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가족 리뷰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왔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 딸, 작은 아들, 막내 여동생 느낌의 여섯 가족이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인 가족들과는 좀 다른, 특별한 느낌이 든다.
이들은 '어떤' 가족인가.
영화의 초반 아빠와 아들은 마켓에서 도둑질을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어떤 아이를 발견한다. 추운 겨울, 집 밖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이들은 처음 본 게 아닌 것 같다. 아빠는 아이에게 코로케를 먹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하루정도 재우지만 현실적인(혹은 현실적이라고 믿는) 문제로 다음날 아이를 다시 데려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몸 구석구석 폭행의 흔적이 있었고 집에서는 가족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똑같이 폭행을 당하고 추위에 떨며 집밖에 버려져 있을 것만 같아. 결국 아이를 다시 데려온다. 어느새 그 아이는 그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다. 이 아이가 막내 여동생이다.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과 같은 화상자국이 있다. 둘 다 타인의 폭행을 받은 흔적이다.
여섯 명의 가족은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죽은 남편을 통해 연금을 받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큰 딸도 일을 나간다. 상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웨이 미러를 통해 그들의 성적 취향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작은 아들은 물건을 훔친다. 막내 여동생도 새로 생긴 오빠를 따라 물건을 훔치려 노력한다.
어린 여동생이 물건을 훔치는 게 마음에 안드는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동생이 무언가를 해야 여기서 지내는게 편할 거라고 말한다. 아들과 아버지는 꽤나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함께 무언가를 훔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만 아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언젠가 부르고 싶을 때 부른다고 말 할 뿐이다.
할머니는 죽은 남편을 모시는 집에 찾아간다. 그 집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낳은 자식들이 사는 집이다. 그 집에 가서 남편의 사진을 보고 위로한다. 그리고 케잌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 집의 첫째딸이 바로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큰 딸이다. 할머니는 태연스럽게 그 첫째 딸이 잘 지내냐고 물어본다. 부모는 유학을 갔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나오면서 할머니는 3만엔 정도의 여비를 받는다. 이 돈은 쓰지 않고 잘 모아 두고 있다.
가족은 다 같이 바다로 놀러가 재밌게 논다. 다섯명이 바다에서 손잡고 뛰는 놀이를 하고 있고 할머니는 뒤에서 속삭인다. '모두 고마웠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리고 할머니가 이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가난하게 살지만 곳곳에 소소한 웃음들이 묻어난다. 어느날 폭죽소리가 들리자 다같이 모여 하늘을 쳐다본다. 소리만 나고 보이지 않는 폭죽을 다 함께 보고 있다. 감독은 하늘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가족적으로 찍고 있다.
할머니는 죽었다. 할머니를 유난히 좋아하고 따랐던 큰딸은 슬프게 운다. 그러나 어머니는 냉정하게 사태를 수습한다. 신고도 하지 않고 집에 할머니를 묻고 할머니의 연금을 사용한다. 할머니를 묻기 위해 땅을 파면서 아버지는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누군가가 또 있었던 것일까?
그들 각자의 사연은 그런식으로 조용히 가랑비에 옷 젖듯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일이 생긴다. 막내 여동생이 무언가를 훔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작은 아들은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음에도 마트에 들어와 자신처럼 물건을 훔치는 여동생을 보고 결심을 한듯 일부러 드러내놓고 물건을 훔쳐 잡히게 된다. 이로 인해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고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사라진지 2달이 지났음에도 신고하지 않던 막내 여동생의 친부모는 어린이집의 신고로 그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막내 여동생은 경찰에 의해 본래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경찰들은 분명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했지만 막내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집을 뒤져 할머니의 시체도 찾아낸다. 작은 아들도 복지 혜택을 받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고 학교도 보내준다. 어머니는 모든 혐의를 스스로 덮어쓰고 5년정도 형을 받는다. 큰 딸은 본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혼자 남아 작은 방에 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왜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쳤냐는 말에 그것밖에 가르쳐줄게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좀 지나고 아버지였던 중년의 남성과 아들이였던 소년은 낚시를 하고 있다. 소년은 학교에 적응한 상태이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어머니였던)중년의 여성을 찾아간다. 그녀는 소년에게 어디서 소년을 데려왔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원한다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소년을 데려온 그곳에서의 맥락은 막내 여동생 이였던 소녀를 데려온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중년의 남성과 소년은 그의 집에서 밤 늦게 라면을 먹고 있다. (아버지였던)중년의 남성은 자고 가도 되냐고 묻고 소년은 어차피 늦어서 지금가나 자고 가나 똑같다고 말한다. 남자는 좋아한다. 밤에 그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놀았다. 등을 맞대고 누운 상태에서 약간의 대화가 오고 간다. 중년의 남성은 이제 '아버지'에서 '아저씨'로 돌아갈게 라고 말하며 운다. 다음날 소년을 버스에 태워 보낸다. 소년은 버스 안에서 고객를 푹 숙이고 앉아서 가다가 잠시 뒤에 중년의 남성 쪽을 돌아보며 속삭인다.
'아빠'
낳은 정과 기른 정.
사회는 낳은 정에 한 표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기른 정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같이 살고 있던 그들의 모습은 이상해 보이기는 했지만 지극히 가족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을 때의 모습은 전혀 가족적이지 않다.
*작가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아사모사]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에서 '어느 가족'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5042