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오히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 돼.
자기 개발서나 유명인의 강연이 싫다. KBS1TV의 일일드라마 속 모범적인 가정의 모습이 싫다. 장애를 가진 이가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며 얼마나 어렵게 성공했는지 뽐내며 얘기하는, 그리고 그것을 경탄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싫다.
이 사회는 승자에게 관대하고 패자에게 가혹하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이들이 성공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미사여구가 붙어 모든 이들의 교훈이 되지만, 실패하면 몰골도 추한 데다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이 얼굴을 들고 다닐 면목조차 없는 부끄러운 패배자일 뿐이다. 높은 지위에 오른 해외입양 한국인은 자랑스러운 한민족이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과거일 뿐이다.
상처의 원인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가해자가 있었는지, 본인의 실수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고의였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보이는 성공과 껍데기가 중요할 뿐, 거창한 학위나 비싼 옷, 멋진 자동차, 부동산 문서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끔 비극에 가슴 아파해주는 이들이 있지만 그때뿐이다. 결국 그 순간으로, 찰나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는 불치병 환자도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한 이들도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피해자 가족도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도 모두 잊힌다.
세상은 가뭄에 콩 나듯 생기는 개천의 용을 가리키며 '봐, 쟤는 저렇게 잘하잖아. 네가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거야. 너도 저렇게 해야지 안 그러면 뒤에 보이는 저런 패배자가 되는 거야.'라고 끊임없이 쏘아붙일 뿐이다. 상처를 닦아내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깨를 밀치며 빨리 움직이라고 뭐 하고 있냐며 채찍질과 발길질을 이어간다.
'넌 오히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 돼.' 평생을 살아오며 들은 말이다. 멀쩡한 경쟁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짓밟고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발악했다.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