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e스포츠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난해 12월 4일 미국 LA에서 개최된 '조택(ZOTAC) 컵'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대회 중 한국 국적 프로 게이머 Larva의 '발컨'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발컨'은 '발로 컨트롤한다'의 줄임말로, 주로 손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방보다 기량이 우월함을 과시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경기 후 중국 국적의 상대 게이머인 Legend가 SNS를 통해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이에 대한 논쟁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기량의 차이가 크더라도 상대 선수에 대한 매너를 갖추었어야 했다고 평가했으며, 그 반대 입장에서는 선수 본인이 악의가 없었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만큼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뚜렷한 결론 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해프닝과 이를 둘러싼 반응을 통해 다음 두 가지 코드로 e스포츠에 관한 논의를 더 해 볼 수 있습니다.
e스포츠는 곧잘 스포츠에 비교되고 합니다. ‘게임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이라 정의되는 e스포츠에 스포츠의 속성이 반영되어있으며, 경기의 규칙이나 대회 운영 방식 역시 기존 스포츠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기도 합니다. 최근 올림픽 정식종목에 e스포츠를 포함시키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e스포츠의 달라진 위상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e스포츠가 스포츠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기존 스포츠와 동일한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스포츠가 추구하는 가치를 e스포츠도 동일하게 추구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가치 중 핵심적인 요소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입니다. 스포츠맨십은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반칙을 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e스포츠가 스포츠를 추구한다면 Larva 선수의 행위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e스포츠가 스포츠의 형식을 갖춘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한다면 이 행위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냐 엔터테인먼트냐’는 앞으로 e스포츠가 계속해서 마주하게 될 질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기존 스포츠가 추구하는 가치에 e스포츠가 부합할 수 있는가를 두고 기존 스포츠 관련 단체와 e스포츠 관련 단체들의 입장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e스포츠 관련 단체들 간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e스포츠가 기존 스포츠에 속하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실리가 분명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잃어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더 중요시할지에 따라 결론을 달리 내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스포츠는 국경을 넘어서는 스포츠로 간주됩니다. 프로 팀들의 활동 기반이 되는 지역이 있지만 지역과의 강한 연계를 기반으로 팀이 운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실제로 e스포츠 대회 관람이 경기장을 직접 찾는 것보다는 온라인과 TV를 통해 더 많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민족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가대항전 형식으로 열리는 대회가 대표적이고, 경기에서 맞붙는 팀 혹은 선수들끼리의 국적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그러합니다. ‘발컨’에 대해서도 상대 게이머의 국적을 언급하며 같은 국적의 게이머를 옹호하는 반응들이 맞서는 방식으로 민족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e스포츠는 국경을 넘어설 수 있지만 인류의 역사는 국경이 강하게 작용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여느 국가대항전이 그러하듯 경기에 대한 관심이 쉽게 모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겠지만, 반대로 경기를 매개로 경기와 무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e스포츠의 영향력이 더 커질수록 이와 관련한 이슈가 새롭게 더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위 인터뷰에서도 밝힌 대로 Larva 본인은 퍼포먼스의 취지였음을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기 직후 대회에서 한 인터뷰(아래 영상)에서도 같은 취지로 이야기를 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게이머 본인이 평소 퍼포먼스를 즐기는 성향이 있다는 정보가 없더라도, 행동에 악의가 없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Larva 나름대로는 대회 관계자와 사전에 협의도 했기 때문에 한편으로 억울한 마음도 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다만 그 협의의 대상에 상대 게이머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가장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상대방이 사과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악의가 없는 행동이었음을 밝히고 상대방이 느낀 불쾌감에 대한 유감을 표하는 것을 먼저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긴 합니다. 모쪼록 이 해프닝이 게이머 본인의 바람대로 해당 게임 종목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