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Jun 21. 2022

어린이문학 편집자의 일④

④ 문학도 기획이 필요하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기 위해 돌아왔다. 그간 정말 일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이제야 일에서 나를 분리할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아니, 어쩌면 글을 쓰지 않을 핑계에서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     

문학은 어떻게 원고가 만들어질까? 아마도 대부분 작가가 주는 원고를 받아 그대로 내면 된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래서 편집자라고 하면 ‘Q. 네가 글을 쓰니? A. 아니! Q. 그럼 그림을 그리니? A. 아니! Q. 그럼 디자인을 해? A. 아니! Q. 그럼 도대체 뭘 하는데?’라는 질문과 답에 너무나 잘 맞는 분야 같다. 하지만 문학도 원고를 만드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첫째, 보통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가가 주는 원고를 받아 출간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원고를 받아 그대로 출간하는 것은 아니다. 1차 담당자가 원고 검토를 통해 출간이 적절한지 검토한 뒤에 회사 내 출간을 결정하는 시스템(결정권자의 원고 검토 혹은 기획회의)에 따라 최종 출간 여부를 결정한다. 출간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100% 그 원고 그대로 출간되는 경우는 드물다. 원고의 완성도나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편집 원칙에 따라 원고 수정이 크게 혹은 작게 이루어진다.      

둘째는 편집자가 아이템이나 컨셉을 정해 작가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형식이다. 편집자는 어린이라는 독자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뭔지 늘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인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란 뭘까? 그건 시대와 상관없이 어린이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보편적인 소재와 주제일 수도 있고 시대적인 상황에서 요구되는 소재와 주제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해 내고 원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18년에 출간된 『내 이름은 십민준』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민준이의 ‘받아쓰기’ 이야기다.‘받아쓰기’라는 아이템을 떠올렸던 것은 2017년 한글 교육을 다시 공교육이 책임지겠다는 교육부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교과서에 한글 교육에 관한 과정이 새롭게 들어가고, 수업 시간에도 한글 교육 시간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엄마들도 현직 선생님들도 ‘한글을 안 가르친 채 아이를 보내면 큰일난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을 모른 채 학교에 간 아이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가 궁금했다. 교사들이 교실 현장에는 한글을 능숙하게 잘하는 1학년과 한글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함께 있어 어느 쪽에 기준을 두고 한글 교육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관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기획 의도를 작가님에게 전달했고 작가님은 받아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민준이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꾸준히 독자들이 찾는 책으로, 역시나 받아쓰기를 몸소 경험하고 있는 1, 2학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모 출판사는 들어오는 원고가 넘쳐나 문학 편집자가 작가에게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일이 거의 없다고도 들었다. 물론 무수히 많은 책들 중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를 찾아내고 의뢰할 아이템을 고민하고 원고를 청탁하는 고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양질의 원고가 들어오는 일은 참 부럽다. 하지만 편집자의 업무 중 가장 매력적인 일 중 하나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원고를 내가 직접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책 편집자의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