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오지랖'이었다
두어해 전 결혼을 했다. 결혼은 매우 개인적인 이벤트지만, 기자로서 사회를 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진 계기였다. 사람은 서있는 자리가 다르면 다른 풍경을 보는 법. 저출산이나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생겼다. 신혼부부들이 이 사회에서 왜 아이를 안 낳는지를 조금은 깊게 이해하게 되었달까. 언젠가 그 생각에 대해 긴 글로 써보고 싶다.
결혼 전후로 나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에게 던지는 ‘질문’의 주제와 내용들에 대해서 많이 골똘히 생각해보게 됐다. 기자라는 직업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일이 평균적인 직장인에 비해 아주 많다. 그런데 내가 '기혼'이라는 사실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알리는 순간 마치 '질문 매뉴얼'에 따른 듯 동일한 순서, 동일한 주제의 질문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결혼하셨어요?” “아, 아이는 아직이시구?” “나이는요?” “언제 결혼하셨어요?” “신랑은 직업이?” “신랑은 몇살 차이에요?” “신랑 회사가 어디에요?” “그 회사는 이러쿵저러쿵하다던데, 제가 알기로는 연봉이 이러쿵저러쿵한데 맞나요? 하하” “신랑 고향은요?” “신랑 대학은?” “연애?(해서 결혼했는지)” “아이계획은요?” “그렇구나, 낳을 거면 둘 낳으세요.” “왜 둘을 낳아야 하냐면요 이러쿵저러쿵(나의 가족 계획을 그 자리에서 세워줌)” “낳을거면 빨리 낳으세요” "집은 어디쯤이세요?" (몇몇은 집이 전세냐 자가냐부터 해서 내가 사는 지역의 학군 분석을 해준다.)
이같은 질문 공세를 당하면서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바뀐 건 '비혼->기혼'이라는 변화일 뿐인데, 갑자기 사람들이 매우 개인적인 신상정보에 대해서 거침없이 묻는 것 아닌가. 하긴 잘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도 이 사회의 사람들은 나이, 출신대학, 고향, 남친 유무, 결혼 계획 등을 묻는 것을 '인사' 혹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사교적인 질문'으로 여겨왔던 것 같다.
듣기엔 뜨악스러웠으나 악의없는 질문들이었다. 그저 남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 묻는 것이 한국사회 대화의 창구라고 이해해보면 되는 걸까.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 친구들은 저런 류의 질문을 하나라도 할라치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는데... ' 지난주에 밥을 먹은 다른 회사의 동료 기자와는 근 10년간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서로의 연애사까지 다 아는 사이인데, 매우 조심스러워하며 나의 인생 계획에 대해 궁금해했다. “근데 혹시 너도 아이계획 같은 거 있어?”라며.
회사에 들어온 어느날, 한 선배에게 투덜투덜대면서 “대체 사람들은 제 남편 연봉이랑 그런 걸 왜 궁금해해요? 제 둘째 계획까지 세워주고.”라고 말했다. 이미 그 질문에 수없이 시달려봤을 그 선배는 웃으면서 “그게 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거야.”라고 말했다. “생각해봐, 그럼 무슨 얘기를 해? 그냥 다들 아이 교육 얘기하고, 집 얘기하고 그러는 거지. 다들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질문들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허나 나는 여전히 이 질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종종 생각한다. 대체 왜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해할 것들이 저런 것밖에 없는 걸까. 조금은 어색해도 요즘 보는 드라마 얘기를 할 수도 있고, 거기서 뻗어나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취미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냥 나 어디 가봤다 수준의 대화가 아니라 나의 여행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요즘 읽는 책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소수인 것 같다. 다들 진짜 자기 생각은 나누고 싶지 않아서 저런 신상정보 질문 뒤에 숨는 것만 같다.
더 나아가서 보면, 저런 질문이 필요 이상으로 남발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남의 신상정보를 묻는 것을 ‘안부’나 ‘아이스 브레이킹’ 정도로 생각할 만큼 ‘오지랖’에 한없이 관대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후배가 들어오면 나이를 궁금해하고 때로 묻기도 하고 "이야, **년생이 이제 취업을 하는구나"라는 말을 하는 이 사회의 일원 중 하나지만, 신상정보를 묻는 것을 ‘관심’이라 생각하고 한없이 좋게 봐주자고만 하는 사회 분위기는 적극적으로 바꿔나가고 싶다. 서로의 나이, 학교, 기혼 여부, 성적 지향성 여부까지 TMI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지 않은가.
누군가와 여러번 밥을 먹고 나서 어느정도 친밀감이 형성된 다음에서야 신상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사회가 됐음 좋겠다. "아이계획 있어요?"가 안부가 아닌 사회에서 살고 싶다.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가자면, 내가 (비혼일 경우에) 이성애자가 아니거나 불임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 경우 신상에 대해 묻는 것은 질문 자체만으로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랜 친구인양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며 이것저것 묻고 답하고 나누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좀 어색하지만 나와 그 사이에 있는 적당한 거리를 존중하는 사람이 더 좋은 관계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