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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n 21. 2020

사색77. 어버이날, 면접

5월 8일(목)

어버이날,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여름 양복을 입을까 고민하다 춘추복을 선택한다. 많지 않은 컬렉션 중에 양복은 남색, 넥타이는 보라색으로 고른다. 어제 밤 비가 그쳤자만 낮에 비가 또 올 수 있다는 기상청 예보를 듣고 우산을 들고 나선다. 


문득, 기상청에서 비 온다고 하면 그날 정말 비올까? 기상청 예보 맞춰 우산을 들고나가면 정말 비가 와서 우산 써본 적은 열 번 중 몇 번이나 될까. 기상청은 자기 예보가 맞나 틀리나 체크해서 기록할 텐데. 맑음 예보, 즉 오늘 날씨는 맑다고 했는데 비가 내린 경험은 한 달에 한번 즈음은 있는 것 같다. 보통 맑은 날이 많으니 맑을 것이라는 예보는 생각보다 쉬울 듯. 그렇다면 진짜 예보가 필요한, 기상청 실력으로 볼 수 있는 비가 온다, 비가 안 온다는 비 예보만 따져본다면. 비 온다 했는데 비 오지 않아서 우산만 들고 다닌 경험은 한 달에 한번 보다는 자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비 예보는 맑음 예보 보다 비교적 맞을 확률이 훨씬 떨어지겠지. 그렇다면 기상청 예보가 잘 맞다, 잘 틀린다 라는 예보 자체의 맞고 틀린 일률적인 단정보다 맑음 예보는 잘 맞고, 비 예보는 잘 안 맞다고 해야겠지. 물론, 예보니까 틀릴 수 있지. 또, 비 오는 거 맞추는 건 정말 어렵겠지. 기상청에서 예보를 담당하는 직원도 자기 예보가 틀리면 얼마나 스트레스받겠나. 어느 정도는 자료, 근거, 데이터를 보고하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경험과 직관으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산을 들고 문을 나서니 가벼운 헛구역질이 나온다. 이게 몇 번째 면접인가. 면접은 꽤 치렀지만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버스와 지하철 환승, 예전 일하던 곳 근처라 가는 길이 습관처럼 익숙하다. 어떻게 보면 출근길처럼 자연스러운데, 모처럼이라 어색하다. 어색함이 곧 다시 익숙함으로 바뀔 걸 상상하니 흐뭇해진다. 동시에 혹시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영영 실직자로 살아가는 건가. 공포감에 가벼운 몸서리를 친다. 


회사 빌딩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지난날 비흡연자이면서 저 흡연자들과 사이에 함께 서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면접이 잡힌 J회사, 인사과로 들어선다. 회사 내부가 깔끔하다. 면접을 주관하는 2명이 들어온다. 부장, 상무급인 듯, 안면이 익숙한 분도 있다. 그분도 내 얼굴이 낯익은 지 시선을 멈칫거린다. 특정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 돌고 돌는 인재 풀이다. 속된 말로 그 바닥이 그 바닥이다. 은근 다들 얼굴이 익숙하다. 면접을 시작한다.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과 내가 일을 두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그쪽에서는 내가 이번 인사의 적임자인 듯한 뉘앙스다만, 현재 주어질 직무에 대해서는 내 이력서에 따른 경험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채용을 주저하게 된다며 솔직히 이야기한다. 정치색이 어떠냐고, 보수냐 진보냐 하는 예상 밖의 질문이 나온다. 나는 시장의 기능에 정부가 간섭하는데 대한 걸 척도로 본다면 정부 간섭이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정부 실패론자에 가깝다고, 다만 지금 우리 정치에서 보수, 진보 정당이 하는 일의 실질은 구분이 모호하고, 취향은 특정할 수 없지만 사안에 대해 보수 취향도 진보의 취양도 고루 있지만, 더 정확하게 보수든 진보든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취향 차이일 뿐, 필요하면 짬짜면을 시킬 수 있는 균형 있는, 현실감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좋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 그냥 노인?, 땅부자? 수준이다. 면접한 임직원들은 꽤 합리적인 사람들로 보인다. 연락 주겠다, 연락 기다리겠다며 서로 인사를 마치고 회사를 나선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동안 테니스 엘보우로 아팠던 팔꿈치를 치료하러 정형외과의원에 들른다. 구수한 전라 엑센트를 구사하는 젊은 의사가 테니스 엘보우라고 부르지만 막상 테니스 선수들은 이런 진통을 별로 겪지 않는단다. 선수들은 테니스 공을 치기 전에 팔 근력 운동을 많이 하고 테니스를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반면에 아마추어들은 준비 없이 시작부터 공만 냅다 치니 팔꿈치에 무리가 간단다. 준비 운동도, 근력도 없이 바로 공을 치니까 팔꿈치 아픈 게 당연하단다. 별다른 처방이 없다며 쉬란다. 그리고 테니스 치기 전에 근력운동부터 시작하란다. 운동하기 전에 준비운동,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운동의 목표를 견딜 수 있게 기초 근력을 키워놓아야 한단다. 기초를 키워야.      


의원을 나서는데 좀 전에 면접 본 J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내일 오전 10시에 바로 사장 면접을 보잔다. 사장 면접도 좋은 소식이지만, 별로 기다리지 않게 회신이 빨리 와서 더 좋다. 


오후에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쓰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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