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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Dec 28. 2018

「The Giver」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걸까

오랫만에 원서 한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데 왜 내 독서는 점점 속도를 잃어가는 걸까. 하루 세끼 뭐 먹을까 생각하는 거 반만이라도 책 생각을 한다면 천고'나'비의 괴로움은 면할 수 있을텐데.
          




뉴베리 수상작인데다가 내용이 신선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번역본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억 전달자」라는 꽤 친숙한 제목으로 이미 책과 영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중고등학교 권장도서로 많이 활용되는 등 꾸준히 사랑받고 있었다.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뒷북 인생을 잠깐 자책했더랬다. 아니지 아니야. 세상은 넓고 좋은 책들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거지. 이런 뒷북은 언제든 환영인거구.

이 책은 미래세계 혹은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모든 것이 잘 조직되고 통제되 불편함이나 고통이 전혀없는 세상이다. 지혜로운 현자들에 의해 규칙이 제정되고 누구도 소외받거나 불평등을 느끼지 않게 보편화된 복지를 제공한다. 현자들의 사려깊은 관찰을 바탕으로 적절한 직업이 주어지고 배우자가 선택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수 있는 차별화된 패션은 금지되고 모두가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누린다. 매 끼니가 집으로 배달되고 아이마저도 순번제로 각 가정에 위탁된다. 행복 동일의 법칙. 누구나 꿈꾸는 패러다이스 사회이다.


편리함이 극대화 되고 불평등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수 있을까.

치기 어린 낭만이 가득했던 이십대였다면 대략적 줄거리만 읽어도 인상을 확 썼을지 모른다.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에서는 단 하루도 살수 없다면서 말이다. 어느 덧 삼십대를 훌쩍 넘긴 지금.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부럽네',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씁쓸한 미소가 따라오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걸.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복지가 제일 부러웠다. 나라에서 전담으로 맡아주는 보육 제도와 매 끼니 배달되는 음식들은 일하는 여성들의 천국처럼 보였다. 각각의 나이대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얼마나 안심인지. 자전거는 9살부터, 직업 훈련은 열두살부터. 동일한 출발선은 진정 큰 매력이다. 선행학습에 찌들어있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워야 할 예비맘의 입장에서는 정말 정말 부러웠다.

                                          


언뜻보면 전형적인 공산주의 사회 같기도 하지만 세련되고 편리하며 부유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미래의 북유럽 모습 같기도 하고 자본주의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 같기도 하다. 조식 서비스가 제공되는 우리나라 고급 아파트 단지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노인들을 존경하고 끝까지 부양하는 점도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끝까지??에 대한건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사실 지금 내 삶에 크게 어려움이나 불만은 없다. 풍성하고 감사한 것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항상 걱정을 안고 사는 건 노후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퇴직 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늘어난 평균 수명동안 뭘 먹고 살 것인가. 또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런데 나라에서 이 모든 걸 다 책임져 준다니 소설 속 이야기만 아니면 진정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이 모든 혜택을 누리려면 획일화를 받아들이고 선택권을 포기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젊은 나이였다면 발끈했을 이 대목이 '뭐 꼭 나쁘지만도 않네'로 바뀌었다. 나는 철이 든걸까. 이제야 현실을 안걸까. 아니면 물질과 편안함에 노예가 되버린 걸까. 당황스러우면서도 씁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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