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ngbong Mar 22. 2020

[단편] 어느 로봇

로봇이 입양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인과 로봇의 관계

꽤 큰 집이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집 뒤편에도 마당이 있다. 별도의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멍청한 좀도둑도 이 집은 탐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집들이 정말로 위험한 집이다. 보안시스템이 완벽한 집들은 대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담벼락은 할아버지라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집의 정원과 집 밖의 구분이 덜하여 그 집의 경계가 훨씬 넓어 보인다.


로봇 수리 기사로 벌써 20년째 일을 해오고 있지만 방문했던 집 중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곳인 거 같다. 과하게 크지도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이 있으며 자연의 일부이면서 딱 적당하게 멋을 뽐낸다. 로봇도 7대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그중 막내 로봇을 체크하러 왔다. 보고서대로라면 폐기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꿈은 로봇공학자였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업종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친구가 4명 있다면 그중 절반은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세계적인 부자 10위에 로봇공학자가 6명이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로봇공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로봇의 시대가 도래할 때에는 수많은 로봇공학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지금은 로봇을 만드는 건 로봇뿐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그것도 전 세계 상위 0.1% 수준의 머리 좋은 공학자들만이 로봇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로봇을 제작하던 시기는 지났고 지금은 로봇이 로봇에 의해 대량 생산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류는 그것을 그저 누리며 살 뿐이다. 로봇공학자를 꿈꾸던 나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은 지금 로봇 AS 기사가 되어 있거나 로봇의 도움을 받고 별다른 소일거리도 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재미를 찾아 인생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로봇은 주로 6세에서 19세까지의 어린 로봇이다. 이 로봇의 용도는 처음엔 애완용 로봇이었으나 지금은 인간들의 가족으로 필수 구매품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회사를 입사할 때엔 이런 로봇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가정집에서 청소용 로봇을 애지중지 키우는 게 큰 화재가 되었고 그 스토리가 워낙에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청소용 로봇을 가족과 같이 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회사들은 성장하는 어린 로봇들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아예 1살짜리 아기 로봇까지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초기 도입으로 6세 로봇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6세 로봇은 모든 언어를 알아듣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시작하기에 가장 인기가 많다. 그렇게 6세부터 성장해서 로봇의 하드웨어가 변화하고 두뇌도 주인에 맞게 변화한다. 물론 더 어린 1살, 3살 등의 아이들도 드물게 키우는 분들이 있다. 아기를 좋아해서 키우는 경우도 있고 더 완벽하게 가족화가 진행되게 하려고 키우는 경우도 있다. 오랜 경력의 로봇 기사로써 추천하자면 6세 혹은 7세 정도가 확실히 좋다. 더 일찍 키운다고 더 가족화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심하다. [개인화] 패턴이 완벽하지 않은 시기인 6세 이전의 로봇은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로봇이 20살 때까지 크고 나면 로봇 스스로의 의지로 나이를 선택해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봇은 주인이 죽었을 때, 혹은 지정된 수명이 다하면 멈추게 되어 있는데 구버전 모델은 70살까지 살 수 있고 현대 나오는 모델은 법이 개정되어 50살까지만 살 수 있다. 일부 재력가들의 집에 100세 이상까지 살 수 있는 로봇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그것은 명백하게 불법이다. (사실 그 소문은 진실이며 나의 단골 고객 중 한 명은 현재 112세의 로봇을 가지고 있다)


-


다시 처음 소개한 집으로 돌아가자. 보고서엔 이렇게 쓰여 있다. 


‘7번째로 입양된 6세의 로봇이 다른 로봇과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성 모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이 한 줄에는 몇 가지 특이한 부분이 있다. 첫째, 1개나 되는 로봇을 입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1기나 2기 정도가 대부분이다. 로봇이 그렇게 저렴하지도 않거니와 로봇 하나를 가족화 시키는데 꽤 큰 시간과 애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로봇이 많아지면 그것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복잡해지기도 하다. 집의 위치나 구조를 봤을 때 로봇들의 주인은 돈이 많고 로봇에 대한 지식이 좀 있을 것 같다고 파악할 수 있다. 보고서를 뒤로 넘겨보니 주인의 인적사항에 로봇 구조 아티스트라고 적혀있다. 역시 로봇 관련 일을 하는구나. 특이한 일은 아니다. 로봇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매우 많으니. 로봇 구조 아티스트는 로봇의 미묘한 균형감을 맞춰주거나 혹은 불균형 감을 더해주기도 하는 일이다. 로봇이 많아지고 로봇의 가족화가 심화될수록 가족들은 자기 가족들만의 특성을 로봇에게 심어준다. 예를 들면 귀를 조금 더 쫑긋 세워주거나 그 가족들에게만 나타나는 걷는 특징, 생김새의 특징들을 로봇에게 넣어 주는데 그런 일을 하는 게 로봇 구조 아티스트들의 일이다. 때론 가족들의 특징이 아닌 새로운 특징을 넣어 주기도 하는데 돈이 많은 로봇의 주인들은 그것을 자기만의 로봇을 만드는데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다른 로봇과 적응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는데 이 또한 매우 드문 일 중 하나이다. 로봇들은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로봇들에게도 친절하게 반응하게 세팅되어 있다. 특히 초기 세팅 상태에는 그것이 매우 두드러지는데 이제 막 입양된 6세의 로봇이 다른 로봇과 적을 두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로봇들이 이 로봇을 따돌리는 경우밖에 볼 수 없는데 그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보고서 대로라면 이 집의 로봇들은 7, 11, 13, 17, 19, 21이다. 성인 로봇은 1기뿐이다. 완벽한 성인이 된 로봇들끼리 주인의 특성에 따라 다른 로봇을 따돌리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로봇의 경우는 잘 나타나지 않기에 의아한 부분이다. 아마도 많은 로봇이 함께 지내고 있기에 그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 것 같다. 


셋째로 사회성 모듈 문제를 적시한 것이다. 보고서에 특정 모듈이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나오는 부분은 없다. 이것은 주인의 일과 조금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로봇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이기에 AS 문의를 넣을 때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추측은 틀렸을 확률이 높다. 사회성 모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회성 모듈이란 로봇과 로봇, 사람과 로봇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역할을 하는 모듈로써 로봇 두뇌의 수많은 모듈 중 로봇공학자들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이 모듈의 다양한 버전 중 하나의 버전만 잘 만들어도 회사는 떼돈을 번다. 그렇기에 이 모듈과 관련된 보고서가 종종 올라오는데 이 모듈에 버그가 있는 적은 드물고 설명서를 잘 읽지 않은 주인들이 모듈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적어도 주인이고 로봇에 애정을 가지고 로봇과 가족이 되고 싶다면 다른 설명서는 읽지 않더라도 꼭 이 사회성 모듈의 설명서는 읽어보길 권장한다.


집 앞에서 노크를 하지도 않았는데 로봇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보고서대로라면 문을 열어준 로봇은 둘째인 거 같다. 곧이어 주인 나왔고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첫째가 나왔다. 막내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형식적인 인사말을 모두와 나눈다. 이것은 중요한 단계이다. 로봇의 초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내 인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구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