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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Jan 23. 2019

위험하고 황홀한 알래스카

- 나의 아름다운 고독

                                                  

책을 덮은 지금, 한바탕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장장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긴 이야기를 틈날 때마다 꺼내 읽었다. 내가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겠지. 언제든 공간여행, 시간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 몸은 이곳에 있지만 코끝으로 아찔하리만큼 차가운 알래스카의 공기가 느껴지고 시리도록 파란 하늘 위로 오로라가 춤을 춘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꿈이 현실같고 현실이 꿈같다. 꿈 속 세상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워 현실로 돌아오기 싫은 마음이 사람들을 점점 더 잠으로 끌어들인다. 지난 한주가 나에게 그랬다. 하얀 포말이 거칠게 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원초적 자연이 그대로 숨쉬는  광활한 들판을 마음껏 내달렸다. 그러다 문득 수업을 하고 있는 나, 저녁 준비를 하는 내가 꿈처럼 느껴졌다. 얼른  알래스카로 돌아가야지. 덮여진 책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알래스카에서 펼쳐지는 한 가족의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온 세상이 충만했을 때 그들에게 아이가 찾아왔고 그렇게 셋은 가족이 되었다. 가진 게 없어도 서로가 있어서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다 베트남 전쟁으로 아빠가 군대에 징집되었고 1년을 기약하며 날아간 그곳에서 전쟁 포로가 되어 6년만에 기적적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아빠가 아니었다. 웃음은 사라졌고 매일 밤 악몽이 이어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맹수처럼 거칠게 포효했다.


딸은 사실 예전 아빠의 기억이 거의 없다. 너무 어릴때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모습이 진정한 아빠가 아니라는 엄마의 믿음을 딸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아빠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그러면 다시 저녁 식탁에 웃음꽃이 피고 함께 행복하게 나이를 먹어갈거라고 믿었다. 알래스카는 그러한 새출발의 땅이 될 것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에서 치유받으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은 더욱 끈끈해질테니까.






이들의 바램대로 이야기가 아름답게 이어지길 나 역시 간절히 바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그저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생겨난 이들의 비극에 마음이 아팠다. 자연의 힘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든 반드시 이겨내기를 원했다.


누구보다 엄마의 마음이 간절했을테다.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남자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녀.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는 점점 야수가 되어가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다. 그게 사랑이고 가족이라고 믿었다.


이쯤 되었을때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딸의 안전까지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만 엄마는 계속해서 그의 곁을 지킨다. 남편은 지금 아픈 것 뿐이라고, 더 많이 사랑해주면, 환경을 바꿔주면 분명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이어지는 비극이 수렁처럼 점점 깊어진다. 거칠고 위험한 알래스카는 그러한 비극을 더욱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러함에도 순간 순간 그곳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날것 그대로의 자연 앞에 마음이 부풀고 알 수 없는 용기가 일어난다. 이 끔찍한 가족을 지켜준 마을 사람들의 사랑처럼. 결국 우리는 사랑에 걸려 넘어지지만 사랑으로 다시 서게 되는가 보다. 이 길고도 장엄한 이야기를 꿰뚷은 하나의 열쇠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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