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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랑 Jun 07. 2021

리뷰_'그 후 1년', 국립현대무용단


랄리 아구아데-‘승화’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가 방한할 수 없게 되어 댄스필름으로 대체되었다. 안무가와 무용수간 온라인 워크숍을 기록한 영상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예술가들에게 시공간의 제약, 새로운 기술을 통한 의사소통은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번 댄스필름은 작품을 대하는 예술가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또 다른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점이 신선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 올라오는 ‘승화’를 꼭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권령은-‘작꾸 둥글구 서뚜르게’

무용 예술가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 방법으로 선택된 귀여움, 그리고 귀여움의 다양한 몸짓과 해석. 동물의 새끼들은 하나같이 귀엽다. 사나운 맹수나 온순한 초식동물이나 귀여움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모든 어린것들에게 적용되어 돌봄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무기처럼 작용한다. 이 작품에서 예술가들은 다양한 귀여움을 생존을 위한 계책으로 정의하고, 그것들을 제의로 올려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대에서의 생존을 탐구한다. 공연은 앙리 마티스의 ‘춤’의 모습에서 시작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유난히 신선하고 순수한 재미가 넘쳤다. 추상적인 춤이 아니라 일상과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던 이미지와 동작이 응용되어 객석과 무대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이러한 즐거움이 안무가의 순수한 의도인지 생존을 위한 타협인지 알 수 없었다. 


김보라-‘점’

난해했다. 물론 안무 노트나 해설, 작품 제목에서 의도한 바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나는 좀 더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마음으로 감상했다. 아니, 1년이 넘는 동안 공연을 보지 못해 나의 감각이 퇴화된 듯하다. 무대에는 거대한 비닐 백이 설치되고, 무용수들은 공기가 채워진 비닐 백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점을 만든다. 때론 점을 좇고 서로를 탐색하고 따른다. 작품 말미에는 비닐 안의 공기가 빠져나가며 공간과 움직임이 소멸된다. 이 비닐백은 나에게 바이러스 시대의 무대로 읽혔다. 격리된 무대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만 움직임은 모호하고 소리는 뭉개진다. 무용수들, 예술가들은 자신의 점으로 형상화된 자신의 목표와 꿈, 메시지를 이곳저곳에 흘리고 잃어버린다. 무대 밖의 사람들은 무대(비닐 백) 속의 예술가들을 갈구하지만 비닐의 벽은 그들을 갈라놓는다. 비닐 백 속의 공기가 줄어들며 무대라는 공간도 서서히 소멸한다.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무대라는 점 하나로 감사했다. 바이러스가 일상에 침투한 지 1년, 예술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공연이었다.  공연과 유리된 기간 동안 예술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크게 해소되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다음 공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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