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Dec 28. 2020

어린이책 편집자의 일

③ 나의 첫 어린이책이 기억나지 않는다

몰펀으로 만든 노트북

내가 만든 첫 어린이책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첫 어린이책 출판사가 그림책 전집 회사였기 때문일까.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집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보통 스무 권이 훌쩍 넘었고, 편집부원은 한 번에 5~6권을 맡아 진행했다. 편집부의 업무는 완성된 원고를 교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원고를 기획하는 과정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일개 사원인 나는 꽉 짜인 스케줄 안에서 교정 교열만 보는 부속품 같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근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스무 명쯤 되는 직원들 중에는 낮에는 펑펑 놀다가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상대방의 실수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척하면서 남들 다 듣게 크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윗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겨우 3개월쯤 일하는 중이었는데,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고, 숨이 턱 막혔다.   

   

그때 나를 어린이책으로 이끈 선배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로 오라고 했다. 나는 이미 여긴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도망치듯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문제는 도망치듯 선택한 일이 좋기는 쉽지 않다는 것. 선배만 믿고 들어간 회사는, 출판이 아닌 다른 일이 주업이었고, 책의 판매처가 이미 정해져 있다 보니 책의 만듦새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나와 같은 이유로 그 회사가 싫었을 선배가 내가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다른 회사로 옮겼다.      


나는 그곳에서 3년을 꾹꾹 버티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일을 제대로 배운 적 없이 연차가 계속 쌓였다. 늘 열심히 일했지만,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기에 기획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 카피와 보도자료 쓰기는 항상 자신이 없었다. 출판사는 원래 그런 곳인가 싶을 만큼,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 주는 선배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아니, 친절한 선배가 없는 게 아니라, 실상은 일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고 배울 여유가 없는 열악한 구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었기에 계속 일 못하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난 회사 생활에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상사의 마음에 드는 것. 그 상사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바보나 이상한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상사의 마음에 드는 건 미션 임파셔블급의 일이다. 그런 상사 밑에서 수년을 지내다 보니 다시 편집자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회사를 옮기면서 나는 다시 책 만드는 일이 즐거웠고 이제는 내가 기획한 책을 내가 편집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 나와 잘 맞는 회사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휴, 내가 이 일을 못한다고 나와 맞지 않다고 오해한 채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록 내가 만든 첫 어린이책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대부분의 회사가 일은 많고 비합리적인 곳이었으나. (그런 환경 때문에 이상한 상사가 있는 걸까, 원래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뒤돌아보면 나는 어렵고 힘든 회사 생활 속에서도 늘 누구보다 열심히 어린이 문학 신간을 찾아 읽고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린이 문학 편집을 잘하고 좋아하는 편집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이제 또 하나 꿈을 꾼다. 좋은 선배, 좋은 상사, 좋은 사수가 되는 것!     


(다음 글에서는 어린이 문학 편집자의 일을 한 번 다루어 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책 편집자의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