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읽어가며 한장 한장이 아쉬워 일부러 책장을 더디게 넘기곤 했다. 침대에 앉아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는 마음을 꾹 누르고 불을 껐던 밤들도 이제 끝이 났다. 휴....굿바이 건지 아일랜드.
영국 남쪽에 자리잡은 아름답고 따뜻한 이 섬에 독일군들이 밀려들어왔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5년여의 시간을 혹독하게 보낸 주민들이 그 시간을 함께 견뎌낸다. 독일군들이 물러 간 후에도 영혼 깊숙이 남은 상처들이 있다. 서로를 보듬고 너와 나의 아픔을 함께 치유해간다. 참 따뜻하다. 참 사랑스럽다.
개인적으로 전쟁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들을 많이 읽곤 했다. 학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한 이유도 평화를 소망하는 소박한 바램에서 였다.
전쟁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통계와 수치, 원인 등을 분석한 지극히 비인간적인 이야기이거나 끔찍하고 잔인한 상황에 내몰린 지극히 극단적인 이야기이다.
감정을 쏙 빼고 현실을 파악하든지, 가슴이 저린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가든지 둘 중에 하나 말이다.
그런데 건지아일랜드 이야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지극히 사랑스러운 이야기이다.
아, 그리고 귀엽다. 물고기를 잡거나 돼지를 키우는 순박한 섬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문학회를 만들게 된다. 어떤 아주머니는 자신의 요리 레시피 책을 들고와 낭송하고 주구장창 같은 책을 들고와 낭송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아저씨도 있다.
읽어가며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끔찍한 고통과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대한 담론도 심각한 치유법도 아닐지 모른다. 일상에서 건네주는 소소하지만 속깊은 애정 그리고 관심이다. 거기에 유머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피식 웃는 웃음에 단단한 기억의 산이 톡 건드려진다. 그렇게 한 줌 한 줌 아픔들이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