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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10. 2020

사색80. 사고 직전

5월 11일(일)

눈을 뜨니 가벼운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 흐릿한 하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실직으로, 감기로, 실직기간이 곧 끝날 것 같은 느낌으로 기분이 혼란스럽다. J회사로부터 사장 면접 하자는 전화가 아직 오지 않나, 설마 면접이 취소됐나? 불안해한다. 오늘 하루만 잘 기다려보자 하고 설마 하는 생각을 피하려 한다.       


동네에 있는 버스 식당, 폐차한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식당에서 함박스테이크를 시킨다. 이번 사장 면접이 끝나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김성한과 함께 축하하며 먹으려던 메뉴인데, 기다리지 않고 그걸로 주문해버린다. 식당 아주머니가 요리하면서 본인 고향 이야기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내 고향 동네까지 같은 곳이다. 그동안 지내면서 얼굴 한번 마주쳤을 법한 고향 사람이다. 제 고향도 바로 거기예요 라고 반갑게 화답하진 않는다. 식당 주인이랑 동향이란 게 무슨 상관있나. 괜히 그런 걸로 우리 고향사람이네 형님 동생 서로 으싸으싸 하는 게 싫다. 식사를 마치면서 “여기 계산이요” 말하는데, 식당 아주머니는 멈칫 내 엑센트에서 무언가를 끌어내고 싶어 하는 눈빛을 짐짓 나는 모르는 체한다.       


일요일이라 교회로 간다. 우중충한 날씨 아래로 걸어간다. 일요일마다 걸어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붕 뜬 느낌이다. 물리적으론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 시선은 하늘을 두둥실 날아가 듯하다. 느낌을 결정하는 건 촉각보다 감정에 달려있나 보다.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의 피아노를 들으며 걷는다. 교회에 다 왔는데 이어폰에서 나오는 피아노 소리보다 더 큰 ‘끼익’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택시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다 끼익 하고 선 것이다. 라지에이터로부터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내 오른쪽 무릎에 닿도록 가까이 붙은 택시를 보곤 너무 놀라 굳어버린다. 운전기사도 겨우 차를 세워내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커브 오르막길,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횡단보도, 운전기사는 오르막을 오르려 탄력 받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는 언덕 위 횡단보도만 보고 걷느라 올라오는 택시를 보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규정상으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선에 차가 잠깐 서야 하는 거다. 근데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지하는 운전자가 있나, 특히 택시가, 게다가 오르막을 얻을 속도를 얻은 차에 굳이 브레이크를 밟을 여유로운 운전기사가 몇이나 되나.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 있다가 겨우 고개를 돌려 운전기사를 째려본다. 역시 놀란 운전기사도 나와 눈을 마주하다가, 내가 계속 째려보니 기사는 창밖으로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한다. 순간 이 새끼가 차 밖으로 내려서 상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계속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게 기분 나빠 손가락질을 하며 혀를 찬다. 이런 건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인간 대 인간관계에서 다뤄야 한다. 운전기사는 끝까지 운전석에 앉아 있다. 내 귀에는 계속 앙드레 가뇽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발걸음을 옮긴다. 택시도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상황이 일어났던 자리를 벗어나, 객관적으로 정리해보니 큰 사고 날 뻔했다. 택시와 내 무릎이 부딪쳤고, 그 속도에 2차 충격으로 튕겨 나와 머리가 땅에 떨어져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적어도 다리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질 뻔했다. 탄력 받은 속도로 오르막길을 오르려는 속도 그대로 커브를 했으니, 아찔하다.      


안전, 사실 안전이라는 게 인간의 관리, 매뉴얼, 시설 기준, 준법 등으로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 이상 신의 영역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일상의 사소한 일이라도 잘 흘러가게, 안전하게 지내는 거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참사 후 안전을 어떤 문제점을 개선하면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 보장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렇게 얻어지는 안전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인생에서, 크게 인류의 서사에는 안전보다 불안전한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안전하게 보낸 게 우리 사회의 관리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 외적 영역에서 작용하는 걸 고려한다면 불안전한 일을 당하지 않은 건 신께 감사해야 할 일 아닐까. 그렇다면 불안전에 대해선 신께 화를 내야 하나. 사고당한 사람은 신의 통제, 관리 안에 들지 못해서 그런 건가. 안전과 불안전에 대해 신의 역할을 두면 만약 사고가 난다는 것은 신의 의도가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논쟁이 생긴다. 내가 만약 사고가 났다면 병원신세를 진 건데, 사고 나지 않았으니까 감사해야 하나, 세월호 사고의 피해자와 유족은 감사하지 못해야 하나. 나와 내 지인이 세월호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감사해야 하나. 안전, 내 하루의 안전은 고려하고, 불안전은 당한 사람만의 일로 국환 될 수밖에 없나.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비가 내린다. 우산 쓸 정도가 아니라 맞고 가도 될 정도, 그렇게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해 젖은 몸을 씻으며, 문득, 실무진 면접을 통과해도 이번 채용에 대한 사장의 요구는 다를 수 있지 않나. 사실 J회사 경력직 직원 공고가 최근에만 3번이나 났더라. 그런 게 실무진의 면접 결과를 사장이 NO 해서 계속 채용을 취소하고, 공고하는 걸 반복했던 게 아닐까? 밖에서 보기엔 그 회사 사장이 멍청해 보이는 노땅인데, 생각 밖으로 꽤 까다로운 양반이 아닐까? 샤워기의 떨어지는 세찬 물줄기를 맞는 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왜 사장 면접 일정을 다시 잡는 전화가 오지 않지. 마음이 점점 무너져간다.        


내일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조건인 실업급여 교육을 받으러 지방 노동청을 가야 한다. 이 젊은 날에 실업급여라니, 쪽팔린다. 먼저 가본 선준욱 과장이 그러던데, 월 120만 원 찍힌단다. 매월 3만 원 정도 보험료 넣다가 매월 120만 원을 주니 감사하더란다. 감사할 일인가 싶다. 신앙인으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규범과 실천의 간격은 3만 원과 120만 원의 차이만큼 큰 것 같다. 그 간격을 줄이는 게 진짜 신앙생활인 듯, 근데 그게 어찌 줄어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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