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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ul 15. 2021

취준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취준생아, 굳세어라

 황금 같은 주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평소에도 1.2초처럼 짧게 지나가는 이틀의 주말이었다. 그러나 이번 주말은 평소보다 더 짧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지난 이틀간 한동안 손에도 잡지 않던 게임을 찾아 미친 듯이 플레이했다. 토요일에는 16시간, 일요일에는 18시간 30분…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지난 주말에 했던 게임의 플레이타임이다. 저렇게 온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다가 잠을 자는데 주말이 길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억눌렀던 무언가가 폭발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나 보다. 안 그래도 모두가 힘든 취업 준비 시즌이 내게는 더 최악이다.








 부끄럽지만 내 지난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철없던 새내기 시절, 3번이나 수능을 응시했다는 지난날의 보상 심리로 대학교에 와서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기로 다짐했다. 나는 내가 결심한 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한 달 30일 중 28일을 음주가무를 즐기며 살았다. 내 일상은 매일매일이 술과 게임이었다.


 다행히 3학년 때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학업에 집중하기로 했고 다양한 대외활동 경험도 쌓았다. 하지만 내게는 친한 선배가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 주변에는 취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 '학점만 잘 쌓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덕분에 저학년 때 마음껏 논 것 치고는 학점이 준수한 편이다. 높지는 않지만 딱 불이익을 받지도 않을 수준. 하지만 그뿐이다. 흔한 어학 점수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들 머리가 좋다. 분명히 같이 놀고 떠들며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던 친구들이었는데 토익 한 두 번 응시한 것만으로 고득점을 얻어온다.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놀랍게도 나랑 친한 친구들의 평균 토익 점수는 평균 950점을 웃돈다. 가장 점수가 낮은 친구는 920점, 가장 높은 친구는 990점.


 친구들은 내게도 토익 점수를 묻는다. 나는 괜히 망신당할까 무서운 마음에 시험 응시도 하지 않았다. 괜히 낮은 점수가 나와서 민망함을 겪는 것보다는 '나 아직 한 번도 안 봤어.'라고 말하는 것이 속 편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친구들도 다 저렇게 잘 보는데 생각보다 쉬운 시험인가보다. 나도 조금만 공부하면 바로 저 정도 점수는 따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정말로 토익 점수가 필요한 4학년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기업에 지원하려면 필수 어학 점수(토익, 오픽)가 반드시 필요했다. 처음으로 본 토익 시험은 정말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쉬워 보였는데 공부할수록 점수가 내 생각대로 안 나오고 어렵기만 한 것이 토익이었다. 시간은 부족했고 당연히 맞았다고 생각한 문제는 틀렸다. 특히 남들은 RC가 어렵다는데 내게는 LC가 너무 어려웠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기에 빠르게 듣기나 호주, 영국 발음으로 문제를 듣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인생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비록 나는 수능을 세 번 치르기는 했으나, 수능 공부를 할 때는 공부를 하면 점수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토익이라는 것은 그런 확신조차 안 든다. 내가 내 주변 친구들보다 머리가 많이 나쁘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맨날 바보 같다 놀리던 친구들이었는데 진짜 바보는 나였던 것이다. 남들은 이미 토익에 오픽 점수까지 다 따놓고 인적성, 자소서, 면접 준비에 한창인데 나는 아직도 어학 자격증 공부나 하면서 한참 뒤처지고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이전에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어학 점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면. 3학년 때 어학 점수를 미리 따놨다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에는 내 잘못이었다. 그러다 주변에 친한 선배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랐다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취업 준비에 관해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나 자신의 문제가 더 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토익책을 다시 꺼내 펼치고 싶지만 내겐 그럴 시간조차 없다. 나는 3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마케팅 대행사에서 근무 중이다. 눈을 감고 다시 떠보면 월요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해 책상에 앉는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재택근무가 시행됨에 따라 사무실은 여느 때와 다르게 썰렁하다. 나는 늘 그랬듯 컴퓨터 전원을 켜고 내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통계를 먼저 살핀다. 그 후 내가 구독하는 뉴스레터를 몇 개 읽고 새로 올라 온 브런치 글도 몇 개 정독한다. 새로 추가된 요청 업무가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취업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도 하고 토익 자료를 보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실무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기에 계약 날짜가 끝나기 전까지는 어학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각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모든 게 나 자신의 업보다.


 이틀을 공부도 하지 않고 허황되게 게임만 하며 보낸 나 자신을 나무라고 싶지 않다. 자책보다는 안쓰러움과 애잔함의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일 저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재충전 시간은 이틀이면 충분하다. 더 시간을 주고 싶어도 내겐 그럴 시간이 없다. 나는 다시 나아가야 한다. 마치 수능을 준비할 때처럼 놀고 있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하다. 이 순간에도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스스로 죄책감이 든다.


 취업은 멘탈싸움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자존감이 낮아지기 딱 좋은 시기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자존감을 잃어서는 안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나의 역량을 의심한다면 어떻게 기업에게 '나는 유능한 인재다. 나를 뽑아라. 안 그러면 너희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역량이 없더라도 나 자신은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게 취업 시즌이다. 자신감은 잃어도 금방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으므로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 결국 멘탈 관리도 자기 실력 중 하나다. 이름과는 다르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내 마음인데 멘탈관리마저 실력이라니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한 번은 대입, 한 번은 취업이라는 크나큰 관문을 한 번씩은 거쳐야 한다. 이왕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한 번은 부딪혀봐야 한다. 하기 싫고 미뤄두었던 일을 억지로라도 꺼낼 때가 왔다.


 대학교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누에가 고치를 뚫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가위로 고치를 조금 잘라주었다고 한다. 그 누에들은 쉽게 고치를 뚫고 세상에 나왔으나 얼마 안 가 금방 죽어버렸다. 반면 스스로의 힘으로 고치를 뚫고 나방이 된 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다할 때까지 힘차게 날아다녔다. 즉, 스스로 인생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의 철학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는 자살을 긍정하지 않았다. 자살하는 이들이 '얼마나 힘들면 고통스러운 자살을 결심했겠냐'며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자살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이가 쇼펜하우어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고통을 '오히려 자신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줄 수도 있는 괴로운 수술'이라고 표현했다. 즉, 인생은 고통이지만 자신의 본질을 찾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런 고통도 극복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아온다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힘없이 추락하고 말 것이다.


 결국 취업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다. 정말 힘들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하는 일련의 과정.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며 나는 더 강해지겠지.


 물론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취업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취업 준비는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더 강해져 있을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 하루를 또 버티고 견뎌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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