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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l 07. 2019

사색70. 새 달

5월 1일(목)

5월, 신록의 계절이다. 새 달, 새 계절, 여전히 실직자.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요셉은 이집트 총리로서 풍년 7년과 이후 흉년 7 동안 국가의 식량을 관리한다. 흉년이라는 분명한 위기는 관리해야, 관리할 수 있다. 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관리할 수 있으면 관리하려 한다. 그런데 관리 차원에서 풍년 기간 동안 흉년이라는 위기를 대비했다는 게 놀랍다. 7년의 풍요 뒤에 7년의 가뭄이 온다고 예상했지만, 풍년이 3년 정도 지나면 설마 흉년이 오겠어, 본인도 본인의 예상을 의심할 수 있다. 또, 풍년이 이어지니 풍족한 재정을 긴축하지 말고 지출을 늘리자 주변의 다른 관리, 정치인들의 요구도 있지 않았을까. 총리로서 국가 계획을 결정하는 게, 본인뿐만이 아니니 결정을 합의, 도출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리 파라오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어도, 지속하는 풍년 동안 올지 알 수 없는 흉년 때문에 재정을 긴축하는 걸 주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재정을 지출하자는 반 요셉파의 요구를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요셉 본인 역시 자신의 예상에 확신이 있었을까. 풍년 7년, 그 기간을 관리한 게 흉년이라는 분명한 위기를 관리한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번영의 기간에 타락하기 쉽다. 한두 달도 아닌 7년의 번영을 확신을 가지고 이행한 요셉, 아마 젊은 날 말도 안 되는 고생은 번영 기간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신의 훈육이었던 걸까.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풍부함 속에서도, 궁핍함 속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신약 빌립보서)’라는 일관한 자세는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나. 고난이 누구에게나 있다면, 그것을 대응해낸 결과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는 성과이다.       


나는 지금 마음이 쪼그라들어있다. 많지는 않지만 저축해놓은 게 좀 있어 실직자 일상을 보내는 데 돈이 모자라진 않는다. 다만, 한창 일할 젊은 날에 실직이란 걸 당한 내 마음이 너무나 가난하다. 한때 풍부할 때 실직, 무소득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어진 재정, 재량을 가지고 겸손하게 이용하며 일하고 싶다. 가난한 실직자의 일상에서 느낀 점을 다가올 풍부의 시절에도 유지하고 싶다. 다만, 혹시 다가올 번영의 기간에 이 시기의 사색한 것을 실천할지, 사색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해동 도서관에서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읽는다. 정치인의 정책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기반을 둬야 하며, 그 신념과 철학은 하루하루 여러 사람과 깊이 만난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들은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그런 만남으로 의정활동의 신념과 철학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까. 기사 딸린 관용차 타고, 재경향우회 같은 행사장이나 다니면서 신념과 철학을 다질 만남이라 할 수 있을까. 또,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을 만나 어떤 경험을 주고 있나. 풀리지도 않는 묵히고 묵은 민원이나 해결해 달라 떼쓰지 않나. 이 시대의 유권자는 정치인을 뽑아줘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념과 철학까지 만들어 줘야 하나. 책 제목대로 서로가 담대해야 할 일이다.        


저녁 9시 운동장으로 나간다. 400m 트랙을 16바퀴 돈다. 숨이 차오른다. 달릴 땐 들숨과 날숨이 훨씬 크고, 길어진다. 불안감은 사라지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다. 존재만 느껴진다. 상념을 떨치기엔 좋은데 자주 달릴 수 있을지, 운동장까지 나올 의지가 있을 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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