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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l 07. 2019

사색71. 기분波

5월 2일(금)

기분이 최악이다.

 

주말부터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연휴를 맞아 김성한이랑 고향 부산에 자가용으로 가려고 했는데, 저녁 퇴근 시간 다돼서야 성한이가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부산 가지 못하겠다고 연락 준다. 잘 추스르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 혼자 부산 갈 거면 진작 나섰지,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겠나. 화가 난다. 이 시간에 부산행 기차, 버스 빈자리가 있을까. 금요일 저녁에다, 연휴까지 있으니 불안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알아본다. 불안한 예감은 보통 그대로 들어맞는다. 자리가 단 하나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서울역에 가본다. 입석도 없다. 설마, 그래도 내 자리 하나는 역에서 얻게 될 줄 알았다. ‘내 자리 하나’,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남들은 안 돼도 나는 될 것이라는 착각에 기반을 둔다. 대책도 없이 서울역까지 왔다. 이런 걸 확증 편향이라 하나. 기차역까지 가서 허탕 치고 돌아온 건 처음이다. 가끔 현매로 한두 장 구할 수 있는데, 좋은 계절 연휴라 그런 행운은 없다. 나는 왜 이리 일이 안 풀리나, 내 인생은 안 되다가 끝나는 건가 하는 우울함이 몰려온다. 연휴 전날 고향 내려갈 기차표가 없는 것과 내 인생 실패는 관계없겠지만, 우울한 내 마음은 그들을 관계 지으려 한다. 나는 매사 다 해낼 수 있는 줄 착각하고 살았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깨닫는다. 내 차표는 항상 있는 게 아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머니가 몇 달을 걸쳐 수료한 ‘시어머니 학교’ 교양 센터 수료식이다. 직접 가서 축하하고 싶었는데, 내일 아침 기차로 내려가니 행사 시간을 못 맞추게 됐다고 전화한다. 신경 쓰지 말고 내일 중에라도 잘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섭섭하게 들린다. 실직 중이라 시간 많으면서 정작 가족이 함께 해줄 자리에 있어주지 못하다니, 학위도 아니고 교양센터 수료식이지만 미안하다.      


깊은 새벽,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정신을 사로잡는다. 실직기간 동안 구약성경 창세기 속 억울한 사례로 아브라함이 평생을 기다린 아들, 억울한 처우 속 요셉의 인내를 읽었지만, 글을 볼 때 잠시뿐 내 생활에서는 실직당했다는 억울함을 다스릴 어떤 변화도 없다. 억울함에 사로잡혀 시간을 보낸다. 억울하다는 기분에 어떤 대응을 하기보다 기분파, 내 기분을 그리는 곡선이 파동 형태로 오르락내리락, 인생의 그래프에 궤적을 남기고 있다. 만약 고난이 인생사를 주관하는 신적 계획이라면, 그게 내 인생에서 이뤄진다고 신뢰하고 있는 신앙인이라면 사실 지금을 가장 누려야 할 순간 아닌가. 신적 개입을 가장 기대해야 할 상황 아닌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 특히 구직이란 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데, 이를 신께 의뢰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기분만 가지고, 용쓰고, 포기하고, 사실 포기할 것도 없고, 그렇게 산다.      


실직자가 어떡하면 개인의 인생에 대한 신적 계획을 신뢰할까. 무엇을 신뢰하나 다시 취직이 될 거란 걸 신뢰하나. 적어도 내 과거의 경험만으로도 다시 취직할 수 있다는, 첫 취업 역시 어려웠으니, 여유가 생기는데. 그럼 지금은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좋은 직장을 다니다 갑자기 짤린 게 억울해서 그런가. 직장 생활 중 몇 년, 몇 년째 위기는 올 것이라 나름 준비하고 있던 계획에 전혀 어긋나게 갑자기 당황스러운 실직을 맞닥뜨려 충격을 받아 그런가.      


꿈에 내 청첩장에 결혼식 날짜가 7월 22일이라고 찍혀있었다. 오는 7월 22일이 되면 다시 취직하는 걸까. 아니, 청첩장이니 정말 결혼하는 건가. 직업도, 당장에 결혼할 여자도 없는데, 결혼은 무슨. 직장이 생기면 여자가 생길 것이니 결혼을 하게 된다는 걸까. 이전에 직장 다닐 때도 여자 친구는 없었는데. 명절 때 직장만 생기면 결혼 다 한다는 친척들의 조언은 내 케이스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진즉 알았는데. 7월 22일이라, 만약 그 날짜에 실직이 끝난다면, 이제 5월인데 아직 두 달이나 더 놀아야 하나. 만약 그때도 아무 일 없으면 어떡해야 하나. 그날까지 별일 없으면 다 포기하고 서울 타향살이 접고, 고향 돌아가서 국수 장사를 해야겠다. 요즘 자영업은 열면 다 망한다는데 국수 장사하겠다는 건, 도대체 불안하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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