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의 종착지, 다낭

인생 모를일. 쉽게 좌절하지 말기

by 나우


층간소음에 시달리다 어디든 피할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휙 날아왔다. 이사가 한달여밖에 안남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꾹꾹 참아내고 있는데 그 괴로움을 남편이 눈치챘다. 뚝딱뚝딱 비행기표를 끊고 호텔을 잡아 주더니 일주일도 안되 베트남행 비행기에 나를 실어버렸다. 정신차려보니 호텔 안. 짐을 풀며 실감했다. 정말 왔구나.



넓은 세상 그 많은 도시중에 왜 이곳이었을까. 즉흥적인 선택은 전적으로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몇가지 조건이 휙휙휙 지나가고 그 대답에 다낭은 전부 예스로 대답했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수업이었다. 힘들어서 떠났지만 수업에 차질이 생기면 삶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생업이니 무조건 사수. 타협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시차 많이 나는 곳이 제일 먼저 제껴졌다.


유럽살이 동안은 남편이 있어서 어찌저찌 음식도 사다주고 요리도 해줬지만 혼자서 새벽에 일어나 수업도 하고 끼니도 챙길 자신이 없었다. 쫄쫄이 굶다보면 한국보다 삶의 질이 더 떨어질수도 있다. 한국과 시차가 비슷해서 항상 하던대로 수업하고 밥도 먹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시차 적은 곳이라면 위도, 즉 한국 양옆으로 조금만 가거나 경도, 즉 위아래로 많이 갈 수 있는 곳들이 후보지라 할 수 있다. 구글 지도를 켜고 위아래 길다란 타원을 그렸다.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원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떠오른 나라는 호주, 뉴질랜드였다. 간 김에 자연도 누리고 영어도 실컷 쓰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속도 맘껏 누비고. 그랬다. 10년만 젊었어도 난 지금 다낭이 아니라 그레이트 베리어 산호초 위를 헤집고 다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은....장거리 비행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럽이야 세 달 넘게 있었으니 도착해도 몇일 고생하면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3주였다. 오가며 주말을 다 쓰고 주중에는 수업하고...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나이 먹은거 서럽지만 어쩌겠어. 인정할건 얼른 인정해야 차선의 선택을 내릴수 있다.


남은 건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이쯤되니 선택이 참 편해졌다. 중국은 개인적 취향으로 제일 먼저 탈락했고(개인적 취향입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편견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위생과 공해가 어쩔수 없네요.) 일본은 체류비 대비 만족도가 떨어질 것 같았다. 몇시간을 쪼그만 방에서 수업하다가 문득 현타가 올수도. 여긴 어디인가. 나는 왜 날아왔는가. 이러면 집이 나았을까. 등등등


마지막 선택지, 동남아시아를 휘리릭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스노클링에 꽂혀서 열번은 갔던 필리핀이 제일 먼저 스쳤다. 스노클링의 천국이지만 그외의 여건들은 흠.... 치안이 좋지못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기도 어렵고 마닐라를 벗어나면 인터넷이 불안정해 애먹기 일쑤다. 휴양으로는 최고지만 수업을 위해서는 패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치안도 괜찮고 저렴한 물가에 맛있는 음식, 휴양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치앙마이, 방콕 그리고 다낭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은 순전히 바다 하나로 결정되었다. 매일 들어가지는 못해도 들여다보기는 해야겠기에 미케비치 품은 다낭이 최종 정착지가 되었다.


머리로는 지구 한바퀴를 돌았다. 돌고돌아 찾은 이곳. 어쩌면 답정너였을지도 모른다. 네가 아니어도 될 이유들을 백개쯤 대다가 "사실은 처음부터 너였어"라고 고백해버린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 찾은 이곳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수업준비, 수업, 그리고 나머지 몽땅은 이곳을 누리기.




6시면 떠지는 눈은 조식으로 향하고 수업 중간중간 미케비치를 산책한다. 에어컨인듯 선풍기인듯 후끈한 공기 아래 코코넛 커피 한잔 시켜서 책을 읽고 마지막 수업후에는 수영을 한다. 루프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할때면 남편 생각이 절로 난다. 어느 방향이 한국일까. 큰절 받으십시오.





층간소음에 몇년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불면증까지 왔을 땐 정말 다 그만두고 싶었다. 인생 뭐 이러나 싶었는데 이제는 "인생 참 살만하군..." 중얼거리다 잠이 든다. 이런 날이 올걸 미리 알았으면 좀 덜 괴로웠을까? 까맣기만 한 날을 지날때 "이런 날 금방 온다!!!" 이제는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까먹었다 싶으면 이 글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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