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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8. 2020

사색72. 일희일비, 희비의 편차

5월 3일(토)

오전 부산행 기차표를 구해 서울을 떠난다. 츄리닝으로 편하게 입고 가려다 백수라서 그렇게 입고 다니냐며 안쓰러워할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캐주얼한 옷을 입고 나선다. 실직자가 별 신경 다 쓴다. 객차 옆 좌석에 서양인 아저씨 한분이 앉는다. 미세한 노린내가 코를 찌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시속 300km를 넘는 고속열차지만 지금은 달팽이 걸음 같이 기어가는 듯하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 개념에 공간을 적용하는 발견이지만 지금 나의 시간은 노린내라는 후각의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국가 경제를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인 실업률, 곧 실직이란 국가라는 시장 속에 생산 활동을 하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회 경제 속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개인의 인생에서 직업이라는 활동에 대한 가치를 모색하게 하고 삶의 자세를 조정하게 하려는 차원의 기회인지. 또, 신앙이란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사건에 신적 개입을 허락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서, 결국 그 상황에 신의 섭리를 믿으려는 자세를 가지려는 것이라면, 실직자는 실직 기간의 하루를 신앙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 실직이라는 허무함으로 가득 찬 하루를 신의 섭리를 기대하며 견디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겨울 이불만큼 두꺼운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를 침대 밖으로 꺼내려 어느 정도 ‘모험’을 찾아야 한다. 그 모험의 시작은 집 밖으로 나가는 ‘한 걸음’부터이다. 실직자에게 ‘한 걸음’을 내딛는 건 모험의 거의 전부와도 같다. 한 걸음 시작하면 두 걸음, 세 걸음 그러다 어느 목적지에 당도하고, 나선 김에 무언가를 이행하려는, 행동보다 뒤따라오는 인식을 발견한다. 내가 무얼 시작하고 있구나.      


모험의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타인을 만나기 위함이다. 특히 이 기간에 고민하는 내 생각을 타인의 견해로 확인하는 게, 내가 생각하지 못한 타인의 발견과 확인을 보태어 이 기간을 안정시킨다. 신앙적인 확신, 생각이라는 게 수학 문제 푸는, 내가 적용한 공식으로 풀어서 답을 냈는데 친구랑 답을 맞혀보니 전혀 내 답은 전혀 엉뚱한 답이더라. 확신한 식에서 나온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친구의 답은 다르고, 심지어 친구의 답이 정답이더라. 그렇게 실직자에게 만남, 특히 자기의 답을 비교해줄 수 있는 만남이 필요하다. 그게 교회에서든, 절이든, 동아리든, 집 앞 포장마차든, 지속적으로 접촉, 피상적인 수준이라도 지속적인 게 필요하다.     

 

실직의 가장 불안한 요소는 무소득이다. 이는 곧바로 소비 행태에 영향을 준다. 소득은 없고 지출만 있다. 그동안 목표했던 저축량이 깨지는 걸 보면, 매달 저축을 그래프로 그려가며 추세 선을 그려보는 사람인데, 추세의 기울기가 꺾이는 걸 보면 인생을 실패한 듯하다. 하향을 향하는 게 기울기가 곡선 아니 직선으로 떨어지는 걸 보면 이제 망했구나, 진짜 실직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신앙 차원에서 내가 믿을 건 ‘신’이지, 소득 역시 신이 주는 것이라면, 그동안 은행 잔고만 믿고, 그게 자신감의 근원이었다는 건 불신앙적인 행태 아닌가. 오히려 실직 기간에 돈 못 번다고 절약만 하는 게 아니라, 직장을 마련하고 소득이 늘어날 것을, 공중 나는 새도 먹인다는, 내 빈 창고를 채워 기업을 만들어준다고 표현하는 번영을 약속한 하나님을 믿는다. 번영을 기대하며 부산행 기차에서 비싼 고급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역에서 집까지 택시를 잡아탄다. 번영을 기대하는 신앙을 들먹이며 나 편하자고 돈 쓰는 것에 변명거릴 삼는 건가. 이게 타락 아닌가.      


어머니는 해운대에 있는 제일 큰 교회에서 며느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시어머니를 위한 5주 프로그램을 마치고, 대표로 졸업 연사를 했다고 한다. 그걸 보러 어젯밤에 부산에 도착해, 오늘 아침에 행사를 가려했는데 이제사 부산을 가고 있다. 어머니는 졸업 연사를 잘했다며, 프로그램 수료 동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한 글이었다며 많은 격려를 받았단다. 시어머니 학교라, 별걸 다 학교라는 걸로 교육하는구나. 살펴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갑작스럽게 ‘가족’이라는 관계를 형성하지만, 사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선택한 것이지, 그 선택에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부모의 재산은 고려했겠지만, 아무리 좋은 아버지 어머니라 하더라도 올바른 결혼을 결정하는 변수는 배우자가 아닌가. 갑자기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보니, 사실은 가족이 아닌데, 가족 같지도 않은데 가족같이 살아보려니 불화가 발생한다.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해야 하고, 친해질 수 있는 사건도 없는데, 친밀한 관계라 하기 어렵다. 아마 ‘시어머니학교’의 교육 역시도 서로 생각보다 친하지 않은 관계라는 걸 알려주는 게 아닐까. 꽤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어머니도 가끔 동생 아내에 대한 이야기 할 때 보면, 역시 시어머니는 합리적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가족 관계 문제보다도 ‘아들’, ‘남편’이라는 동일인에 대한 소유욕 문제, 소유권 이전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복잡한 일이다. 여하튼 그 프로그램에서 어머니가 느낀 바는 다음 글과 같다.      


