일 배달되도록 예약 했습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고, 커피머신에서는 허브티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스케줄 앱에 등록한 일정과 정보를 인식하기 때문에 지금 딱 필요한 음악과 차가 저를 맞이하는군요. ‘불금’이지만 집에서 쉬기로 했으니 간단히 요기를 하고  씻은  다음  와인을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와인을  꺼내자  냉장고  문에  달린  화면에 방금 고른 와인과 곁들이기 좋은 메뉴가 표시됩니다. 제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해 금세 차린 다음 탁자에 올려두고 소파에 앉습니다.


리모콘 대신 목소리로 TV 를 켜고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키며 화면을 보니 아까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보던 영상이 멈춘 부분부터 표시되어 있습니다. 화면 한 켠에 표시된 리스트를 열어보니  이번  주에  놓친  프로그램들이  제가  선호하는  순서대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옆 칸에는  친구들이  추천한  프로그램들과 SNS 에서  많이  회자되는  프로그램들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  달로 예정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참고할만한  작품들도  별도로  표시되어 있군요. 다음  주부터  업무를  시작해야하니  내일  한  두  편  정도  보기로  하고, 예약을 해둡니다. 대기 중인 영상을 재생하라고 이야기하자 스피커에서 나오던 음악이 자동으로 꺼집니다. 핸드폰  앱으로  거실  조명을  적당히  어둡게  하고  와인을  마시면서  영상을  마저  봅니다. 졸음이 오더니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 뒤 TV와 거실 조명이 자동으로 꺼졌습니다.   


점차 빠르게 발전하는 IT 기술은 이제 쓸모 있는, 혹은 유용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우리 일상의 큰 축을 바꿀 정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물 인터넷’ ‘초 연결시대’ 등 가늠이 잘안되는 용어들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메일,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고,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과도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행에 직접  가는  것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될정도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온라인으로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물  인터넷’은  이러한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물끼리도 연결되고,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기도 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연결의 제한이 없어진 시대를 ‘초 연결시대’라 부르는 것이지요. 


앞서 예를 든 금요일 저녁의 풍경은 초 연결시대가 되었을 때 일상의 어느풍경을 가정해 본 것입니다. 그 중의 어떤 것은 이미 실현된 것도 있지요. 이런 풍경, 기대 되시나요?효율적인  편리함. 초  연결시대에  바뀌게 될  우리  일상의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자동으로 처리되는  것이  있는  만큼,  우리는  수고를 덜  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요리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필요한  재료가 없어서  메뉴를  바꾸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지금 이 가게에서 그 가격에 사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고민할 일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아끼게 된 시간만큼 우리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효율적이고  편리한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할까요?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만 해도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고, 사물과 사물이 연결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날까요? 어떤 문제가 생겨날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이전에 겪어본 적이 없는 문제일 경우 우리는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효율적인 편리함을 제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정보입니다. 내가 직접 입력하거나 전달하지 않아도 정보가 자동으로 오고 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집 냉장고 안의 상황이,  내가  오늘  하루  바깥에서 보낸  일정들이  정보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마트 세일 정보를 받을 수도 없고, 집에 들어섰을 때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을 수도, 피로를 달래줄 차를 마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기호에 따라 이러한 상황을 선호할 수도 기피할 수도 있습니다.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면  그러한  정보를 기꺼이  제공할  수도  있고,  편리함을  선택하지 않는  대신  일상의 정보들을 나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편리함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정보가 세상에 완전히 공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곳들은  서비스의 품질못지 않게 이러한 정보들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보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테니까요. 하지만 완벽한  관리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지요.  아무리 사소할지언정  이전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정보들이  다루어지기  시작하면,  그  정보를 활용하려는  관심들이  분명히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가  이번  주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마트에서 구입한 상품과 잠들기 전에 마신 와인은 각각 큰 정보가 아닐 수 있지만, 금요일 저녁에 같은 방식으로 구입한 상품과 사용된 와인의 정보들을 모으면 큰 의미를 가지게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입할 수 있는 휴대폰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이어서  그  이전의 휴대폰을  구입하는  것이 힘들어졌듯이, 사물인터넷 기능이 없는 냉장고나 커피 머신, 스피커를 사는 것이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불편을 감수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했던 메뉴를 재료가 없어 못 만드는 대신 눈에 보이는 재료로 다른 메뉴를 만드는 것, 이곳에서 이 가격에 물건을 사는 것이 최선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그저 사는 모습들입니다. 편리와 효율이라는 잣대로  이것들을 굳이  ‘불편’이나  ‘문제’로  바라보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선택하는 것을 어떤 ‘낭만’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자니 왠지 쓸쓸해집니다. 


이러한 변화를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효율과  편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커다란 흐름은 만들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개개인은 선택에 따라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에 대해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사회는  이러한  선택이  순수한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떠하든 그 중심에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의 편리’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관점을 설정하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점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도  ‘사람의  편리’가  아닌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초  연결시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의 출발점입니다.


(* 이 글은 <싱클레어 55호>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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