올해는 유난히 봄꽃이 일찍 피었습니다.

온 세상이 꽃향기로 가득 차있을 때 라디오에서 좋은 시어머니, 장모가 될 수 있다는 시어머니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했습니다. 원서에 나의 약력을 쓰고 사진을 붙여 등록하고 개강 날을 기다렸습니다. 

5년 전 둘째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 저는 큰 형 먼저는 안 되고, 경제적 준비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를 찾아 반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의 식구를 맞아들여 내가 키운 아들처럼 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시어머니의 인격이 준비되지 않은 제 자신이 두려워서 반대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강의 시간에 배운 것처럼 사돈은 확장된 가족, 새로운 가족체계, 친밀한 가족관계 이런 용어가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예비 시어머니 장모 여러분은 훌륭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아들 결혼식 날 저는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시어머니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시어머니가 됩니다. 오늘 제가 며느리를 낳는다고 생각을 하렵니다. 한 살 한 살 키우며 같이 잘 살아가겠습니다. 때때로 지혜를 주셔서 고부간의 갈등이 속에 저를 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며느리가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니 저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아이를 낳으니 할머니가 되어 살아오고 있습니다. 

시어머니학교 간다고 아들한테만 말하고 며느리에게는 말도 못 했습니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시어머니학교 나와도 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까 봐 미리 겁을 먹은 것이지요. 그러나 개강 첫날 핑크빛 테이블 위에 참 오랜만에 보는 제 이름표와 교과서를 보며 잘 왔구나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 보자 싶었습니다. 한주, 한주 거듭 되는 강의 속에서 시어머니와 고부간의 갈등도 해결책이 다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왜 전화를 잘 안 하는 걸까? 문자를 보냈는데 오늘이 다 가도록 답장은 왜 안 하는 걸까?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왜 만들어 내 아들에게 먹이는 걸까? 왜 남편 셔츠는 빤듯하게 다리미질을 안 해서 입히는 걸까? 아이들 양말은 왜 짝짝이를 신기고 다니는 걸까? 살림을 사는 집에 행주는 없고 왜 물티슈만 있는 걸까? 저축은 어떻게 하고 사는 걸까. 답답하고 아쉽고 섭섭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말할까 하다가도 혹시 아들에게 불똥 튈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만나면 웃고 그러려니 하고 살자니 병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학교를 통해 강의 시간 시간마다 부족한 제 모습을 깨달았습니다. 착한 며느리, 신앙 안에서 아이 잘 키우는 며느리, 자기 오빠를 억수로 사랑하는 며느리,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사진 찍어 자주 보내주는 며느리, 매달 용돈을 보내주는 며느리, 며느리의 장점도 많아  답답하고 아쉽고 섭섭해서 큰 병이 날 것 같든 제 마음이 며느리에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는 아들이 자주 하니 아들한테 안부를 들으면 되고, 연년생 아이 둘을 돌보다 보면 문자를 못 볼 수도 있고, 자기가 잘 먹는 음식은 잘 만들 수 있어 다행이고, 셔츠는 아들이 다림질해서 입으면 되고, 짝짝이 양말은 개성 있어 보이고, 행주는 불편하고 물티슈는 수월하고, 저축은 저희들이 알아서 하면 되고, 강의와 학생들과의 교제가 거듭 되면서 어느 듯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 없으니 며느리가 아닌 아들의 아내가 아닌 딸을 본 듯 하자는 마음이 생깁니다.

왔다 갔다 하는 존재는 손님이다. 특히 자녀는 특별한 손님이니 정중하게 극진히 대접하고 함부로 하여 노엽게도 억울하게도 기분 나쁘게도 해서는 안된다든 강의를 듣고 참 많은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이 온다면 아~ 오늘 우리 손님 오신다는데 뭘 준비하지,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생각나서 기분 좋게 준비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계속 아들인데 왜 며느리만 손님 같은지 아직 마음을 완전 못 비웠나 봅니다. 

그동안 내가 베푼다고 한말과 행동들이 자녀에게 간섭과 통제가 되지나 않았는지 돌아보며 이제는 자녀들 일에 설치지 않고 조언을 구할 때 적절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즐거울 때 같이 기뻐하며 어려울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인생의 문제는 거의 다 내 안에 있는 내 문제다. 그러니 자아상의 치유와 회복이 있어 내 안에 당당함을 회복하고 억지로 살아내는 삶이 아닌 질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의 시간에 나의 문제 됨을 바라봤습니다. 남편 몫까지 두 몫을 살아내 해야 하는 부담이 크긴 해도 그럴 때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하며 마음으로 살피는 사려 깊은 시어머니가 되어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프로그램 마치고, 시어머니학교 졸업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게 걱정거리가 시집 장가가지 못한 자녀 문제일 텐데, 큰아들인 내가 아직 장가 못 갔다는 소리에 시어미니 동기들끼리 선 자리를 주선하고 있단다.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 장모가 될 사람이라 자식 배우자감이 지금 놀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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